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석군 변호사(법무법인 민국)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관련해 한국 정부가 세계에서 가장 잘 대처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투명성을 앞세운 방역대책과 국민의 자발적 고통분담이 원인으로 꼽힌다. 그런데 기이한 일들은 여전히 벌어지고 있다.

나름 철저히 진행되던 정부의 방역망은 사이비 종교 교주의 맏형 장례식장에서 뚫렸고 감염은 폭증했다. 그러나 이를 두고 어떤 이들은 여전히 중국인 입국을 애초에 틀어막지 못한 정부 탓이라고 주장한다.

그 사이비 종교는 특유의 정체를 숨기는 전도방식으로 감염자들의 행적을 밝힐 수 없게 만들어 행정적 제재를 받고 있다. 자신들이 코로나19 사태의 ‘희생양’이라며, 인권침해를 당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특정 사이비 종교 현황 파악에는 미진하던 광역단체장은 매일 브리핑에 출연하며 오히려 지지율이 상승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선거운동 과정에서 지역민원인의 손짓 한 번에 쓰러졌던 이 광역단체장은 정부의 지원금을 굳이 총선 이후로 미루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시의회 의원들과 논쟁한 뒤 다시 쓰러져 입원했다.

특정 종교는 타종교에 비해 종교집회의 절대성을 강하게 주장한 결과, 상대적으로 강한 사회적 눈초리를 받고 있다. 그런데 이것이 국가에 의한 종교탄압의 시작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며, 종교행사를 사수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어떤 기자는 감염병과 같은 비상상황에서 민주주의 체제와 권위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화두로 한국 예를 주의 깊게 봐야 한다는 외신을 소개했다. 결론에서 현 대통령이 민주시민에 대한 ‘감동’을 주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반지성주의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당선될 때 많은 화제가 됐다. 이는 “지성 일반(intellect)에 대한 회의, 또는 엘리트로서의 지식인(인텔리, intellectuals)에 대한 일반 대중의 적대감”으로 일컬어진다. 복음주의적 기독교를 역사적 배경으로 삼는 미국의 반지성주의와 우리의 현실은 완전히 동일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인과관계조차 부정하고 자신들의 믿음을 강화하는 논리만으로 무장해 가는 모습은 이미 우리 사회에서도 한 흐름이 된 것으로 보인다.

원래 정치성을 갖는 인문사회 분야와 달리 나름 자료에 근거해 객관적인 평가를 할 것이라 기대됐던 이공계에 대한 신뢰는 4대강 사업을 앞에 두고 무너져 갔다. 장충기 전 삼성 미래전략실 사장의 ‘문자’ 속에 기성 언론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잣대가 이제껏 무엇이었는지 고스란히 드러났다. 패악적인 인터넷 사이트의 목소리조차 정치적 목적으로 보호하고 키워졌으며, 정치적 독립성을 가져야 할 사법부조차 사법농단을 통해 믿을 게 없다는 세태에 마침표를 찍어 줬다.

더 이상 전문가들의 전문성을 믿을 수 없는 사회에서, 언론들이 최소한의 사실을 전달해 주리라는 신뢰조차 잃어버린 상황이다. 자신들의 신념에 호응하는 내용을 더 권위 있게 받아들인다고 해도 그것이 그들만의 탓이라 할 수 있는지 모르는 상황이 돼 버렸다.

그럼에도 코로나19를 대하는 우리의 모습은 정부의 투명성과 시민의 자발성이 이룰 수 있는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 면에서 나름의 희망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깨우쳐 준다. 정치적 이념을 떠나 사회에 존재하는 현실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그 가능성을 함께 보는 시선을 갖는다면 반지성주의의 함정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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