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두현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대상판결 : 부산지법 서부지원 2020. 1. 22. 선고 2019카합24 업무방해금지가처분



1. 사건의 개요

학교법인 동아학숙이 운영하는 동아대는 시설관리 및 청소업무를 용역업체인 주식회사 원봉에 위탁하고 있다. 원봉 소속으로 동아대에서 일하는 미화직 노동자들은 지역별노조인 부산지역일반노조에 가입해 지난해 2월11일 단체교섭을 요구했다. 그러자 동아대 관리과 직원과 원봉 현장소장은 미화직 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 탈퇴를 종용하는 부당노동행위를 자행했다.

2019년 3월13일 노조는 부당노동행위를 규탄하는 현수막 한 장을 동아대 본부(바로 옆에 원봉 사무실이 있다) 앞 화단에 설치했는데, 동아대는 이를 임의로 철거했다. 이후에도 동아대는 노조에서 설치한 현수막을 임의로 철거하는 행위를 반복하는 한편 노조의 합법적인 학교 내 집회를 원천 차단하고자 대학 캠퍼스 내 집회, 현수막 설치는 물론 캠퍼스 인근 100미터 이내로의 출입까지 금지하는 가처분을 제기했다. 이에 대항해 노조는 대학본부 앞의 상당한 범위 내의 현수막 설치는 정당한 노동조합활동이므로, 이를 철거하거나 효용을 해하는 행위의 금지를 구하는 가처분을 제기했다.

2. 채권자 노조의 주장

노조는 헌법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에 따른 정당한 조합활동으로 사업장 내에서 각종 집회 및 홍보활동 등 상당한 범위 내에서 조합활동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있고, 비록 조합활동 장소가 직접 사용자가 아닌 원청의 관리지배하에 있다 할지라도 당해 장소는 비정규직 조합원들의 근무장소에 해당하므로 상당한 범위 내에서 조합활동으로서 일정한 현수막 게시는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본래 노조활동은 사정에 따라 다양한 장소와 시간·형태를 가질 수 있으므로, 모든 형태 조합활동의 방해금지를 구하는 가처분신청은 지나치게 포괄적이어서 인용되기 어렵거나 설령 인용된다 하더라도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이에 노조는 다음과 같이 방해의 금지를 구하는 조합활동의 범위를 사업장 내 현수막의 설치로 한정하고, 설치할 현수막의 내용과 개수, 설치 장소와 기간을 구체적으로 특정했다.

① 현수막 설치 장소 : 미화직 조합원들의 고용주인 주식회사 원봉의 사무실이 있는 곳이자 미화직 근로자들이 활동하는 장소이고, 나아가 근로조건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채무자 관리자들이 있는 곳이기도 한 동아대 승학캠퍼스 내 대학본부 건물 앞으로, 차량 및 사람의 통행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인도 바깥쪽 화단에 설치.

② 현수막 개수 : 조합활동과 채무자의 시설관리권이 조화를 이루는 범위 내로 하기 위해 3개 이내.

③ 현수막 내용 : 노조의 단결권 유지와 단체교섭 요구사항 등 노조법 1조의 목적에 부합하는 것으로 한정(별지를 통해 구체적인 예시를 제시).

④금지를 구하는 기간 : 2019년 현재 쟁의상태에 있는 채권자 노조와 주식회사 원봉(또는 채무자) 간의 단체협약 체결시까지.

또 노조는 원청인 동아대가 사업장 내에서 근무하는 사내하청 미화직 비정규직들의 노조활동을 원칙적으로 보장해야 할 뿐만 아니라, 비정규직들 근로조건 결정에 실질적 지배력을 가지는 자로서 노조법상 사용자에 해당한다는 측면에서도 동아대가 미화직 비정규직들의 노조활동에 대해 수인의무를 부담한다는 주장을 했다.

3. 대상판결의 요지

대상판결은 비록 비정규직들이 학교법인과 직접고용 관계에 있지는 않지만, 다음과 같은 사정을 종합하면 노조활동으로서 신청취지와 같은 방법으로 현수막을 설치할 권리가 있다고 판단했다.

1) 현수막 설치 장소가 노조활동과 장소적 관련성이 매우 크고, 위 장소에의 현수막 설치가 보행자 통행에 방해가 된다는 사정은 보이지 않는다.

2) 현수막 설치를 인용하는 부분의 문언은 노조의 단결권 유지와 행사 등 노조법 목적에 부합하고, 현수막 설치만으로는 학생들의 학습권 침해의 정도가 크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3) 동아대 규정상 교내 현수막 게시는 학교측의 승인을 받도록 하는 지침이 있기는 하나 동아대 관리과 직원과 하청 현장소장의 부당노동행위 경위 등을 보면 학교측이 노조가 설치한 현수막을 당연히 승인할 것이라 기대하기 어렵다.

다만 대상판결은 현수막의 내용 중 “실질적 사용자인 학교가 책임 있게 나서라”는 부분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일부 기각했다.

1) “실질적인 사용자인 학교가 책임 있게 나서라”는 내용은 문언상 원봉이 아닌 원청인 동아대측을 향한 것이다. 비록 노조가 동아대와 비정규직 조합원들의 정규직 전환을 논의하고 있기는 하나 이런 사정만으로 동아대를 상대로 노조활동을 할 필요성이 크다고 볼 수 없다.

2) 부산지방노동위원회는 동아대가 미화직 비정규직들의 실질적 사용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노조의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각하했고, 이 사건 기록상으로도 동아대가 미화직 비정규직들에 대한 사업주로서의 권한과 책임을 일정 부분 담당하고 있다고 볼 정도로 근로조건에 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다고 보기 어렵다.

4. 평가

이 사건의 쟁점은 ① 노조의 사업장 내 현수막 설치가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상 허용규정이 없는 경우라도 정당한 노조활동으로 보장될 수 있는지 ②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조가 원청사업장 내에서 노조활동을 할 수 있는지다. 나아가 ③ 노조측에서 노동 3권을 피보전권리로 해 특정한 노조활동의 방해배제를 선제적 가처분으로 구할 수 있는지도 이 사건의 주요한 쟁점이었다. 사용자가 시설관리권에 기반해 노조활동의 금지를 구하는 가처분은 그 대상인 활동이 이미 진행 중에 있으므로 구체적으로 특정될 수 있지만, 노조에서 선제적으로 방해배제를 구하는 경우에는 노조활동의 가변성에 비춰 봤을 때 신청취지를 특정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이 때문에 자칫 지나치게 포괄적인 가처분이란 이유로 배척될 수도 있고, 설령 따져 보려 해도 다른 법익과 비교형량을 하기 곤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상판결은 우선 ①부분 쟁점과 관련 노조활동이 비록 사내규정(취업규칙)상 허가를 요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여러 경위를 종합해 정당한 노조활동으로 보장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는 시설관리권과 충돌하는 노조활동의 정당성에 관해 사용자의 기업운영에 실질적 지장을 초래하지 않는 경우에는 조합활동이 정당성을 갖는다는 다수설(실질적 지장설)과 이와 가까운 입장을 취한 대법원 1997. 12. 23. 선고 96누11778 판결의 태도를 일정 부분 수용한 판단으로 보인다.

특히 대상판결은 현수막 설치 장소와 내용 등 노조활동 필요성과, 학생들의 학습권 및 학교측의 시설관리권 침해의 정도를 비교형량해 판단하는 방식을 취했는데, 이는 ③부분 쟁점과 관련해 노조가 선제적으로 현수막 훼손금지 가처분을 신청하는 경우에도 이 사건과 같이 노조가 설치할 현수막의 개수와 내용, 설치기간과 장소를 구체적으로 특정해 사용자의 방해금지를 신청하면 양자의 법익을 비교해 인용결정을 할 수도 있다는 사례로서 향후 현장 유사 사안에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대상판결은 동아대가 미화직 비정규직들의 근로조건에 관해 실질적 지배력을 갖는 노조법상 사용자로서의 지위에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현수막 중 동아대를 직접 상대로 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일부 기각했다. 그러나 법원은 같은날 반대로 동아대가 노조를 상대로 교내 출입 및 집회, 현수막 설치 등의 금지를 구한 가처분을 모두 기각하는 결정(부산지법 서부지원 2020. 1. 22.자 2019카합100320 결정)을 하면서 근로조건에 관해 원청인 동아대를 직접 규탄한 현수막에 대한 학교측의 철거신청도 “(해당 현수막 설치가) 위법한 쟁의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즉 학교측이 제기한 가처분 사건에서는 정반대로 원청인 동아대를 상대로 한 내용의 현수막 게시도 정당한 쟁의행위로 인정하는 다소 모순적 태도를 보인 것이다. 노사 양측이 각 제기한 위 가처분 결정에 대해 노사 모두 항고하지 않아 확정됐지만, 법원이 노조가 제기한 사건에서 동아대를 직접 상대로 한 현수막 내용만을 굳이 일부 기각한 부분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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