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병욱 변호사(법무법인 송경)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뉴스에서만 봤지 나의 문제는 아닌 줄 알았다. 설이 지나고 열 몇 번째 확진자가 우리 회사 주변에 머물렀다고 했을 때도 회사 건물 지하식당에서 직원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대화를 나눴다. 2월 중순 들어 확진자가 몇천 명 단위로 늘어가기 시작하면서 여러 명이 모이는 곳에 가는 것을 조심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회사 건물에서 확진자가 나왔을 때는(물론 층은 달랐다) 혹 나도 걸린 건 아닐까 하고 1339와 콜센터 등에 전화를 하기도 했다.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선별진료소가 어딘지 그때 알아 뒀다. 물론 드라이브 스루다. 원래 계절성 감기에 강한 편이 아니어서 2월 말 감기기운이 있었을 때는 격리 아닌 격리를 시작했다. 혹시라도 나 때문에 피해를 보는 사람이 생기면 안 될 테니까 말이다. 어느샌가 생일축하 노래에 맞춰 시도 때도 없이 손을 씻는 게 습관이 됐고, 모임은 최대한 자제하고 있으며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는 중이다(민변 노동위원회 수요모임도 쉬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와중에 안전뿐만 아니라 생계가 흔들리는 노동자들이 정말 많아졌다. 고용유지지원금은 한 달 만에 1년치를 넘었다고 하고, 실업급여 월 지급액도 사상최대라고 한다. 우리 회사 지하식당도 점심 때면 그렇게 붐비던 사람들이 어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확진자가 다녀간 곳은 강제 폐업하고, 방역을 했다고는 하지만 찜찜하다. 임대료를 낮춰 주거나 받지 않는 임대업자들이 간간이 보도되지만 대체로는 그렇지 않다. 자영업 노동자들은 체감경기가 외환위기 수준이라고 한다.

지난달 20일 택배·대리운전·퀵서비스·방과후강사 등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감염 위험과 생계 위협에 대한 차별 없는 대책을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했다. 이달 11일에는 학교비정규직·아이돌보미·장애인활동지원사 등 교육관련 비정규 노동자, 택배·마트산업 관련 비정규 노동자, 재가요양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인 비정규 노동자들이 건강권과 생존권 문제에 대한 증언대회를 열었다.

그야말로 전쟁이 따로 없다. 재난이다. 영세한 자영업 노동자나 비정규 노동자들은 코로나19에 걸리지 않았어도 코로나19 때문에 생존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국민 개개인에게 아무 조건 없이 지급하는 재난기본소득은 생존의 문제에 직면한 자영업자·비정규 노동자들을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체제를 바꾸는 것이 아니므로 사회주의가 아니고, 심대하고 비상한 재난 시국을 벗어나기 위한 것이므로 포퓰리즘도 아니다.

문재인 정부의 세금 관련 공약은 ‘조세 정의’ 실현이었다. 많이 벌고 재산이 많으면 세금도 많이 내는 공평한 세제를 만들어 대기업과 자산가·고소득층에 집중된 경제 성장의 열매를 모든 국민에게 골고루 나눠 주겠다는 것이었다. 재난 기본소득은 조세 정의 실현에도 부합한다.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예산이 사업비만 24조원, 유지관리비 등을 합해 31조원 이상이었던 것에 비하면 5천만 국민 1인당 50만원이면 25조원이니 현실성도 있다. 소비를 위해서 상품권이나 지역화폐로 지급할 수 있고, 기한을 둘 수도 있다.

대한민국헌법은 모든 국민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을 보장한다(10조). 또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해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121조2항).

문재인 정부는 재난기본소득에 주저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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