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문재인 대통령과 고위 공직자들이 코로나19 위기극복 일환으로 급여반납을 선언했다. 급여반납은 공공기관은 물론 민간기업 임원들에게로 확대되고 있다. 정치권도 세비반납 행렬에 동참하고 있다. 위기를 이겨 내기 위한 고통분담 또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이 불편한 이들도 있다. 노동자들이다. 노동자에게 일방적으로 희생을 강요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1998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경험을 비춰 보면 단순한 기우는 아니다. 이미 공직사회에서는 내년 임금이 동결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내년 최저임금 인상이 물 건너간 것 아니냐는 걱정도 제기된다. 사회 고위층의 급여반납을 선의로만 바라볼 수 없는 이유다.
 

▲ 김창호 공무원노조 대변인

공무원 임금 깎으면 전체 노동자 임금에 악영향
김창호 공무원노조 대변인

문재인 대통령이 시작한 급여삭감 여파가 하위직 공무원을 덮칠 기세다.

국가공무원법과 공무원보수규정에는 공무원 임금은 표준생계비·물가수준·민간의 임금수준을 고려해 결정하라고 돼 있다. 그러나 실제는 기획재정부 통제 아래 정부 주도로 결정되고 있다. 대통령 임금삭감 소식을 접한 기재부는 내년도 공무원 임금 동결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무원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명박 정부는 국제금융위기를 빌미로 2009년과 2010년 공무원임금을 동결했다. 공공부문과 민간부문 사업장도 임금을 동결하거나 인상률을 최소화했다. 공무원임금 문제는 전체 노동자 임금 문제와 깊은 연관이 있다는 얘기다.

정부는 코로나19에 따른 위기를 말한다. 공무원은 바이러스와 일선에서 싸우며 막대한 초과근무를 감내하고 있다. 공무원의 사기를 진작시켜야 할 정부가 도리어 더욱 희생하라고 하고 있다. 노조는 물론 공무원 대부분이 정부 조치를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공무원의 주머니를 가볍게 하려는 시도는 사회적 흐름과도 역행한다. 재난기본소득을 통해 가계소득을 지원하고, 내수경제를 활성화하고자 하는 정책이 전국 곳곳에서 현실화하고 있다. 정부는 기업을 제일 걱정한다. 기업부담을 줄이기 위해 각종 지원책을 쏟아 내면서 노동자에게는 희생하라? 이건 문재인 정부가 말해왔던 노동존중 사회와 배치된다. 소득주도성장과도 거리가 멀다.

노조는 30일 오전 전국 동시다발 기자회견을 열고 전 국민에게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할 것과 공무원 임금 동결 추진을 중단하라고 요구할 예정이다. 정부는 귀담아들어야 한다.
 

▲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과)

고통분담, 정부는 강요 말고 노동계는 선도적으로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과)

코로나19 사태가 조금씩 수습되고 있지만 여전히 확진자는 증가하고 있다. 사회·경제적으로 워낙 임팩트가 크다. 체감하는 위기는 외환위기 때보다 크다.

그런 점에서 고위공직자들이 임금을 반납하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다만 일반 하위직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직원 또는 민간기업까지 확대하려면 자발성에 기초해야 한다.

외환위기 당시 금 모으기 운동은 어렵고 힘든 사람들과 함께하자는 자발적인 것이었다. 그런 운동이라면 노동계나 노조도 동참할 수 있고,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전 정부에서처럼 높은 사람이 먼저 임금을 양보하고 거기에 아랫사람들이 의무적으로 따라오라고 강요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나라가 어려운 상황에서 십시일반 고통을 나누자는 게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노동계가 자발적으로 나서기를 기다려야 한다. 최근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코로나19 대응 관련 합의를 한 것처럼 노사와 민간이 주도적으로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그렇지 않고 정부가 지시하듯이 하면 노동계는 고통분담이나 사회연대를 하려고 하다가도 생각이 바뀐다. 반발하게 된다.

이왕이면 노조도, 특히 비정규직처럼 취약계층이 아닌 대기업 정규직노조가 사회적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선도적으로 고통분담에 나서는 것이 나쁘지 않다. 그렇게 하면 오히려 정부의 일방적인 움직임을 막을 수 있고, 명분도 확보할 수 있다.

고위 공직자들의 임금반납에 대해 노동계가 우려하는 것은 과거 경험 때문일 것이다. 청년일자리를 창출한답시고 대통령이 월급을 반납하고 사실상 강제적으로 모금운동을 한 사례가 있다.

그럼에도 이런 위중한 상황에서 반대만 하면 오히려 지탄받을 수 있다. 적극적인 사회연대 활동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런 것을 할 테니 정부는 임금가이드라인을 설정하지 말라’고 요구해야 한다.

정부는 과거 방식을 되풀이하지 말고, 노동계는 선도적인 고통분담을 보여주는 것이 이 어려운 상황에서 윈윈 할 수 있는 길이다.

 

▲ 김영민 청년유니온 사무처장

필요한 것은 윗사람 선의 아닌 시민권리 보장
김영민 청년유니온 사무처장

코로나19로 촉발된 ‘잠시 멈춤’이 거의 두 달이 다돼 간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청년의 일터에도 그 영향이 몰아치고 있다. 무급휴직에 들어가거나, 근로시간이 단축돼 소득이 줄어드는 경우는 차라리 나을 것이다. 고용의 안정성에 따라 재난은 불평등하게 다가온다.

막 출근하기 시작한 일자리에서 잘리는 경우나, 프리랜서로 일하거나 아직 취업 준비를 하는 경우에는 아예 일을 구하기가 어려워서 더욱 곤경에 처한다. 취업을 위해 준비해 온 각종 시험이 미뤄지거나, 면접이 연기되고 있다. 동시에 취업 준비와 병행하던 아르바이트는 잘릴 위험에 처한다. 당장 잘려서 생계가 막막해지더라도 매달 빠져나가는 학자금 대출은 코로나에도 멈추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통령과 장·차관들을 시작으로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한 임금반납 행렬은 불편하다.

당장 멈춰 선 사회가 돌보지 못하는 이야기보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식의 선의에 지탱되는 생색일 뿐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불편한 데에서 그치면 다행이다. 임금반납을 요구하는 핑계가 될 소지가 충분하다.

이미 해고가 자행되기 시작한 현장에서, 해고를 피하더라도 임금반납을 요구받게 될 소지가 충분하다. 줄여야하는 것은 임금이 아니라 임대료다. 지금의 상황에서 유동인구가 많은 ‘명당’의 임대료는 부풀려진 거품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반납해야 하는 것은 임금이 아니라 임대수익이다.

지금 정부가 해야 하는 것은 ‘윗사람’의 선의에 의지하는 임시방편이 아니라, 재난 상황에서 사회가 어떻게 시민의 권리를 충분히 보장할지, 이를 위해서 어떻게 책임을 지고 권한을 행사할지를 말하는 것이다.
 

▲ 김성희 산업노동정책연구소 소장

노블레스 오블리주? 구시대적 권위주의
김성희 산업노동정책연구소 소장

정부는 금리인하를 통한 양적완화와 기업과 금융 지원책에 100조를 투입하면서 임금생활자와 소규모 사업소득자에 대한 소득 지원책에는 아직 머뭇거리고 있다.

보편적 기본소득이든 하위 50% 내지 80%까지 광범위한 재난 생활지원비이든(특고·플랫폼과 1인 자영업 묶기 필수), 하위 20~30%까지의 저소득층 맞춤형 대책이든 선택지별로 장단점이 있다. 그러나 어떤 소득지원책이든 빨리 할 수 있는 걸 결단해서 실행해야 한다. 재난대응의 모범국이 소득지원에선 가장 인색한 보수적인 재정정책에 안주하고 있다.

2008년 경제위기 때도 위기에 더 위험해지는 중하위 소득자에게 직접 소득지원을 한 건 사회보장체계가 잘 갖춰지지 않은 미국·일본·중국 등이다. 지금은 사회안전망을 갖춘 유럽국가들마저도 휴무·휴가·노동시간단축으로 인한 소득상실을 부분실업으로 인정해 소득지원에 나서고 있다. 이 상황은 다른 경제 위기와 다르다. 수요측 충격과 공급측 충격을 동시에 완화해야 하기에 기업금융 지원과 가계 소득지원책을 동시에, 전방위적으로, 획기적으로 실행해야 한다. 특히 이탈리아·프랑스·미국은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를 제한하는 조처와 고용유지·소득유지에 대한 지원책을 연계해서 실행하고 있다.

이 와중에 경영상 해고 요건 완화와 기업 운영의 규제 완화 요구를 들고 나온 경총은 이 위기를 자신의 숙원을 풀 호기로 삼고 있다. 사회구성원 전체의 삶에 대해선 아랑곳하지 않는 이기적 행태의 극치를 보이고 있다. 이번에도 그렇게 하다간 극소수 재벌기업 외에 대다수 기업도 살아남지 못한다.

정부 고위층에서 시작돼 확산되는 임금반납은 현재 위기를 대처하는 태도에 모순적인 메시지를 전달해 준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라고 하기엔 구시대적 권위주의 행태다. 그래도 상생협력의 필요성을 제기해주긴 하지만, 그 파급양상이 위기에 가장 어려워지는 중하위층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작용할 건덕지는 적다.

반면 임금삭감을 당연시하고 정당화하는 악용의 위험은 크다. 누구의 발상인지 참 구태스럽고 사회구성원의 자발적 힘을 무시하며 사회구조 혁신의 필요에 역행하는 처사인 것만은 분명하다. 경총이라도 자성하는 계기가 된다면 그나마 다행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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