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공포가 덮쳤다.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에 겁에 질렸다. 끝을 알 수 없는 기세에 놀라 세상은 앞다퉈 문을 걸어 잠그고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인류의 생존지침이 되고 있다. 봉쇄와 폐쇄가 당연하게 행해지고 있다. 이제 감염되지 않은 사람들까지 집 밖에 나오지 말도록 명령받고 있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 성당과 아이스링크는 시신보관소가 됐고, 군용트럭들이 주검을 화장장으로 운반하고 있다. 프랑스·독일·영국·스위스·덴마크·네덜란드·벨기에·스웨덴…. 이미 이들 국가도 대한민국을 뒤로 한 채 확진자 숫자는 이탈리아와 스페인을 쫓아가면서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다. 생필품 마트·은행·병원 등 생존에 필수적인 사업장만 출근이 허용되고 나머지 사업장에 대해선 재택근무를 요구하거나 사실상 폐쇄한다. 한 달 전만 해도 독감 정도로 취급하며 태연하던 미국 대통령 트럼프는 뉴욕·뉴저지 봉쇄까지 내뱉을 정도로 코로나19 사태는 점점 심각해지고 있는 지경이다. 미국 확진자가 14만명이 넘어선 지난 29일, 그는 미국에서 사망자가 10만명 정도면 매우 잘한 것일 것이라고 말했다. 당초 내달 12일 부활절에 미국의 경제활동을 정상화하겠다던 그의 말은 허풍이 돼 버렸다. 26일 미국 노동부는 실업수당 신청 건수가 역대 최다인 328만건이라고 발표했다. 1주일 전 28만건에서 12배가 폭증한 것이고, 1982년 2차 오일쇼크 당시 경기침체와, 금융위기 직후였던 2009년과 비교해도 5배 정도 되는 수치로 대공황 수준의 실업대란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도 예외일 수 없다. 지난 19일까지의 실업급여 신청자는 10만3천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0% 이상 급증했다. 20일까지 전국에서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한 사업체는 1만7천800여곳으로 이미 지난해의 11배에 달하는 폭발적 증가세를 보인다는 소식이다. 일용직·계약직·비정규직·특수고용직처럼 실업급여에서조차 배제된 수많은 이들이 일터에서 쫓겨나고 있다. 무급의 휴직과 휴가, 임금의 동결과 삭감이 시작됐다. 기업 구조조정을 통해 인력감축이 본격화할 것이다. 만도는 27일 강원 원주 주물공장 외주화와 생산직 직원을 대상으로 한 희망퇴직 시행에 최종 합의했다고 보도됐다. 노사합의했다며 생산직 10% 정도를 희망퇴직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렇게 희망퇴직으로 인력감축이 되지 않으면 많은 사업장에서 사용자는 정리해고를 무기로 노동자를 압박하게 될 것이다. 희망퇴직과 명예퇴직·권고사직 등 스스로 사업장을 떠나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사용자는 정리해고라는 무기를 노동자에게 들이댈 것이다.

2. 코로나19가 평온한 세상을 깨뜨린 것이라면, 코로나19로 인한 피해만 되돌리면 된다. 기업이 입는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서 100조원을 지원하는 것처럼, 노동자도 해고 등으로 일자리를 잃는 일이 없도록 하면 된다. 이와 관련해 24일 노동당은 “코로나19가 종식되고 일상을 회복할 시점까지 한시적으로 모든 형태의 해고를 금지”해야 한다고 성명을 발표했다. 29일 정의당은 “정부가 발표한 100조원 기업지원은 고용보장을 전제로 해야 한다”며 해고 없는 기업지원 원칙을 확고히해야 한다고 문재인 정부에 긴급제안했다. 이번 기회에 아예 근로기준법상 정리해고 제도를 폐지하고 정리해고 금지법이 도입됐으면 더욱 좋겠지만, 그것까지는 아니라도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될 때까지만이라도 정리해고가 금지돼 노동자의 일자리가 지켜질 수 있도록 무엇이든 될 수 있으면 좋겠다. 하지만 현재 이 당들의 세와 우리 노동운동의 상태를 볼 때 그저 성명이고 제안에 머물 것이라고 보는 것이 현실적이다. 별 수 없이 이 나라에서 노동자들은 오늘 정리해고 칼날 앞에 서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노동자들은 정리해고법이라도 제대로 알고서 사용자의 정리해고에 대응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이 나라에서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하는 법에 기대서 사용자에게 정리해고 당하지 않는 법을 찾아야 한다. 노동자들은 정리해고법에 기댈 수밖에 없는 처지가 돼 버렸으니,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그걸 한 번 읽어 보자.

3.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의 제한’이라는 제목으로 근로기준법은 정리해고 제도를 규정하고 있다. 징계해고 등과는 달리 노동자의 귀책사유 등 노동자측 사정이 아니라, 사용자의 경영 사정으로 인한 해고는 모두 이 정리해고에 해당한다고 보면 된다. 코로나19 사태로 회사가 어렵다며 출근하지 마라고 한다면 바로 정리해고인 것이니, 근로기준법의 정리해고 규정부터 읽어 봐야 한다.

먼저 “긴박한 경영상 필요가 있어야” 정리해고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근로기준법 24조1항). 만약 사용자가 막연히 코로나19 사태를 내세워 출근하지 마라고 했다면, 도대체 얼마나 어렵기에 날 내쫓겠다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회사 경영사정을 말해 달라고 할 필요가 있다. 일시적으로 정상적인 경영이 어렵다고 해서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인정될 수 없다. 코로나19 사태는 일시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는 어렵지 않았다는 걸 물고 늘어질 필요가 있겠다. 그걸 통해 코로나19 사태를 이용한 사용자의 인적 구조조정임을 폭로해야 한다.

설사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인정된다고 해도, 정리해고하기 위해서는 사용자로서는 “해고를 피하기 위한 노력을 다해야” 하고, “합리적이고 공정한 해고의 기준을 정해” 정리해고 대상자를 선정해야 한다(근로기준법 24조2항). 여기서 해고회피 노력을 다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것이니, 사용자가 무급휴직·무급휴가만 실시했다거나 희망퇴직 정도만 실시했다면 해고회피 노력을 다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정리해고를 피할 방법을 사용자에 제시해 두는 것이 좋다. 근로시간단축·배치전환 등 다양한 방법을 찾아내서 적극 제시하며 해고회피 노력을 다하라고 해 두자. 근로기준법은 정리해고 대상자의 선정은 합리적이고 공정한 기준에 의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이니 사용자에 해고 대상자의 선정 기준에 관해서 구체적으로 제출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해고회피 노력과 해고 대상자 선정 기준에 관해 사용자는 근로자대표에 50일 전까지 통보하고 협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근로기준법 24조3항). 여기서 근로자대표란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 그 노조가 없으면 근로자의 과반수를 대표하는 자라고 법은 규정하고 있다. 2007년 1월26일 개정 전에는 60일 전까지 통보하고 협의하도록 정하고 있었는데, 50일로 단축됐다. 법원 판례는 통지와 협의의 기간 준수에 관해서 나머지 요건을 갖추고 있다면 대충 넘어가는 태도를 취해 오고 있어 노동자가 이를 무기로 활용하기가 만만치 않다. 하지만 그래도 이 50일 규정을 적극적으로 최대한 이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시간싸움이다. 이 대한민국에서 지난 1월20일 첫 확진자가 발생하고서 50일이면, 대폭발과 정점을 지나서 감소세로 접어든 시간이다. 이럴 정도로 50일은 코로나19 사태엔 결코 짧지 않다. 얼마든지 코로나19 사태로 발생한 경영사정이 긴박하지 않은 상태로 변경될 수도 있는 시간인 것이다. 그 50일 동안 사용자의 해고회피 노력과 정리해고 대상자의 선정 기준의 문제를 찾아내 협의를 진행해야 한다.

4. 사실 이렇게 정리해고법을 읽고서 보면,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사용자의 정리해고로부터 근본적으로 노동자를 보호해 줄 법이 아님을 확인할 수가 있다. 그러니 노동조합은 단체교섭을 통해 정리해고 당하지 않는 법을 단체협약에 둘 필요가 있다. 근로기준법은 최저기준인 것이니 조합원을 위해서 그보다 상회하는 수준을 단체협약으로 쟁취하는 것이 노동조합의 존재이유라고 대한민국헌법은 선언하고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은 법의 목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 나라에서 정리해고 당하지 않는 협약을 가진 노동자는 얼마 되지 않는다. 1996년 말 1997년 초, 정리해고법 도입에 반대하는 노동법 개악 총파업투쟁을 전개했지만, 1997년 3월 정리해고법은 도입돼 오늘에 이른다. 그 총파업투쟁에 참여했던 노조들조차 아직까지 정리해고 당하지 않는 협약을 쟁취하고 있지 못하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이후 2000년 전후 대대적인 기업 구조조정 앞에서 이 나라 노동운동은 고용안정협약서 체결을 요구하고 투쟁했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오늘 이 나라 노동자들은 코로나19가 몰고 온 공포에 다시 한 번 고용을 위한 투쟁에 나서야 할 상황에 처하고 있다. 정리해고 철폐를 위한 노동법 투쟁이 못 이룬 과제가, 사용자를 상대로 임단투로 쟁취해 내지 못한 협약이 무엇인지 적나라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게 코로나19가 이 나라 노동운동을 덮치고 있다. 코로나19의 공포를 넘어 정리해고 당하지 않은 법을 쟁취할 것인가. 앞으로 20년도 이 나라 노동자들에게 정리해고법만 읽게 할 것인가.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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