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탁 노회찬재단 사무총장

“그래도 이건 천재지변에 가까운 거니까. 나만이 아니라 모두가 힘든 상황이지. 우리 건물에 있는 사람들도 모두 장사가 안 된다고 힘들어해. 모두가 다 조금씩 힘을 더 내야지. 우리도 힘내야지. 우리 같은 청소노동자가 없으면 지금 이런 상황에서는 더욱 안 되지.” 지난 6일 한겨레신문에 실린 기사의 일부이다. 서울 구로구에서 6411번 새벽 첫차를 탄 어느 청소 여성노동자의 이야기다.

노회찬재단에서 한겨레신문과 새벽 첫차 기사기획을 한 건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성평등의 상징으로 장미꽃을 전달하고 그 의미를 널리 알리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가 확산되는 상황에서 이 기획을 계속 추진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생겼다. 사회적 거리 두기에 대한 홍보가 한창 진행 중인데, 자칫 기획의 의도와 상관없이 불편하게 생각할 사람들이 많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전염에 대한 우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건물 청소를 위해 새벽 첫차를 타는 노동자들의 삶을 드러내는 것도 큰 의미가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공동기획을 예정대로 진행했다. 다행히 승객들은 행사의 취지와 장미꽃 선물에 대해 이해하고 고마워하셨다.

청소노동자들은 코로나19 사태가 생기면서 문고리를 한 번이라도 더 닦으려고 애쓴다고 하셨다. 남들은 눈길조차 주지 않을지 모르지만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의 영역에서 소명의식으로 더욱 깨끗하고 위생적인 환경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마음이 불안한 것은 사실이다. 남들이 버려 놓은 일회용 마스크와 휴지를 치우다 보면 혹시 나도 감염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게 된다고 한다. 하지만 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소명의식 이상으로 그들은 고단한 생계를 꾸려 나가야 하는 현실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코로나 사태로 그날의 일감과 일자리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노동자들의 삶은 말 그대로 위기에 내몰렸다. 재택근무는 집에서 일을 할 수 있고, 또 그 노동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을 때 의미가 있다. 그러한 보상이 불가능한 이들에게 재택이란 꼼짝없이 앉아서 굶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의미한다.

길거리의 많은 홍보판과 다양한 매체들에서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social distancing)는 보건과 방역 차원에서 만들어진 용어다. 그러나 보건과 방역 차원을 넘어서 생각해 보면, 그 말이 주는 효과는 대단히 우려스럽다. 우리나라 말의 어감으로 보면 사회적이라는 표현은 ‘면대면’이라는 차원을 넘어 ‘공동체적’이라는 의미가 강하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사회는 사회적 거리가 너무 멀어지고 있어서 문제였다. 계층 간의 분열, 양극화의 심화는 우리 사회의 특징이 됐고 그러기에 사회적 연대의 실현이 핵심적인 의제로 등장하게 됐다.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표현은 대단히 불편하다. 마음의 거리를 더 가깝게 하는 노력과 병행되지 않으면 자칫 사회 공동체의 파괴로까지 이어지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가 더 주목하고 노력해야 할 일은 사회적 거리 두기가 아니라, 사회적 연대다. 사회적 연대의 실천이 꼭 얼굴을 마주해야만 할 이유는 없다. 서로 눈빛을 교환하는 일이 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지금 시기는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재난기본소득, 실효성 있는 예산의 투입 등에 대해서는 많은 분들이 이야기하고 있다. 거기에 덧붙여 나는 지금 우리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를 생각해 봤으면 하고, 또 실천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이 제안됐으면 한다.

경제가 멈춰 버린 문제, 소득이 사라져 버린 문제를 개인적 실천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건 망상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실천이 사회적 거리 두기에 그친다면 이것 역시 우울한 상황을 연장시킬 뿐이다. 지금은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 대한 심리적 동질감을 더욱 강하게 하고, 사회적 연대를 실천해야 할 시기다. 게다가 사회적 연대는 노동운동의 핵심 영역이다. 의료행위와 방역활동으로 밤잠 없이 일하고 있는 의료진과 공무원들, 사회적 거리 두기는 애초부터 불가능한 청소와 돌봄 노동자들, 이들에 대한 응원과 격려부터 실천하자. 국가의 자원을 요구하는 데 그치지 말고, 우리가 가진 사회적 자원을 활용하자. 사회적 거리 두기가 아니라 사회적 연대가 이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본령임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하자.

노회찬재단 사무총장 (htkim8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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