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폭증하는 코로나19 확진자수에 시장이 곤두박질치고 있다. 날이 갈수록 더 많은 나라들에서 국경은 폐쇄되고 도시가 봉쇄되고 있다. 주가는 추락하고 환율은 치솟고 경기는 얼어붙고 있다. 코로나19 공포가 세상을 집어삼키고 있다. 이 자본의 세상을 대공황의 공포에 몰아넣고 있다. 이제 세계보건기구(WHO)의 팬데믹 선언은 세계경제가 공황에 돌입하게 될 것이라는 예보가 돼버렸다. 지난 18일 국제노동기구(ILO)는 전 세계적으로 최대 2천470만개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는 분석 보고서를 공개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2% 감소하는 시나리오에선 530만개, 4% 감소하는 시나리오에선 1천300만개, 8% 감소하는 시나리오에선 2천47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당시 실업자 2천200만명보다 많은 것이라고 ILO는 설명했다. 고용감소에 따른 노동자들의 소득도 올해 말까지 8천600억달러에서 3조4천억달러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런데 위와 같은 ILO의 고용 및 소득 지표조차도 오늘은 “이미 터무니없이 낙관적인 수치가 돼 있었다”고 ILO 이상헌 고용정책국장이 고백했다고 보도됐다(매일노동뉴스 2020년 3월23일자). 가이 라이더 ILO 사무총장은 “코로나19는 더는 글로벌 보건 위기만이 아니라 노동시장과 경제의 위기이기도 하다”고 지적하며, 한국을 비롯한 각국 정부에 적극적인 정책대응을 주문했다. 구체적으로 노동자의 고용·소득 보호를 위해 유급휴가·재택근무 적용 같은 노동자 보호, 적극적 재정정책·완화적 통화정책 등 경제 및 노동 수요 자극, 모두에 대한 사회안전망 강화를 정책대응 방향으로 제시했다.

2. 한국경총이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제적 위기를 극복하고 기업환경 개선을 통한 국제경쟁력 제고를 위해 경제·노동 8대 분야에서 입법 개선과제를 담은 ‘경제활력 제고와 고용·노동시장 선진화를 위한 경영계 건의’를 지난 20일 국회에 제출했다고 23일 밝혔다. 이 건의는 코로나발 경제위기에 대한 이 나라 자본의 정책대응이라고 할 수가 있다. 경총은 “세계적으로도 후진적이라 평가받고 있는 노사관계 법·제도를 선진화해야 한다”며 이같이 건의했다고 보도됐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를 위한 법·제도 개선’을 위해선 탄력적 근로시간제도와 선택적 근로시간제도 개선, 특별(인가)연장근로 허용 사유 확대 등 근로시간제도 유연성 확대, 경영상 해고 요건을 현행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에서 경영상 판단에 따른 인원 조정 등 ‘경영합리화 조치가 필요한 경우’로 완화하고, ‘고비용·저생산성 구조 개선’을 위해 최저임금 산정기준 시간수를 ‘소정근로시간’만으로 최저임금법에 규정(최저임금법 조문 신설)하며, ‘합리적이고 균형 잡힌 노사관계 구축’을 위해서는 사업장 내 시설을 점거하는 형태의 쟁의행위 금지 신설, 쟁의행위시 대체근로를 전면금지하는 규정 삭제, 노동조합의 부당노동행위 규율 규정 신설, 현행 사용자 형사처벌 규정 삭제, ILO 핵심협약 비준 논의시에도 이러한 경영계 입장의 반영을 요구했다. 또한 ‘국제수준에 맞는 경영책임의 적정성 확보와 형벌 개선’으로는 근로시간 위반에 대한 형사처벌 폐지 또는 축소,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상 파견허용업무 및 2년 사용기간 위반행위에 대한 형사처벌 폐지가 필요하다고 했다. 한마디로 이건 코로나발 경제위기를 이용해서 노동자의 권리와 자유를 위한 법·제도를 후진적이라고 비난하면서 노동자의 권리를 삭감하고 노동자의 자유를 규제하는 법·제도를 관철해 내겠다고 나선 것이다. 자본의 위기를 기회로 이용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3. ILO가 한국 정부에 노동자의 고용 및 소득 보호를 위한 대책을 촉구하고 있음에도 대한민국에서 자본은 정리해고 요건완화, 최저임금 저하를 통해 고용을 위태롭게 하고 임금 저하를 통해 소득을 감소시키겠다는 것이고, 사업장 쟁의 금지 및 대체근로 허용 등으로 쟁의행위 규제를 확대함으로써 노동자의 저항을 막겠다는 것이다. 심지어 파견허용업무 확대 등 파견법 개정을 통해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대체하겠다는 것이다. ILO의 주문을 이 나라에서는 받아서는 안 된다고 권력에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한자로 위기는 위험과 기회를 합친 말인데, 경총은 오늘을 사용자 자본을 위한 노동입법을 관철하는 절호의 기회로 여기고 있는 게 분명하다. 위험, 즉 닥쳐오는 두려움을 노동에 전가함으로써 벗어나 보겠다고, 세상의 위기를 자신의 기회로 삼겠다 하고 있다. 사실 새롭지 않다. 1997년께 외환위기 당시에도 정리해고제에 관한 근로기준법 개정과 파견근로를 허용하는 파견법 제정이 있었다. 정리해고와 기업구조조정으로 많은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고, 수많은 노동자가 비정규직으로 전락했다. 그렇게 자본의 위기는 노동의 부담으로 전가됐다. 이러한 자본의 노동에 대한 전가에 법은 무력하기만 했다. 노동기본권은 노동자를 사업장에서 내쫓는 자본의 구조조정에 맞설 수 없었다. 불법과 범죄로 규정돼 국가권력에 의해 철저히 진압됐다. 만도기계·조폐공사 등 수많은 사업장에서 발생한 노동자들의 저항은 법원 판결문들에 정당하지 않다고 반복해서 기재됐을 뿐이다. ‘합리적이고 균형 잡힌 노사관계’는 대한민국의 노동법 아래서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23년이 지난 오늘, 이 나라 노동자들은 다시 그 법 아래 서 있다. 여전히 정리해고 같은 자본의 구조조정에 맞선 노동자의 저항·쟁의는 불법으로 징계와 손해배상을 당하고, 범죄로 노조법 위반 등으로 처벌받는다. 박근혜 정권 심판을 위한 촛불집회에 연대했던 터라 문재인 정부에 대해 조금의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국회 다수를 차지하는 집권여당이 공약한 ILO 핵심협약 비준은 기껏해야 국회에 몇 개 조항의 노동법 개정안을 제출하고서 20대 국회를 마감한 채 다음을 기약해야 하는 처지가 돼 버렸다. 더 심각한 문제는 설령 그 개정안이 입법되더라도 크게 달라질 게 없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정리해고법과 파견법 등 비정규직법이 존재하지 않는 1997년 이전의 법으로 되돌리겠다는 권력의 의지는 어디서도 찾아 볼 수도 없었다. 오늘 ‘노동존중 사회 실현’을 공약할 때의 의지는 찾아볼 수가 없다.

4. 18일 경총 회장 등 5개 경제단체장,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위원장,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 집권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등이 참석한 ‘주요 경제주체 초청 원탁회의’가 청와대에서 열렸다. 이날 회의를 마친 뒤 문재인 대통령과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이 비공개 오찬을 했는데, 이 자리에서 김명환 위원장은 비상경제회의 참여 의사를 밝혔다고 보도됐다. 민주노총은 그동안 경사노위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문재인 정부의 비상경제회의에는 참여한다는 것이니 논란이 있을 수 있겠다. 그동안 사회적 대화 참가를 두고서 노동운동 진영의 논란을 벌였던 것을 볼 때 말이다. 어찌될 것인가. 사회적 대화에 참가하게 되면 노동자 양보만 강요받게 될 것이라는 반대 논리가 이번에는 타당하지 않은 것이었다고 이 나라 노동자들에게 보고할 수 있을 것인가. 자본의 위기를 노동에 전가하고자 달려드는 경총 등 경제단체와 이를 대변할 경제부처 등 자본과 권력에 맞서 고용·임금을 포함한 노동자권리를 지켜 내고 나아가 이 나라 노동자에게 보다 많은 권리와 자유를 가져다줄 것인가. 나는 지금까지 이 나라에서 사회적 대화에 참여해서 그걸 관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지 않았다. 그것이 경사노위가 아닌 비상경제회의라고 해서 달라질 것이라고는 믿지 않는다. 물론 ‘노동존중 사회 실현’을 약속한 문재인 대통령이니 다를 것이라고 기대하고, 적어도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아래서처럼 노동자가 무참하게 짓밟히지 않기 위해서, 참여해서 적극적으로 자본의 노동에 대한 전가행위를 저지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나도 기대가 있다. 보다 많은 노동자의 권리와 보다 높은 노동자의 자유까지는 아니라도, 적어도 지금의 권리와 자유를 삭감당하지 않기를 바라고 싶다. 코로나로 인한 경제위기에서 노동자의 고용과 임금소득이 보호돼야 한다는 ILO의 주문만이라도 정부정책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싶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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