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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계기로 업무상질병 판정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다시 커지고 있다. 코로나19 환자를 진료·치료하다가 감염된 의료기관 노동자처럼 업무와 질병 사이 인과관계가 명확한 경우 근로복지공단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산업재해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4일 보건의료업계에 따르면 코로나19 환자를 진료하는 일선 의료기관 노동자의 감염이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이미 한마음창원병원과 대구가톨릭대병원·청도 대남병원·서울 은평성모병원 등에서 잇따라 의료진이 감염됐다.

공단은 지난달 11일 환자를 수용하거나 진료하는 보건의료기관·집단수용시설 종사자가 업무수행 과정에서 감염자와 접촉해 발병할 경우 업무상질병으로 인정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런데 이런 감염자 역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라 공단 업무상질병판정위가 업무상재해를 인정해야 한다.

사고와 달리 질병은 업무와의 인과관계 판단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19 진료 도중 감염된 의료기관 노동자의 경우 질병판정위 심의 과정을 생략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류현철 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은 “뇌심혈관계질환이나 암 등과 달리 일선 진료현장에서 코로나19 환자에게 노출됐다는 사실은 쉽게 입증할 수 있다”며 “전국에서 수많은 보건의료 인력이 투입되는 상황에서 적극적이고 전향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질병판정위가 업무상질병 여부를 판단하기까지 심의에 들인 시간은 39.9일이었다. 산재보험법 시행규칙에서는 20일 내에 판단하도록 하고 있다. 2015년 44.9%였던 업무상질병 인정률은 지난해에 64.6%까지 올랐다. 그럼에도 질병판정위 심의기간이 장기화하면서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제도개선 요구가 끊임없이 나왔다.

산재보험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진폐증이나 이황화탄소 중독증 또는 업무와 질병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명백한 경우로 공단이 정하는 질병은 질병판정위 심의에서 제외된다.

별도 법 개정 과정 없이 정부가 산재보험법 시행규칙과 공단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운영규정을 바꿔 심의 제외 대상을 넓힐 수 있다는 얘기다.

권동희 공인노무사(법률사무소 일과사람)는 “백혈병을 포함해 역학조사를 생략하고 있는 반도체·디스플레이산업 종사자 8개 상병과 추정원칙을 도입한 6대 근골격계상병 등은 굳이 질병판정위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며 “공단과 정부 의지만 있으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공단 관계자는 “질병판정위 심의 기간을 줄이는 대책에 대해 지속적으로 논의하고 있다”며 “코로나19에 감염된 의료기관 종사자를 심의에서 제외할 수 있는 규정이 없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지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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