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지난 1월 한국노총의 새로운 지도부가 탄생했다. 박빙의 선거 끝에 52표 차로 당선한 김동명(52·사진) 위원장은 “숫자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강조한다. “1노총, 200만 조합원 달성 같은 실적이 아니라 플랫폼·특수고용·비정규 노동자가 한국노총을 찾아올 수 있도록 길을 만드는 데 주력하겠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노동은 존중이나 시혜의 대상이 아니라 당당한 주체”라는 점을 강조한다. “정부에 민원 넣고 청탁하는 한국노총이 아니라 정책협약 파트너로서 위상과 역할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한 그는 후보 시절 공약으로 문재인 정부에 정책연대협약 전면재검토를 내걸었다. 문재인 정부와의 정책연대협약 이행의지가 있는지 확인한 후 총선방침을 정하겠다는 선전포고나 다름없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한국노총은 지난달 온라인으로 치른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총선방침을 결정했다. ‘노동존중 정책연대협약의 확고한 이행’과 ‘지속가능한 노동존중 사회 실현을 위한 교두보 마련’이 핵심 키워드다. 김 위원장은 지난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회관에서 <매일노동뉴스>와 만나 “(총선방침은)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지지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그는 “노동존중 실천 국회의원을 지지하는 것이 한국노총의 총선방침”이라고 했다. 노동존중 가치를 실천하는 21대 국회를 구성하는 것이 한국노총의 큰 그림이라는 뜻이다.

- 조직개편이 마무리되면서 김동명 집행부의 진용이 갖춰졌다. 1월21일 당선 후 50여일 지났는데 소회가 궁금하다.
“오랫동안 노동운동을 했지만 이론적으로 공부한 게 아니다. 실제 현장에서 부딪치면서 노동운동을 했다. 그러면서 바꾸고 싶었던 문제도 있고, 꼭 지키고 싶었던 원칙도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원칙과 이론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현실을 날카롭게 직시하고, 현실에서 부딪치는 수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걸 새삼 느꼈다.”

- 제일 어려웠던 문제는 무엇이었나.
“인사다. 기존 인력을 재배치하는 것이다 보니 한계가 있었다. 조직확대가 가장 중요한 과제다. 조직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지만 정책이나 홍보에서 인력을 뺄 수 없었다. 추후에 노동의미래위원회를 만들어 외·내부 전문가와 충분히 상의할 예정이다. 부족한 인력은 신규채용하고, 훌륭한 능력을 갖춘 외부인력 수혈도 필요하다.”

- 코로나19 여파로 정기대의원대회가 사상 처음 온라인으로 개최됐다.
“코로나19로 활동이 많이 제약됐다. 취임 후 첫 정기대의원대회인 만큼 쌍방향 소통을 많이 하고자 계획했다. 코로나19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온라인으로 치르게 돼 다양한 현안들에 대해 대의원들과 깊은 토론을 하지 못한 점은 아쉽다. 다만 모바일투표에 대의원들이 높은 참가율과 찬성률을 보내 줘 감사하다.”

- 앞으로도 모바일투표를 적극 활용할 계획이 있나.
“긴급성을 요한다거나 다양한 조직의 의견을 듣고 싶을 때 쓸 만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처음에 여러 우려도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해 보니 편리했다.”

“코로나19로 노동자 희생 강요받지 않게 대비하겠다”
 

- 코로나19 창궐로 노동자 건강은 물론 생존권까지 위기로 몰리고 있다.
“지난달 26일 마스크 1만장을 들고 대구에 다녀왔다. 코로나19로 모두가 불안하다. 국가적 재난을 극복하기 위해 동참하고 응원한다면 불안의 확대가 아니라 불안을 계기로 결속이 확대될 수 있다. 서로 나누고 배려하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고 본다. 코로나19로 인한 직접 피해도 문제지만 코로나19 이후가 더 큰 문제다. 노동시장 불안이 걱정된다. 경기가 침체되고 사회분위기가 어려워지면 이를 틈타 노동에 대한 압박 내지 탄압이 거세질 수 있다. 철저하게 대비하겠다.
지난 12일 오전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과 정책협의를 갖고 모든 노동자의 차별 없는 고용안정과 건강권 보호를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대안을 만들어 달라고 당부했다. 한국노총이 코로나19로 피해를 보는 산하조직 실태를 조사했더니 무급휴직과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곳도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코로나 정국을 악용해 특별연장근로를 하고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를 무력화하려는 시도가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강력한 근로감독이 필요하다. 임금삭감이나 강제 무급휴가처럼 법을 위반하며 노동자 희생을 강요하는 행위는 중단돼야 한다.”

- 코로나19 정부 대책과 관련해 정책협의에서 특별히 강조한 점이 있다면.
“한국노총 차원에서 모금을 통해 1억원가량 마련했다. 곧 피해노동자에 성금을 전달하고 임원과 사무총국 전체가 헌혈도 할 예정이다. 국가적 재난인 만큼 한국노총도 어려움을 해소하려고 돕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 정부에 요청한 것도 그런 부분이다. 특히 근로기준법 사각지대에 있는 5명 미만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피해가 상당하다. 이들 대부분 고용보험에도 가입하지 않아 정부 코로나19 대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정작 어려운 사람들에게 혜택이 가지 않는 대책은 대책이 아니다. 영세사업장 근로감독을 철저히 해 달라고 했더니 노동부측에서 영세사업장은 사업주도 영세한데 꼭 그래야 하냐고 되묻더라. 영세사업장 노동자 권리를 훼손하고 희생시켜서 해결하려는 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발상이다.”

- 재난기본소득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각계에서 나오는데 한국노총 입장은 무엇인가
“기본적으로 재난기본소득 취지에 공감한다. 현재 상황이 너무 안 좋다. 당장 실현 가능한 대책도 필요하다. 노동부와 정책협의 과정에서 한국노총은 상병수당 도입을 요구했다. 코로나19 감염 위험에 노출된 비정규직이나 특수고용직, 영세 자영업자가 의료비 걱정 없이 치료받을 수 있도록 상병수당을 지급해야 한다. 업무상질병은 물론 업무 외 질병으로 소득이 상실된 경우에도 임금을 일정 수준에서 보장해 줘야 한다. 이미 프랑스나 독일·영국·일본·스웨덴 등 많은 나라에서 실시하는 제도다. 이재갑 장관도 상병수당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다. 재난기본소득처럼 몇 조원의 예산이 필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당장 시행 가능하다.”
 

▲ 정기훈 기자

“날카로운 정치방침보다 중요한 것은 조직의 단결”

- 한국노총 총선방침으로 더불어민주당과 공동선거대책본부를 만들고 지지후보도 같이 선정하기로 했다. 한국노총에 이번 총선이 갖는 의미와 목표가 궁금하다.
“노동존중 가치를 실현하는 21대 국회 구성이 우리 목표다. 우리나라 경제 규모가 세계 10위권이지만 노동자들은 이에 걸맞은 대우를 못 받고 있는 게 현실이다. 경제 규모에 걸맞은 노동자 권리보호를 위한 국회가 만들어져야 한다. 더불어민주당과 공동선거대책본부를 구성하기로 했지만 전면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아니다. 노동과 관련한 선거대책기구에만 참여한다. 후보 역시 마찬가지다. 더불어민주당의 모든 후보를 지지하는 게 아니다. 이런 부분이 일부 언론에서 확대돼 보도된 것 같아 우려스럽다. 한국노총의 총선방침은 노동존중 가치 실현 의지를 가진 국회의원 후보를 지지하는 것이다. 가령 더불어민주당에도 반노동행위로 부각된 의원들이 분명 있다. 그런 의원까지 지지할 이유가 없다. 2017년 대선 당시 정책연대협약을 체결했을 때는 전면적 지지였다면 이번 총선은 이를테면 제한적 지지라고 볼 수 있다.”

- 지난 총선방침과 차별화된 점도 있다. 노동존중 실천 국회의원단을 구성키로 한 점이 그렇다.
“요구만 하고 알아서 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요구를 관철할 방법을 보다 정교하게 보강했다. 한국노총 명예와 자존심을 걸고 선거를 도울 테니 더불어민주당도 21대 국회에서 모든 실력을 다해 약속을 지키라는 것이다.”

- 한국노총 출신 후보들이 여러 당에서 출마한다. 노동존중 가치를 실현하기 어려운 당도 있다. 총선방침과 지지후보가 충돌하는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까.
“정치는 민감하고 예민하다. 한국노총은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다. 노동에 대한 이해를 갖고 있고 노동을 대변할 후보를 지지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한국노총에서 활동한 경력을 가진 후보는 큰 틀에서 친노동 후보로 보는 데 무리가 없다. 그런 후보를 지지하는 것이 총선방침과 충돌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한국노총 총선방침이 나왔다. 앞으로 지지후보는 어떻게 결정하나.
“규약에 모호함이 있다. 중앙위원회는 국회의원 선거에서 비례대표와 지역구 후보를 정당에 추천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지지후보를 정하는 기구는 아니다.
지지후보는 내부에서 논의 중이다. 총선방침이 포괄적인 측면이 있다. 하지만 정치 영역은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좁혀 들어가면 치열하게 싸울 수밖에 없다. 정치방침을 정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지점은 정치방침이나 행위로 조직분열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아주 날카로운 정치방침을 낼 수도 있겠지만 조직의 분열을 막는 데 초점을 맞췄다. 정치를 통해서 조직이 단결돼야지 아무리 좋은 정치를 꿈꿔도 조직 분열로 이어지면 실익이 없다.”

“200만이라는 숫자에 연연하지 않겠다”

- 지난 선거 과정에서 1노총 지위 확보가 과제로 떠올랐다. 기업별노조 중심의 한국노총에서 조직확대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전국 단위 일반노조 건설을 공약했는데 어떻게 추진할 계획인가.
“아프고 열악한 노동자가 찾아오는 한국노총을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갈 길을 조합원) 200만 한국노총이라고 표현하는데 사실 200만이라는 숫자가 성과달성이나 실적, 이런 자본의 구호 같아서 썩 내키지는 않는다. 물론 200만 한국노총이 갖는 의미를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결혼하려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지 않나. 사랑을 하다 보면 결혼하는 것이다. 현장의 노동자와 신뢰를 쌓다보면 200만 조직화도 이뤄진다는 관점에서 접근하려고 한다. 200만 조직화를 위해 현장 비정규 노동자와 신뢰를 쌓는 게 아니다. 전국 단위 일반노조라는 큰 틀의 공약을 제시했다. 그런데 위원장이 공약했다고 해서 꼭 그것만 살리려고 협소하게 생각하지 마라고 얘기했다. 노동자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조직이라는 큰 틀에서 일반노조뿐 아니라 다양한 방법들을 찾고 있다.”

- 현장에서 가장 열악하고 어려운 노동자가 한국노총을 찾아오는 데 걸림돌이 무엇이라고 보나.
“신뢰의 위기다. 탄력근로제 같은 지난 노사정 합의만 놓고 봐도 그렇다. 한국노총이 차악이라도 책임져야 한다고 하는데 현장에서 피해를 입은 노동자 생각은 다르다. 사회적 책임이 아니라 노동의 원칙을 지키며 함께하길 바란다. 조직의 목소리는 조직 구성원의 힘에서 나온다. 지금은 비정규직의 목소리를 담아 내는 데 부족함이 있다. 하지만 비정규직 조직화가 성공하고 굉장한 세력과 숫자로 다가온다면 한국노총 정체성에 미치는 영향도 상당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경사노위 중요하지만 사회적 대화채널의 전부는 아니야,
중층적이고 다양한 대화로 복잡하고 깊은 갈등구조 해결”


- 중층적 사회적 대화를 제안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라는 공식적인 대화 테이블이 마련돼 있는 조건에서 중층적 대화구조로 확대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가. 경사노위에 대한 입장도 궁금하다.
“경사노위로 모든 사회적 대화가 집중되는 것을 반대한다. 경사노위는 여러 가지 사회적 대화채널 중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지만 전부가 돼서는 안 된다. 경사노위는 정부 정책을 포장하기 위한 기구로 이용되기도 했다. 정부 정책을 관철하기 위해 노동계를 들러리로 세웠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경사노위 출범 이후 성과가 미미한 것도 이런 영향이 있다. 사회적 대화는 보다 다양하게 이뤄져야 한다. 갈등구조는 복잡하고 미묘하다. 우리 사회가 깊은 갈등구조로 나아가고 있는데 중앙 단위의 딱딱한 교섭으로 과연 해결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의식이 있다.”

- 중충적 대화구조의 관건은 정부와 사용자를 어떻게 끌어내느냐다. 법으로 보장된 사회적 대화기구는 경사노위 외에는 전무하다.
“정부·여당에도 건의했고, 노동부에도 이야기했다. 대부분 다양한 채널을 만들어야 한다는 필요성에 공감한다. 사실 한국노총 중앙이 산별연맹별로 노정교섭 테이블을 만드는 것을 꺼린 측면도 없지 않다. 중앙에서 힘을 독점하고 분산시키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노총의 역할은 산하조직 대신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는 산하조직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토대를 만들어 주는 데 있다. 만약 그래도 문제가 잘 풀리지 않는다면 풀릴 수 있도록 조정하는 역할이 더 자연스럽다. 이재갑 장관과 처음 만난 자리에서도 그 점을 강조했다. 산하조직에서 요청이 온다면 언제든 격의 없이 만나 소통해 달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대화는 그 자체로 힘이 있다. (사회적 대화를 통해) 서로의 의견을 관철하고 중요한 결정을 내리고 법적 구속력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화의 본질은 아니다. 평상시 부부가 대화하는데 재산관리를 어떻게 할 거냐는 문제만 놓고 대화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사람 사는 다양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중요한 문제가 해결될 때도 있다. 그런데 우리의 대화는 제한돼 있다. 이만큼씩 보따리를 쌓아 놓았다가 한꺼번에 들고 와서 풀어놓으니 잘 풀리지 않는다. 일상적 대화가 많이 이뤄져야 한다. 대화 자체가 신뢰를 쌓는 행위다. 일단 많이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 어떤 위원장이 되고 싶은가.
“스스로 성과를 냈다고 자부하며 지내고 싶지 않다. 양심과 원칙을 지켰다는 마음 하나는 가지고 떠나고 싶다. 성과에 연연하면 사람이 약해진다. 원칙을 지키는 것에 중심을 두고 싶다. 욕심부리지 않고 담담하고 당당하게 길을 완주하겠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