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민간병원인 순천향대의료원 노사가 임용직(무기계약직) 정규직 전환에 합의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이번 정규직화가 대한민국 모든 임용직들이 사라지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순천향대의료원 노사가 임용직 600여명 정규직 전환에 합의한 것을 두고 순천향대의료원 4개 병원노조 위원장들이 입을 모아 한 말이다. “정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의 직접 대상이 아닌 민간병원이 임용직 정규직 전환에 합의한 것이 선례가 됐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순천향대의료원은 산하 4개 병원 임용직 606명 전원을 2023년 3월1일까지 순차적으로 정규직 전환하기로 지난 23일 합의했다. 전환 대상은 간호사와 의료기사·간호보조·원무과 사무직원 등이다. 전환 인원은 순천향대 부천병원 219명, 서울병원 178명, 천안병원 157명, 구미병원 52명이다. 임용직 나급은 일반직(정규직) 8급으로, 임용직 다급은 기능직(정규직) 1급으로 전환해 재임용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각급 병원들이 어려움을 호소하는 시기, 순천향대의료원은 어떻게 임용직의 정규직 전환에 합의할 수 있었을까.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27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한국노총 7층 상임부위원장실에서 강정구(52) 순천향대서울병원노조 위원장과 민송희(55) 순천향대부천병원노조 위원장, 최미영(54) 순천향대천안병원노조 위원장, 추은희(55) 순천향대구미병원노조 위원장(가나다순, 이하 직책 생략)에게 정규직 전환 합의 배경과 과정·의미를 들었다.

“민간부문 정규직 전환에 정부 지원 있어야”

- 임용직이라는 이름이 낯설다. 어떻게 만들어진 직군이고, 정규직화를 추진한 배경은 무엇인가.
 

강정구 순천향대서울병원노조 위원장. 정기훈 기자

강정구 : 외환위기 이후 1~2년 단위로 계약을 맺는 계약직이 생겼다. 병원은 이들을 2년 뒤엔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했는데, 정규직 전환 대신 임용직이라는 제도를 만들어 편입시켰다. 임용직 급여는 정규직에 비해 형편없이 낮았다. 거기에 위원장들이 문제를 제기해서 임용직도 연차대로 임금을 올릴 수 있는 체계로 됐다. 그럼에도 정년 때까지 임용직으로 낙인찍히는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들어올 때도 임용직, 나갈 때도 임용직인 것이다. 조선시대 양반과 상놈같이 계급이 나뉘어 바뀌지 않는 것과 같은 상황이었다. 그래서 이 임용직을 8급이든 9급이든 정규직 체계에 올려서 정규직과 같은 처우를 받을 수 있게 해보자고 노사 TFT 구성을 사측에 제안했다. 노사는 2017년 11월 노사 TFT를 구성하기로 합의한 뒤 최근까지 정규직 전환을 논의해 왔다. 2년 넘게 협의해 지난 23일 결과가 도출됐다.

- 사측이 선뜻 받아들일 만한 제안은 아닌 것 같다.

강정구 : 노사 TFT에서 사측에 임용직을 정규직화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병원에 훨씬 이득이라고 설득해 합의를 이뤄낼 수 있었다. 사측이 열린 마음으로 노조 이야기를 들어 준 부분도 합의를 가능하게 한 요인이었다. 사측은 마음의 문을 닫지 않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열린 장을 한번 마련해 보자고 했다.
 

최미영 순천향대천안병원노조 위원장. 정기훈 기자

최미영 : 외환위기 이후 비정규직이란 말이 생겨났고 정규직이 퇴사한 자리, 채워야 할 자리에 임용직이라는 이름으로 인력을 채용해 왔다. 그러다 보니 비정규직은 한없이 늘어나고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이 명확했다. 의료원이 좋은 가치를 계속 이어 가고,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임용직과 정규직으로 이원화된 이질감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을 사측에 강조했다. 이런 합의가 노동자들이 쟁취해서 얻어 낸 것으로만 표현되곤 하는데 절대 사용자의 동의 없이는 안 되는 일이다. 이런 동의를 한 재단에 고마운 마음이다.

- 노사 간 의견을 조율하면서 병원별 특성에 따른 고충은 없었나.

최미영 : 4개 병원이 같은 시스템에서 출발했지만 노동자 간 근무환경에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이들의 근무조건과 관련해 큰 줄기를 맞추는 데까지 조율하는 시간도 엄청 오래 걸렸다.
 

추은희 순천향대구미병원노조 위원장. 정기훈 기자

추은희 : 구미병원은 다른 3개 병원과 달리 상급종합병원이 아니어서 정규직 급여 수준도 높지 않았다. 반면 임용직 수는 다른 3개 병원보다 많지 않았다. 임용직 처우를 개선하면서 정규직은 과연 어떻게 처우를 개선해야 할까 고민이 많았다.

민송희 : 부천병원의 경우 임용직 인원이 가장 많아서 어려움이 있었다. 사측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재원이지 않나. 더군다나 우리가 처음 노사 TFT를 시작한 이후에도 임용직이 계속 늘어나면서, 합의 시점에는 필요 재원이 처음 계산했던 것보다 훨씬 늘어나게 됐다. 그 부분에 대한 부담이 사측에 있었다. 노조 입장에서도 부담이었다. 파이가 한정돼 있는 만큼 일반 정규직의 양보가 분명히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노사는 ‘더 이상 임용직은 양산하면 안 된다. 모두가 같이 좋아지는 길을 가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 민간부문인 탓에 정규직 전환에 드는 정부 지원을 받기도 힘들었을 것 같다.

강정구 : 이번 합의로 추가되는 소요재원이 한 해만 해도 수십억원이 될 것으로 추산한다. 그런데 정부 지원은 하나도 없었다. 사측에 엄청난 부담인 거다. 문재인 정부가 일자리위원회도 만들고 ‘좋은 일자리 만들기’를 내세웠으면 병원에서 이런 노력을 할 때 정부가 도와줄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면 좋겠다.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든지, 정부에서 몇 퍼센트를 보전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래야 순천향대의료원으로만 끝나지 않고 다른 기관들도 정규직 전환에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 같다.

“코로나19 시국에 정규직 전환 합의”

- 정규직 전환 뒤 어떤 효과를 기대하나.

최미영 : 같은 라이선스를 가진 사람인데 임용직과 정규직으로 구분됐고, 이로 인해 부서 내 보이지 않는 갈등과 서로 간에 이질감이 있었다. 부서장들은 리더십을 발휘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어떤 일이 생겼을 때 임용직들은 일에 임하는 자세가 달라 큰 문제였다. 임용직들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만큼 소외와 차별을 느끼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부분들이 해소될 것으로 기대한다.

강정구 : 임용직과 정규직은 급여 차이가 있는 만큼 어쩔 수 없이 업무 구분을 해야 했다. 예를 들자면 응급실의 임용직은 엑스레이를, 정규직은 CT를 찍는 식이다. 만약 이 상황에서 CT 촬영에만 사람들이 붐빈다면 서로 도와주고 협력해야 하는데 임용직은 엑스레이만 찍는 직종이라며 CT는 찍지 않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또 정규직은 필요하면 추가 근무를 하기도 하지만 임용직은 오전 8시 출근, 오후 5시 퇴근시간을 딱 정해서 가는 분위기가 있다. ‘나는 임용직이어서 이만큼만 일하면 된다’는 것이다. 정규직은 그런 임용직을 바라보며, 또 임용직은 정규직보다 급여가 적다며 서로 불만을 가졌다. 이런 내부 갈등은 업무의 비효율성을 야기했는데 이 부분이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 임용직 조합원들 반응은 어떤가.

최미영 : 정규직으로 전환된 조합원 분들이 떡이랑 도넛이랑 커피 사오면서 인사를 오시더라. 너무 기뻐서 자기 집에서 잔치를 했다고 하는 분도 있었다. 그 분들은 자신들이 정규직이 되리라고 생각을 안 하고 있어서 이곳에서 얼마 동안 일하다가 더 좋은 조건이 생기면 다른 곳에 가려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에 전환돼서 생각지 못한 행운을 얻은 것 같다며 부서별로 계속 노조에 찾아왔다. 우리는 ‘해야 하고 필요한 일이어서 했는데, 저 분들에겐 일생을 건 꿈같은 일이 이뤄진 거구나’ 그런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됐다.

“다음 과제는 파견·용역 노동자 정규직화”

- 병원에는 아직 파견·용역 노동자가 남아 있다.
 

민송희 순천향대부천병원노조 위원장. 정기훈 기자

민송희 : 청소·주차·시설·이송 등 파견·용역직의 직접고용이 다음 과제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때 삼성서울병원에서 감염 확산 원인이 됐던 이송직원이 파견직이었다. 직접 환자를 이송함에도 병원 정규직이 아니라는 이유로 책임이나 안전관리에서 배제돼 논란이 됐다. 병원 노동자는 모두 환자를 직접 대면하는 직종이다. 그래서 직접고용해서 조금 더 안정된, 노동환경에서 일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하고 있다.

- 요즘 코로나19 여파로 환자가 감소해 많은 병원이 경영난을 호소하고 있다.

강정구 : 병원 수익이 줄어 경영이 많이 어렵다. 그럼에도 올해 1월 취임한 새 의료원장이 합의를 더 연기하지 않고 3월에 조인식을 하게 한 것에 감사하다. 사측이 노사 간 신의를 지키는 모습을 보여줘서 한 단계 성숙한 노사관계를 정립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최미영 : 이번 일에 대해 병원측이 일관성을 가지고 추진해 줬다. 순천향대의료원이 민간병원이긴 하나 어떤 공공기관보다 선도적이고 좋은 가치를 선보인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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