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가계대출을 줄이고 기업대출을 늘리기 위해 올해부터 시행한 신 예대율 규제정책이 취약계층의 금융소외를 유발하고 금융노동자 노동조건을 악화한다는 진단이 나왔다.

금융경제연구소는 30일 이 같은 내용의 ‘신 예대율 도입에 따른 은행권 동향 및 시사점’ 보고서를 발행했다. 예대율은 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예수금(예금) 잔액과 비교해 얼마큼 대출을 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은행 건전성 지표 중 하나로, 정부는 100% 미만으로 유지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보유 예금보다 더 많이 빌려주지 말라는 얘기다.

정부는 올해 1월부터 예대율을 산정할 때 가계대출 가중치를 15% 상향하고 기업대출 가중치는 15% 낮추는 신 예대율 정책을 시행했다. 정책을 시행한 지 3개월밖에 지나지 않아 효과는 점검되지 않았지만 은행들의 지난해 경영을 통해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났다.

이날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9년 단기금융시장 리뷰’에 따르면 지난해 은행들은 대출금을 줄이기보다는 예수금(예금)을 확대하는 데 집중했다. 양도성예금증서(CD)와 정기예금·급여통장 등을 통해 자금조달을 늘렸다. 지난해 일반은행의 CD 발행량은 30조1천억원으로 2018년의 21조3천억원보다 41.5%나 증가했다. 분모(예금) 규모를 키워 분자(대출금) 비율을 유지·확대했다는 얘기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대출 비율을 조정하기 쉽지 않아 예수금을 통해 예대율 관리를 한 것으로 보인다”며 “규제 시작 3개월이 지난 만큼 가계대출 억제 효과는 더 지켜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연구소는 가계대출 억제가 기업대출로 이어지리라 장담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연구소는 보고서에서 “예대율 조정이 오히려 (은행의) 중소기업대출 운용 정도를 낮춘다는 결과도 보고되고 있다”며 “고신용자를 중심으로 가계대출이 증가하고 있어서 취약계층이 제도권 금융기관에서 소외되는 상황에 놓일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신 예대율 정책은 금융노동자 노동조건도 변화시키고 있다. 보고서를 작성한 현은주 연구위원은 “SH수협은행은 핵심성과지표(KPI)에 예수금 확대 배점을 대폭 늘리겠다고 발표하는 등 신 예대율 정책으로 업무부담이 늘어나는 사례가 확인되고 있다”며 “(수익이 낮은 기업대출 확대로 발생한) 수익성 악화를 회복하는 과정에서 파생 업무가 증가할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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