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20.4.5 일 08:00
상단여백
HOME 사회ㆍ복지ㆍ교육 노동복지
[‘마트에서 일하는 주제에’] 고객 폭언에 쓰러진 마트노동자 산재 인정업무상질병판정위, 업무상재해 승인 … 노동계 “노사합의로 고객 갑질 응대매뉴얼 마련해야”
▲ 일러스트 김혜진

지난해 9월 서울 홈플러스 ㄷ지점에서 계산업무를 수행하다 고객의 폭언을 들은 이아무개(58)씨가 귀가 후 20분 만에 자택 화장실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매장에서 고객에게 폭언을 들은 지 3시간 만의 일이다. 이후 병원에 후송돼 뇌출혈 진단을 받은 이씨는 10일 만에 사망했다. 고인의 유가족은 사고 직후 고인의 사망이 업무상재해라며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다. 당뇨 의심·고혈압 환자로 뇌출혈을 일으키거나 악화할 만한 기저질환을 앓고 있던 고인은 산재를 인정받았을까.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가 최근 이씨의 죽음을 산재로 인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질병판정위는 통상적인 수준을 넘어서는 고객의 폭언이 뇌출혈과 상당인과관계에 있다고 봤다. 노동계는 “고객 응대 노동자의 감정노동은 사망에 이르는 업무상재해로 이어질 수 있다”며 “감정노동자 고객 갑질·폭언시 대응 매뉴얼을 노사합의로 보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고객 폭언 이후에도 자리 못 떠난 감정노동자

24일 마트산업노조를 통해 <매일노동뉴스>가 확보한 고인의 업무상질병판정서에 따르면 고인은 지난해 9월9일 오후 5시께 계산업무 수행 중 약 2분30초간 고객과 심한 언쟁을 했다. 고인의 직장동료에 따르면 고객 A씨가 “적립카드 있으세요”라는 고인의 물음에 응답하지 않자, 고인은 재차 적립카드 소지 여부를 물었다. A씨는 “찾고 있는데 왜 말이 많아” “여기는 고객 접대가 왜 이래”라고 말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고인은 “접대라뇨. 여기가 술집입니까”라고 되물었고, A고객은 “술집만 접대하나” “여기서 일하는 주제에 왜 이렇게 말이 많아” 하며 언성을 높였다. 보다 못한 주변 동료의 개입으로 실랑이는 종료됐다.

고인은 해당 사건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회사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고인은 퇴근 전까지 1시간30분가량 업무를 더 수행해야 했다. 홈플러스와 노조 홈플러스지부가 2018년 1월 체결한 단체협약 91조(감정노동자 보호) 3항에는 “고객에 의한 폭언·폭행 발생시 직원은 즉시 응대 거부를 하며 상위 책임자가 응대를 실시한다”고 규정돼 있다. 91조4항에는 “고객으로부터 부당한 폭언 등 심각한 감성적 훼손이 인정될 때는 직원에게 한 시간의 마음관리시간을 제공하며, 해당 고객과 2차 대면은 원칙적으로 금지한다”고 돼 있다.

질병판정위는 “(고인이) 심리적 충격을 받고도 충분한 휴식, 근무조정 등 사업주의 즉각적인 조치가 이뤄지지 않아 신체부담이 가중됐을 것으로 보인다”며 “고인의 상병 뇌출혈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 37조1항2호에 따른 업무상질병으로 인정된다”고 판정했다. 고인의 기저질환은 뇌출혈 발병과 악화에 기여했을지라도 결정적인 원인이 된 것은 아니라고 봤다.

“노사 합의로 고객 응대 매뉴얼 손봐야”

고인의 사건을 담당한 유상철 공인노무사(노무법인 필)는 “고객의 부당한 갑질이나 폭언이 계산원 상황에 따라 급성과로로 사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라며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근로기준법 76조의2·76조의3)이 생기고 산업안전보건법에 정신건강장해 예방 내용이 포함되는 등 개정된 관련 법들의 적용을 받아 이 같은 결과가 나올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산업안전보건법 41조에는 “고객의 폭언 등으로 고객응대 근로자에게 건강장해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현저한 우려가 있는 경우 업무의 일시적 중단 또는 전환 등의 조치를 사업주가 취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37조1항2호에 따르면 “근로기준법 76조의2에 따른 직장내 괴롭힘, 고객의 폭언 등으로 업무상 정신적 스트레스가 원인이 돼 발생한 질병은 업무상질병”으로 규정하고 있다.

해당 사건과 유사한 일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려면 노사합의로 업무 매뉴얼을 구체적으로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인임 일과건강 사무처장은 “고객의 폭언·갑질 강도에 따른 행위를 구체적으로 매뉴얼에 적시하지 않으면 산업안전보건법이 예방법으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없게 된다”며 “개별 직종의 특수상황과 고민을 반영해 노사합의 매뉴얼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예를 들어 마트현장에서 고객이 해당 직군을 폄하하는 경우가 많아 마트노동자들에게는 욕설만큼이나 폄하발언이 더욱 자극적일 수 있다”며 “고객의 무시발언이 있는 경우 노동자는 현장을 즉시 피할 수 있다는 규정을 노사합의로 넣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홈플러스 업무 매뉴얼에 따르면 고객의 폭언·욕설로 직원이 공포심·불안감을 느끼는 경우 고객에게 정중히 자제해 줄 것을 세 차례 요청한 뒤 관리자에게 보고하고 현장을 이동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현장에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정준모 노조 교육선전실장은 “단체협약이나 회사 업무 매뉴얼에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 나와 있어서 문제를 제기하면 바로 시정되기는 한다”면서도 “현장노동자와 관리자가 매뉴얼대로 훈련돼 있지는 않아 노동자의 개별적 문제제기 없이 즉각적인 조치가 이뤄지는 상황은 아니다”고 말했다.

강예슬  yeah@labortoday.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강예슬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1
전체보기
  • 2020-03-25 14:03:39

    고객이 갑이 아니듯 노동자도 갑은 아님. 못들은것 같아 두번물어봤다가 아닌 여기가술집이냐고 되묻는 것도 평범해 보이지는 않음.
    국민만 각양족쇄를 채워 한마디도 못하게 만드는 법은 그만 만들자.   삭제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