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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위기와 익숙한 해고권남표 공인노무사(공공운수노조 보육사업단)
▲ 권남표 공인노무사(공공운수노조 보육사업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세계적 유행을 시작했다. 국가는 재난을 선포했고, 고통은 퍼져 나간다. 바이러스는 무전유전을 구분하지 않고 덤벼들고, 질병에 걸린 사람들이 늘어난다. 통증으로 신음하는 소리는 죽음의 그림자로 잦아든다. 전염성 강한 바이러스의 공포를 없애고 재난의 확산을 막으려는 전 국가적인 시도와 노력 속에 생경한 일상이 펼쳐지지만, 되돌아보는 어떤 풍경만은 익숙하다.

검역·방역 시스템, 의료진의 헌신, 병상과 인공호흡기 확보, 질병 확산을 막으려는 의료적 조치가 가동되는 것은 물론이고, 각국 정부는 재난 확산이 장기간 경기침체를 불러올 것이라는 두려움과 그로 인한 불확실성을 없애려 한다.

글로벌 주식시장이 폭락과 급등을 이어 가는 와중에 속칭 잘사는 나라들은 7조달러(약 8천500조원)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의 경기부양 자금을 마련했다.

속살은 다르지만 임금노동자에 대한 경기부양책은 크게 둘로 나뉘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성인 한 명당 1천200달러(약 140만원)의 생계비를 직접 지원하고, 동시에 실업급여 수급기간과 급여액을 늘렸다. 유럽의 경우 노동자 임금을 국가가 직접 보전해 주는 방식을 택해 고용을 유지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가령 영국은 록다운(봉쇄)으로 급여를 받지 못하는 노동자에게 급여의 80%(최대 월 2천500파운드, 약 380만원)를 정부가 지급하기로 정했다.

위기상황에서 미국은 해고 등으로 무직상태가 된 노동자들의 평균임금 수준을 보전해 주는 방식을 택했다. 반면 유럽의 일부 국가들은 해고를 아예 금지하거나 방지하는 방식으로 기존 생활수준을 보장해 주기로 정했다. 방식이 무엇이든 국가가 생계지원을 위해 대규모 재정지원을 하고, 노동자 대다수가 이를 수급하기 위해 신청창구를 찾는 장면은 생경하기만 하다. 그리고 단기간에 이러한 대규모 일상 변화를 만들어 낸 저변에는 코로나19 공포가 자리한다.

한국을 돌아보면 감염증 발생 이후 무급휴직·권고사직은 물론, 월급반납까지 강요당하는 실정이다. 골목상권에서 시작해 이제는 대기업까지 업종에 따라 다수의 노동자들이 그렇다. 이와 관련해 최근 고용노동부는 전 업종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고용유지지원금을 휴업수당의 90%까지 지급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노동자가 해고당하지 않아야 수급 가능한 고용유지지원금 신청 증가세만큼이나,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어야 수급 가능한 실업급여의 신청 증가세 역시 가파른 것으로 보인다.

사용자는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하느니 해고하거나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하지 않은 채 무급휴직을 실시한다. 인건비가 더 저렴하기 때문이다. 일자리를 잃으면 다시 어떻게 일자리를 구해야 하냐는 두려움이 엄습하는 가운데 노동자는 사용자가 내미는 서류를 읽어 보며 눈치를 본다. 해고를 막으려는 지원책은 분명 발표됐지만, 노동자들 눈에는 생경하기만 하다.

감염증 위기가 경제에 미치는 여파 속에도 국가가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보장하는 사회서비스가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어린이집의 돌봄(보육)이다. 정부는 코로나19 확산을 막으려 이미 2월 말 전국의 어린이집에 휴원명령을 하면서도, 영유아 돌봄서비스를 이용해야 하는 다양한 수요를 고려해 어린이집이 반드시 긴급보육을 시행하도록 명했다. 긴급보육을 위한 예산과 수입이 없다는 핑계를 대지 못하도록, 정부는 세금으로 조성되고 이미 예산으로 편성된 재정을 지속적으로 어린이집에 지원하고 있다.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큰 틀에서 어린이집 수입에는 큰 변화가 없는 것이 현재 상황이다.

그러나 국가가 법으로 보장한 ‘무상보육’은 공공성이라는 껍질만 뒤집어쓴 채 민간 중심의 공급구조로 운영되고 있을 뿐이다. 때문에 어린이집마다 코로나19를 핑계 삼은 각종 강요가 만연하다. 권고사직과 무급휴직은 물론이고 페이백과 연차강요까지 양상도 다양하다.

그 면면을 보면 보육교직원에게 “원아수가 곧 감소할 예정이니 그만두라”는 권고사직서에 서명을 지시하거나, “경영이 힘드니 월급을 받고 30%를 페이백하라”고 강요한다. “무급휴직 동의서에 사인을 하라”는 지시, 휴원·긴급보육 기간 동안 출근을 시키지 않고는 “당직대장에 개인사유로 인한 연차사용이라고 기재하라”는 부당한 업무지시까지 현장에서 다수 사례가 접수되고 있다. 심지어 별도 문서를 통해 “서명은 자발적으로 했고, 법적인 문제를 삼지 않겠다”는 내용을 삽입하는 사례도 있다.

코로나19라는 재난이 있기 전부터 어린이집과 그 밖의 사업장에서도 ‘눈감고 서명 강요’가 횡행했다. 국가의 지도·감독 손길이 제대로 닿지 않는 민간 영리사업의 법칙과도 같다. 이미 관행처럼 자리 잡은 이러한 강요는 코로나19라는 변화된 일상을 핑계 삼아, 오히려 호기 삼아 더욱 당연한 듯 활개 치고 있다.

영세 자영업자와 비정규·특수고용 노동자에 대한 생계지원은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국가의 재정지원 약속으로 경영상 위기와는 거리가 있는 어린이집에서조차 권고사직과 무급휴직이 발생하고 있다.

해고를 방지해 보겠다는 고용유지지원금 제도가 확대되고 있음에도 해고자가 속출하는 지금, 이제라도 우리 정부도 해고금지를 언급해 일자리를 보호받을 수 있다고 알려야 하지 않을까.

권남표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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