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7년 만에 또 하나의 역작이 탄생했다. 김금수(83·사진) 세계노동운동사연구회 상임고문은 2013년 자본주의 태동기부터 2차 세계대전까지 세계노동운동사를 담은 <세계노동운동사> 1~3편에 이어, 최근 2차 대전부터 1970년대까지 다룬 4~6편을 출간했다.

3천900쪽에 달하는 <세계노동운동사>(전 6권·후마니타스)는 2001년부터 집필을 시작했으니, 2003년부터 3년의 노사정위원회(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 재임기를 빼고 저자의 17년 세월을 고스란히 담았다. 노조 현장활동가들과 학습모임을 하며 발제와 질의, 토론을 거친 생동감 있는 연구 성과이기도 하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세계노동운동사연구회 사무실에서 김금수 상임고문을 만났다. 김 상임고문은 민주노총 지도위원·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전태일기념사업회 이사장·한국비정규노동센터 이사장·노사정위원장·KBS 이사장을 지냈다. 현재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명예이사장을 맡고 있다.

“노동운동은 사회발전을 위한 변혁운동”

- 17년 만에 집필을 마쳤다. 세계노동운동사는 어떤 역사인가.
“노동운동사는 노동사와 다르다. 노동사는 과정이고, 운동사는 투쟁사다. 노동운동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다. 자본주의가 발생하면서 자본가와 노동자 계급이 형성하고 그 속에서 갈등과 모순, 충돌이 있었다. 자본의 착취와 억압에 대한 노동자 권리를 회복해 갔고, 다음으로 정치적 정당을 형성하며 투쟁의 형태와 요구도 달리해 갔다. 또한 반동에 대한 파열의 역사다. 초기 단계는 단결권도 보장되지 않던 시기였다. 그 뒤 파리코뮌 무장투쟁에 이어 제국주의·독재정권·파쇼에 저항하고 전쟁반대에 나섰다. 노동운동은 사회발전을 위한 변혁운동이다.”

- 이번에 펴낸 <세계노동운동사> 4~6권을 소개해 달라. 7년 전 펴낸 1~3권과는 어떤 차이가 있나. 
“1~3권은 흐름 중심으로 썼다. 각국의 특징도 수록했지만 러다이트·차티스트·파리코뮌·러시아혁명·파시즘·2차 대전 같은 흐름이 중심이었다. (4~6권이 담은) 2차 대전 이후는 4개 시대로 나누고 39개국을 다뤘다. 2차 대전 이전과 이후는 다르다. 냉전체제가 오면서 전 세계 정세구조가 변화했다. 미국 중심의 패권주의가 지배했다. 오늘날 신자유주의·자본의 국제화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일국의 독립적 특성도 있지만 전 세계적 특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

- 4~6권은 선진자본주의·사회주의·제3세계 노동운동사를 함께 조망했다. 의미는.
“선진자본주의 국가는 2차 대전 이후 많은 변화가 있지만 그래도 영속성이 있다. 아시아·라틴아메리카·아프리카 식민지 종속국가는 해방됐지만 나라마다 특징이 다르다. 아르헨티나는 페론주의가 노동운동 이념을 지배하고, 칠레에선 아옌데의 합법적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선다. 아프리카에서는 알제리·나이지리아·남아프리카공화국이 각기 다르다. 아시아는 중국이 사회주의화하고, 인도나 베트남은 자력으로 민족해방을 한다. 사회주의권에서 무슨 노동운동이 있나 하겠지만 내부적으로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헝가리·폴란드·중국 등을 보면 결코 일당독재가 노동운동을 지배하는 건 아니란 것을 보게 된다.”

- 그 가운데 한국 노동운동의 위치는.
“제3세계 식민지 종속국가 중에서 한국은 굉장히 독특하다. 2차 대전 뒤 미군정기과 남북 분단,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독재정권을 거치면서 정치권력에 의한 노동운동의 왜곡과 지배 과정이 있었다. 87년 이후 새로운 노동운동 조류가 형성되고 획기적인 발전의 계기를 맞았다. 기업별노조에서 산별노조로의 전환, 노동자 정치세력화 같은 큰 성과가 있었다. 그러나 그 뒤에 보여 준 모습에서 과제와 교훈에 주목해야 한다.”

노조 현장활동가들과 함께 이룬 역작

- 2007년 노조 현장활동가를 대상으로 학습모임을 시작했다. <세계노동운동사>는 그 학습 과정이 반영된 결과물이다. 무엇에 초점을 뒀나.
“학자들이 쓴 이론서나 논문은 전제가 자기주장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교재였으니 내 주장보다 다른 학자들 주장이 어떤지 제시했다. 나머지는 독자들이 판단할 문제다. 학습모임에 참여한 현장활동가들의 관심과 질문, 토론 내용이 다르더라. 그런 걸 반영하려고 노력했다.”

김금수 상임고문은 노조 현장활동가를 대상으로 한 세계노동운동사 학습모임을 6기까지 배출했고, 보건의료노조와 인천지역, 서울 성동지역에 별도의 학습반을 꾸려 끊임없이 학습했다. 그 결과물이 2013년 출범한 세계노동운동사연구회다.

- 학습모임에 참여한 현장활동가들의 관심과 고민은 무엇이었나.
“공통점은 조직형태와 발전, 조직 확대에 관한 것이었다. 산별노조 구축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현재 노동세력이 발 못 붙이는 정치세력화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이다.”

- 세계노동운동사가 한국 노동운동에 시사하는 점이 있다면.
“양대 노총 모두 현재 정치세력화 노선이 없다. 장기 전략과 이념, 노선 등 양대 노총은 공식화된 총노선도 없다. 다른 나라에서 대중운동과 전선체, 정당까지 어떻게 발전했는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이를 참고하면서 우리도 빨리 총노선을 정립하지 않으면 안 된다.”
 

▲ 정기훈 기자

“세계노동운동사 나침반 삼아 총노선 정립해야”

“세계노동운동은 어두운 침체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제독점자본의 지배 또는 자본의 지구화가 확장되는 가운데 세계자본주의는 전반적 위기에 가까울 정도의 상황에 놓여 있다. 노동자계급의 노동·생활조건은 곤궁한 상태에 있고, 노동시장의 유연화 책략에 따라 고용불안정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게다가 소득불평등이 심화하고 있고, 기계와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그런데도 사회보장이나 사회정책이 노동자 삶을 충실하게 보전하거나 보호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도전에 직면한 노동운동은 국가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국제적인 전열조차 갖추지 못하고 있다.”

김금수 상임고문이 서문에서 진단한 세계노동운동의 현주소다. 진단은 암울하다. 그러나 노동운동의 미래는 좋든 싫든 앞으로 나아간다고 전망한다.

- 서문에서 노동의 미래와 관련해 ‘노동의 종말, 노동운동의 쇠락이 언급되지만 노동운동은 필연적이며 불가피한 사회현상’이라고 한 에릭 홉스봄을 인용했다.
“노동운동은 발전하지 않고는 못 배길 거다. 대중적 힘에 의해서 말이다. 노동자계급의 불만이 쌓이고 쌓이면 87년과 양상이 다를지 몰라도 그 저항은 폭발적일 것이다. 안전핀 역할을 노조가 해야 하는데, 그 불만을 수용하지 못하면 조직을 뛰어넘어 나오게 된다. 지금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학교비정규 노동자·청소노동자·배달노동자·우편하청 노동자·건설일용 노동자·이주노동자 등 노동조건은 굉장히 열악하다. 이런 불만이 뭉치고 조직화되면 노조도 제어하기 어렵다. 이런 부분을 빨리 수용하고 조직화해야 하는데 안 된다. 현재로서는 피하기 어렵다.”

1980년대 이후 세계노동운동사 “후진의 몫”

- 1~3권을 펴낸 7년 전은 박근혜 정부 때였고, 4~6권을 펴낸 지금은 노동존중 사회를 내건 문재인 정부가 집권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노동정책을 어떻게 진단하나.
“문재인 정권은 소득주도 성장, 노동존중 사회를 표방했다. 굉장히 진취적이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보수정권이고, 좋게 말하면 자유주의정권이다. 보수정권으로서 한계를 가면 갈수록 드러낸다. 2020년 최저임금 1만원도 안 되고,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이 상한선인데 마치 기준노동시간처럼 말한다. 자꾸 예외를 인정한다.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도 말만 하고 안 한다. 노동문제에서 핵심은 중소·영세 사업장이다. 지불능력이 나아지지 않는다. 70~80%가 하청구조다. 대기업 횡포를 벗어나지 못한다. 재벌개혁은 말만 하고 철저하지 못하다. 이명박·박근혜 정권보다 낫지만 보수정권의 한계를 못 벗어난다. (개혁을 해 나가는 데에) 진보정당은 세력이 약하고 노조는 정책개선 방향도 못 잡는다. 문재인 정권은 개혁 원동력이 없다.”

김 상임고문이 <세계노동운동사> 전 6권을 완간했다고는 하지만 1980년대 이후는 미완의 과제다. 그가 여기까지 오는 길은 결코 쉽지는 않았다. 부족한 연구자료를 찾아 직접 외국 책방을 뛰어다니고, 후배들의 도움의 손길을 받기도 하며, 직접 거금을 들여 소련과학아카데미 국제노동운동사(7권)를 번역하기도 했다. 국내 누구도 쉽게 손대지 못하는 영역이었다. 척박한 한국의 노동운동사 연구 풍토에서 그의 열정이 아니었으면 빛을 못 봤을 작품이다.

- 미완의 과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후배 노조활동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많은 것은 후진들이 보충할 문제다. 세계노동운동사연구회와 민주노총 교육원이 지난해 세계노동운동사 강좌를 함께 추진했다. 후속강좌를 만들어 이어 갔으면 한다. 노조간부들은 공부해야 한다. 가능하면 혼자 공부하기보다 모여서 했으면 한다. 함께 발제하고 질의하고 토의해야 남는 게 있다. 공부하고 토론하고 실천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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