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노동뉴스와 노회찬재단이 2020년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여성노동자에게 장미꽃을’이라는 주제로 공동기획을 한다. 사회적으로 호명받지 못한 채 ‘투명인간’으로 머물러 있는 여성노동자들이 ‘이름’과 ‘색깔’을 찾자는 취지다. 고 노회찬 의원은 14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국회 여성노동자에게 장미꽃을 전달했다. 지난해에는 노회찬재단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세계여성의 날 기념주간에 더 많은 여성노동자들이 자신의 이름을 갖고 다양한 색깔로 피어날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 공동기획은 4차례 연속기고와 한 차례 좌담회로 9일까지 이어진다.<편집자>
 

▲ 강인순 경남대 명예교수

1857년 미국 뉴욕에서 여성노동자들은 “임금을 인상하라, 10시간만 일하자,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를 보장하라, 여성에게도 선거권을 달라”고 요구하면서 시위를 벌였다. 이후 50여년이 지난 1908년 3월8일 미국 뉴욕 피복회사의 열악한 작업장에서 146명의 여성노동자들이 화재로 불타 숨지자 여성노동자 1만5천명이 뉴욕 한복판에 모여 “빵과 장미”를 외치며 또 시위를 했다. 이들의 요구사항은 1857년 여성노동자들이 시위할 때와 같은 “임금인상, 노동시간 10시간 준수,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보장, 여성의 참정권 보장”이었다.

반세기가 걸려도 여전히 여성노동자들의 노동권과 참정권은 제대로 보장받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래서 미국 뉴욕 여성노동자들의 1908년 투쟁 의미를 기리는 것이 3·8 세계여성의 날 유래이고 굶주림을 채우기 위한 빵과 권리를 상징하는 장미를 세계여성의 날 곳곳에서 나눠 주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일제강점기 자본주의적 공업화가 진행되고 있던 1920년 여성운동가인 나혜석·박인덕 등에 의해 ‘국제 부인의 날’이란 이름으로 세계여성의 날 기념행사를 했다. 하지만 일제의 탄압에 의해 그 이후 기념행사는 단절됐다가 1985년에 세계여성의 날을 기념하는 1회 ‘한국여성대회’를 개최하면서 복원돼 30년 넘게 1908년 여성노동자들의 투쟁 의미를 기리고 있다.

우리나라 여성(노동자)들도 한 세기 넘게 성 평등한 사회를 이루기 위해 성 불평등한, 그리고 성차별적인 사회구조와 싸우고 있다. 일제강점기 자본주의화가 진행 중이던 1931년, 세계 대공황의 여파로 인한 임금삭감에 저항하기 위해 을밀대 지붕에 올라 76시간 단식농성을 했던 평양 고무공장 여성노동자 강주룡의 투쟁이 있었다. 해방과 분단 이후 수출 위주 산업화 시기에는 동일방직과 YH무역 여성노동자들의 노동조합 결성투쟁과 ‘1987년 7~9월 노동자대투쟁’ 이후 TC전자·수미다전기 등의 외자기업에서 자본철수 저지투쟁 등이 있었다. 신자유주의 노동정책 실시 이후에는 노동시장 유연화에 따라 여성노동자들은 남성노동자들보다 비정규직 고용의 우선 대상자가 됐다. 남성노동자들과 같은 일을 하면서 여성노동자들은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으로 고용돼 임금도 남성노동자보다 적게 받았다. 2000년대 이후엔 이런 부당함에 저항하기 위해 여성(노동자)들은 감정노동자 인권보장을 위해, 그리고 성별 임금격차 해소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위해 투쟁하고 있다.

이러한 여성(노동자)들의 지속적인 투쟁으로 호주제 폐지,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 등과 같은 성 평등한 법 제정과 함께 성차별적인 법·제도 등이 개선돼 여성의 가사노동도 인정됐다. 남성의 육아휴직도 늘어나고 있으며, 성별 임금격차와 여성의 정치세력화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하지만 일터와 삶의 현장에서는 성 불평등과 성차별, 성희롱과 성폭력 등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한국여성정책개발원의 ‘2018 한국의 성인지통계’에 의하면 여성의 비정규직 고용은 41.4%인데 비해 남성은 26.3%였다. 또한 남성노동자 평균임금이 100이면 여성노동자 평균임금은 65.7로 성별 임금격차도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여성노동자들의 고용단절(M자형)이 남성노동자들의 고용단절(종모양)보다 더 많다. 그리고 여성들의 직접정치 참여율(20대 여성 국회의원 비율 16.3%, 여성 기초의원 비율 3.5%) 또한 열악하다. 아직도 사회에서 차별적 성별 분업 논리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오늘도 여성(노동자)들은 노동기본권과 사회권을 제대로 보장받기 위한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한 세기 넘게 여성(노동자)들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성 평등한 사회를 이루기 위해 투쟁하고 있지만 얼마나 투쟁을 더 해야 할지 가늠할 수 없다. 올해 세계여성의 날, 112년 전인 1908년 뉴욕 피복회사 여성노동자들의 투쟁 의미를 다시 한 번 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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