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명호 변호사(법무법인 오월)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이후로는 더 이상 수능 악몽을 꾸지 않는다. 대신 변호사시험을 다시 치르는 악몽을 꾸게 됐다. 갑자기 나는 시험장 책상 앞에 앉아 있고 똑딱똑딱 시간은 가는데 머릿속은 텅 비어 있다. 아…. 올해는 망했구나 싶을 때 식은땀을 흘리며 잠에서 깬다. 놀란 가슴을 붙잡으며 형언할 수 없는 안도감에 세상 모든 게 감사하다. 그런 날의 출근길은 매우 즐겁다.

시험에 합격과 불합격이 있듯 재판에도 승패가 있기에 판결 선고일은 마치 시험 날 같다. 선고시간이 임박하면 ‘대법원 나의 사건 검색’ 사이트에 들어가 결과가 뜰 때까지 클릭을 멈추지 못한다. 패소가 뜨면 판결이유도 모른 채 항소이유 서너 가지를 떠올린다. 이미 승복할 수 없는 마음이다. 승소가 뜨면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마냥 즐겁다. 바로 의뢰인에게 전화를 걸어 기쁜 소식을 전한다.

얼마 전 수년을 싸워 온 버스노동자 해고 사건에서 승소가 확정됐다. 기쁜 마음으로 의뢰인에게 소식을 전했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고 이제 다 해결됐다고 전했다. 그런데 사용자는 원직인 ‘고정기사’로의 복직이 아니라 ‘예비기사’ 발령을 내렸다. 고정기사는 미리 정해진 노선에서 같은 차량을 운전하는 데 비해 예비기사는 매일매일 달라지는 노선에서 다른 차량을 운전하므로 더 힘들고 피곤하다. 예비기사 발령은 원직복직도 아니고 사실상 강등이다. 그럼에도 사용자는 법원 판결대로 복직을 시켰으니 문제될 게 없다고 한다. 해고된 사이에 고정차량을 다른 근로자에게 줬으므로 예비기사로 발령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인사권 행사라고 한다. 심지어 당신은 법을 좋아하니 법으로 해결하라고 엄포를 놓는다. 승소 확정으로 다 해결될 줄 알았는데 분쟁은 악몽같이 돌아왔다.

최근에는 외딴섬에 있는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오랫동안 일한 노동자를 만났다. 20년을 한결같이 봉사해 복지법인이 운영하는 장애인거주시설 원장직까지 올랐다. 그런데 더 높은 곳에 있는 이들의 비위를 맞추지 못했던 걸까, 내부정치에 휘말려 부당하게 해고당했다. 너무 억울한 나머지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하고 동시에 법원에 소송도 제기했다. 지방노동위에서 부당해고 판정을 했지만 사용자는 무시했다. 오히려 해고노동자의 보직이었던 장애인거주시설 원장직에 직업재활시설 원장을 새로 앉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용자는 돌연 중앙노동위 사건을 취하하고 해고노동자에게 복직명령을 내렸다. 해고노동자가 발령 난 곳은 그가 평생 헌신하고 연구해 온 장애인거주시설이 아닌 수년간 폐지 논의가 계속된 직업재활시설 원장직이었다. 근로계약서에 근무장소와 내용이 특정돼 있으므로 사용자의 복직명령은 부당전보라고 항변했다. 그러자 사용자는 원직에는 새로운 원장이 이미 부임했으므로 다른 시설로 복직을 명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인사권 행사라고 한다. 지방노동위에서 해고가 부당하다는 판정을 받았음에도 보복적 차원에서 원장직을 바꿔치기하고도 정당한 인사권 행사라고 변명한다. 이렇게 부당해고 싸움은 부당전보 싸움으로 번졌다.

해고와 징계의 영역에서는 근로기준법 23조에 따라 사용자가 정당한 이유가 있음을 입증해야 한다. 그러나 인사명령 영역에서는 구체적인 법적 근거가 없는 가운데, 법원은 인사명령은 원칙적으로 인사권자인 사용자의 권한에 속하므로 업무상 필요한 범위에서는 상당한 재량을 가진다고 말할 뿐이다.

물론 사용자가 자유롭게 사업을 운영하기 위해 인사권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앞선 사례들처럼 부당해고 이후 복직시키는 과정에서 보복적 차원으로 내리는 징계성 인사명령이 빈번하다. 징계성 인사명령은 과연 징계인가 인사명령인가. 힘겨운 해고(징계) 싸움에서 어렵게 승리해도 사용자는 인사권 행사라는 명분으로 다시금 노동자를 괴롭힐 수 있다. 시험이 끝났음에도 악몽이 계속되는 가운데 법원이 사용자에게 막연히 부여한 “상당한 인사 재량권”은 과연 상당한가?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