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교수(안전공학)

심리학에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증편향이라는 말이 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산업재해 사고사망자가 100명 넘게 줄어든 것을 발표하면서 행정기관 관리·감독이 사망사고 감소의 핵심 요인이라고 진단하고 올해에도 지난해와 같은 기조로 확대·운영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사고사망의 큰 감소에 고무됐는지 다른 해와는 달리 연초에 통계와 대책을 발표했다.

문제는 과학적인 진단과 분석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그 결과 꿰맞추기식 설익은 대책을 내놓았다. 특히 사망사고에 큰 영향을 미치는 외부환경 분석이 빠져 있다. 어떤 현상을 분석할 때는 내부요인과 외부요인을 함께 고려하는 것이 상식인데, 어떻게 된 일인지 노동부 분석에는 이런 상식이 결여돼 있다. 내부요인도 각 사업의 효과 유무에 대한 분석은 없고, 실시했으니 당연히 효과가 있었을 거라는 전제하에 분석한다.

예를 들면 패트롤 점검의 경우 노동부 진단이 맞다면 역설적으로 공공기관은 전문성보다는 기동력이 훨씬 중요하게 된다. 조직의 전문성을 강화하기보다 기동타격대 식의 지도·감독을 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해석이 성립하게 된다. 패트롤 점검을 하지 않았는데도 사망사고가 많이 감소한 ‘기타 업종’은 설명이 되지 않는다.

과연 정부 관리·감독의 효과일까? 물론 일정 정도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는 사망사고에 영향을 미치는 굵직한 외부환경이 특히 많았다. 경상성장률은 2017년 5.5%와 비교해 4분의 1 수준으로 급감한 1.4%를 기록했다. 경상성장률이 1998년에 -0.9%로 내려간 이후 한 번도 3% 밑으로 떨어진 적이 없었던 점을 고려하면 경기가 사망사고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사망사고가 가장 많이 감소한 건설업의 경우 2018년부터 건설수주가 유례없이 크게 감소(전년 대비 2018년 10%, 2019년 6.2%)한 것이 사망사고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또한 대표적 위험 분야인 중형 조선업계가 몰락하다시피 한 것도 사망사고에 많은 영향을 줬을 것이다.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 시행으로 대기업과 사내하청에서 노동시간이 많이 단축된 것 또한 사망사고 감소에 일조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선진국에서 노동시간을 기준으로 재해통계를 산출하는 이유도 노동시간이 재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의 인원과 예산을 크게 늘린 것도 사망사고 감소에 기여했을 것이다.

그런데 정부 발표에는 이러한 외부 변수의 영향에 대해서는 일언반구가 없다. 자화자찬 일색이다. 눈에 보이는 현상만을 보고 ‘제 논에 물 대기’ 식의 해석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부실한 진단에서 엉터리 대책이 나오는 것은 필연적 귀결이다. 하기야 애초 노동부에 엄밀한 분석을 요구하는 것부터가 무리일지 모른다. 한 해의 대책을 세우는 데 있어 기본 자료에 해당하는 연간 감독결과조차 생산하지 않는다. 과학이 아니라 감에 의존하는 주먹구구식 정책이 예견된 것이다.

패트롤 점검만 보더라도 이것이 사망사고 감소에 기여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노동부 본부만의 생각인 것 같다. 현장 관계자들 중에 패트롤 점검의 효과라고 평가하는 사람은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지만 보이지 않는다. 탁상행정의 산물일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이다.

사망사고가 크게 감소한 근본원인을 심층적으로 따져보고 나서 구체적인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수치에만 얽매인 ‘집단 착시현상’에 빠져서는 곤란하다. 행정시스템의 실질적 개선이 없었는데도 사망사고가 감소한 것에 의문을 품어야 한다.

법령을 전부개정한다고 해 놓고 현장과 가장 근접한 규칙은 사실상 바뀐 게 없다. 비현실적인 규정들은 방치했고 멀쩡한 규정이 개악되기도 했다. 사고사망 감소세를 유지하기 위한 행정 내부요인은 녹록지 않다. 이 점 역시 직시해야 효과적인 대책이 나올 수 있다. 외부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고 사고사망 감소세를 이어 나가기 위해서라도 산재예방 행정의 ‘레질리언스(resilience, 예견·감지·회복능력)’를 구축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사망사고 통계발표는 이 방향으로 향하는 산재예방 정책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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