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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중원 기수 100일 만에 장례] 기수 적정임금 보장 제도화 진전, 표준 기승계약서는 미완진상규명·책임자 처벌·제도개선 합의 … 유가족 “아파해 준 모든 분께 감사”
▲ 문중원기수시민대책위는 지난 7일 오전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마사회와의 ‘부경경마공원 사망사고 재발방지를 위한 합의서’ 체결 소식을 알렸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제정남 기자

지난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4호실 앞.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을 비롯한 조문객이 줄지어 섰다. 고 문중원 기수 부인 오은주씨가 조문객을 맞았다. 문중원 기수가 숨진 지 100일 만에 장례를 치렀다. 왜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여덟 번째 문중원은 막자” 100일간의 투쟁

문중원 기수(사망당시 40세)는 지난해 11월29일 “도저히 앞이 보이질 않는 미래에 답답하고 불안해서 살 수가 없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부정경마와 한국마사회 채용비리 의혹을 3장의 유서에 빼곡히 적었다.

문 기수가 처음이 아니었다. 2004년 7월 부분개장, 2005년 9월 전면개장한 렛츠런파크 부산경남(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 일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마기수와 마필관리사는 그를 포함해 7명이다. 마사회 고 문중원 기수 죽음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시민대책위는 하청·재하청으로 이어지는 불안정한 고용형태와 선진경마로 일컫는 경쟁시스템이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주장했다. 말을 탈 기회가 없으면 수입이 줄어들고, 말을 타더라도 순위에 들지 못하면 상금이 적어 적정 수입을 보장받지 못해 기수들이 힘들어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유가족은 유서에 담긴 내용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대책 마련 등 세 가지 요구안 수용을 촉구하며 장례를 미뤘다. 마사회가 응답을 하지 않자 지난해 12월27일 고인의 시신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인근 운구차에 안치했다. 부인 오씨와 고인의 부모, 장인·장모 등 가족이 모두 상경했다.

경주 못 나가도 일정 수입 보장
하위 10% 면허권 박탈 규정 삭제


시민대책위와 마사회는 지난 6일 오후 ‘부경경마공원 사망사고 재발방지를 위한 합의서’를 체결했다. 고인이 숨진 지 99일, 유가족이 서울에서 고인의 시신을 안고 거리에서 날을 보낸 지 71일 만의 일이다. 유가족의 눈물로 만들어진 이 합의서는 여덟 번째 문중원을 막을 수 있을까.

양측은 합의서에서 유가족이 요구했던 세 가지 핵심안 내용을 일정 부분 담았다. 연구용역을 통해 문 기수 죽음의 원인을 규명한다. 부산경남경마공원 운영시스템 전반에 대해 마사회가 자체적으로 연구용역을 발주한다. 연구결과 보고서는 정부에 보고한다. 마사회는 문 기수 죽음과 관련한 책임자가 밝혀질 경우 인사위원회를 열어 징계한다. 징계위에 유가족이나 문중원시민대책위가 출석해 의견을 진술하는 장치를 뒀다. 하지만 책임자와 책임 여부를 밝힐 방법은 합의하지 못했다.

시민대책위 관계자는 “마사회가 진상조사위 구성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책임자의 잘못을 가리는 과정을 따로 밟아야 한다”며 “어떤 방법으로 책임을 밝힐 것인지는 시민대책위 과제가 됐다”고 설명했다.

기수들이 고용과 적정임금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제도화한 점은 눈에 띄는 성과다. 경주에 나가지 못하는 기수에게도 일정 수준의 수입을 보장하기로 했다. 경주출전 하위 10% 기수의 면허권을 박탈하도록 한 마사회 규정은 삭제한다. 마사회는 조교사와 기수가 계약할 때 기수 권익 보호를 명시한 표준 기승계약서를 적용하도록 권장한다.

시민대책위가 요구했던 기본급제를 적용한 임금체계 도입, 마사회의 기수 사용자성을 인정하는 문제 등은 합의서에 담기지 못했다. 마사회와 교섭에서 마주했던 한대식 공공운수노조 조직쟁의실 부실장은 “기수 수입을 일정 수준으로 보장하고 채용비리를 예방할 수 있도록 투명한 절차를 도입하기로 한 것은 긍정적인 면으로 볼 수 있다”며 “표준 기승계약서 적용을 의무화하지 않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기수들은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현장에서 노력하고 투쟁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아내 오은주씨 “일상으로 돌아가 투쟁”

시민대책위는 장례 이후에도 합의서 이행을 점검하고 마사회를 개혁하는 활동을 계속한다. 대책위 이름은 ‘마사회 적폐 권력 해체를 위한 대책위원회’로 바꿨다. 지난달 27일 서울시·종로구청에 의해 이뤄진 광화문 추모 농성장 강제철거 사태와 관련한 정부의 사과도 계속 요구한다.

지난 7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인근에서 열린 합의서 설명 기자회견에서 김명환 위원장은 “자신의 목숨을 내걸고 거대한 적폐에 균열을 내기 위해 저항했던 문중원 열사를 기억한다”며 “마사회가 공공기관으로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열사의 유지를 받드는 대장정을 시작한다”고 선언했다. 고인의 부인 오은주씨는 “남편이 차가운 길 한복판에 누워 있었지만 제 곁이었고, 그래서 보내 줄 수 없었고 보내기 싫었다”며 “저는 더 강한 엄마가 되기 위해 일상으로 돌아가 투쟁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제 남편의 죽음에 아파해 준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고 인사했다.

시민대책위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7일부터 ‘한국마사회 적폐권력 청산 문중원열사 노동사회장’을 치렀다. 9일 오전 발인하고, 같은날 오후 부산 강서구 부산경남경마공원 앞에서 노제와 영결식을 연다. 장지는 경남 양산 솥발산공원묘원이다.

제정남  jjn@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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