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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시기에 더 배제되는 불안정 노동자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서울 구로에 있는 콜센터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좁은 공간에서 밀집해 일하는 곳인지라 바이러스가 쉽게 퍼질 수밖에 없었으리라.

다른 콜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도 몹시 걱정하고 있을 것 같아서 전화를 했다. 회사에서는 시차출근제를 시행한다고 했지만 노동자들 입장에서 그건 생색내기일 뿐 대안이 될 수 없다고 했다. 한 콜센터는 한 곳의 업무가 마비돼도 다른 곳에서 진행할 수 있도록 업무를 쪼개서 노동자를 분산 배치했다고 했다. 업무지가 바뀐 노동자들은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노동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회사 업무 중단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면서 노동자 의견은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

간병노동자들은 병원에서 상주하며 환자를 돌본다. 병원이 감염병 관리를 잘 하려면 병원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들의 안전을 위한 조치를 해야 한다. 그런데 간병노동자들은 마스크 지급의 사각지대가 됐다고 했다. 병원에서 24시간 일하는 노동자들이 긴 시간 줄을 서서 두 개의 마스크를 살 수도 없고, 환자 보호자들이 동분서주해도 마스크를 쉽게 구하기 어렵다. 고용노동부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사업장 대응지침을 발표하며 비정규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은 안 된다고 말했지만 간병 노동자들은 사업장 비정규직도 아닌 특수고용이라는 이유로 마스크 지급 대상에서 제외됐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생계에 위협을 겪는 노동자들도 있다.

노동부 장관은 “학교 휴업조치는 감염병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한다는 불가항력적인 방안이므로 근로기준법상 휴업수당 의무가 발생하지 않는다” 고 말했다. 초·중·고등학교 개학이 연기돼 학교비정규 노동자들이 임금을 받지 못하는데 정부가 나서서 휴업수당 지급 근거를 없애 버린 것이다.

문을 닫는 가게들이 많지만 5명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상 휴업수당이 적용되지 않는다. 하청노동자들이나 파견노동자들은 고용유지지원금 혜택도 받지 못한 채, 강제로 연차를 소진한 뒤 무급휴직에 들어가고 이후 권고사직을 당하기도 한다. 사회가 안정적일 때도 불안정하던 노동자들은 위기의 시기에 권리에서 더 배제된다.

‘사회적 거리 두기’는 안정적인 노동을 하고 생활 가능한 자원이 있는 이들에게만 해당하는 지침이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는 노동자들 대다수가 안정적인 업무 공간에서 일하며, 모임이나 종교활동은 생계와 무관한 활동이라고 간주했다. 코로나19 증세가 있으면 회사에 양해를 구해 14일간 격리를 하는 것이 가능한 것처럼 간주했다. 하지만 현실은 이와 달랐다. 배달노동자·돌봄노동자 등 대면해 일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가 많고, 콜센터 노동자를 포함해 많은 노동자들은 거리 두기가 불가능한 좁은 공간에서 일해야 했다. 코로나19 증세가 있다고 해도 일을 중단하면 생계가 불가능한 노동자들도 많았다. 안전을 위한 여러 조치의 사각지대도 많았다. 코로나19 자체보다 코로나19로 인한 권리에서의 배제가 더 큰 문제였다.

이런 현실을 예외적인 것이라고 간주하면 안 된다. 우리 사회는 불안정한 노동을 하는 이들이 절반을 넘는다. ‘사회적 거리 두기’ 지침이 현실화하기 어려운 이유다.

불안정 노동자들을 염두에 둔 감염병 대응 매뉴얼이 만들어져야 한다. 돌봄노동자처럼 대면해 일을 하는 노동자들에게 안전을 위한 자원을 먼저 분배해야 하고, 휴업수당 사각지대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소득이 불안정해지는 이들을 위한 소득보전 방안을 마련해 예산을 편성해야 한다. 감염병에 취약한 노동환경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한 대안도 마련해야 한다. 그런데 이 매뉴얼은 책상머리에서 나올 수 없다. 불안정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반영해 그 현실에 기반해 만들어야 한다.

코로나19 확산이 멈추면 우리 사회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마스크 지급에서 배제됐던 돌봄노동자들은 여전히 감염병에 취약한 이들을 돌볼 것이고, 콜센터 노동자들도 여전히 좁은 공간에서 후두염과 이명과 방광염을 달고 일할 것이다. 학교비정규직은 여전히 적은 임금을 받고 노동하며, 5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은 여전히 쉽게 해고될 것이다.

이 현실을 바꾸려고 노력하지 않는 이상 다시 일상이 돼 버릴 것이다. 앞으로도 감염병은 반복될 것이다. 그때마다 불안정한 노동을 했던 이들은 더 심각한 위험에 노출될 것이고 안전의 사각지대에 놓일 것이다. 또다시 생계에 고통을 받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불안정 노동자를 위한 감염병 매뉴얼이 절실하지만 그것도 미봉책일 뿐이다. 진짜 대안은 불안정한 노동자들이 뭉쳐서 노동자 권리를 찾는 것이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work21@jinbo.net)

김혜진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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