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재훈 여행작가

세상이 변하면 여행도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돌이켜 보면 겨우 십몇 년 지난 세월이지만 그동안 세상이, 지구가 변해도 많이 변했구나 하는 걸 느끼게 된다. 그런 변화들이 때로는 여행을 무척 쉽고 편하게 만들어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이상의 어려움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여행을 가장 극적으로 바꾼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스마트폰의 등장이었다. 여행 냄새를 맡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2007년 초겨울, 나는 여행 친구 2명과 함께 뉴질랜드 캠핑카 여행을 하고 있었다. 공항에 도착해서 캠핑카를 빌리는 데까지는 별 탈 없이 성공했는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해져 버렸기 때문이다. 차에는 내비게이션도 없었고, 스마트폰은 그해 1월 애플사에서 처음으로 아이폰을 선보인 정도였기 때문에 달리 도움을 받을 기기도, 기술도 없었다. 결국 근처 상점에서 뉴질랜드 교통지도 책을 한 권 사서 그 힘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조수석에서 눈이 빠져라 지도를 들여다보며 길 안내를 했지만, 갈지자로 가는 걸 피할 수는 없었다. 막다른 골목에서 허우적대는 것은 기본이었고, 때로는 완전히 길을 잃어버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차를 세워 두고, 양 떼 울음소리와 은하수 퍼진 밤하늘을 이웃 삼아 하룻밤을 새우기도 했다. 십 년이 더 지난 2019년 봄, 다시 뉴질랜드를 찾았고, 다시 캠핑카를 빌려 남섬을 한 바퀴 훠이훠이 돌았다. 차에는 내비게이션이 달려 있었고, 스마트폰이 다섯 대나 있었다. 여행자들이 ‘구글신’이라 칭송해 마지않는 전지전능한 ‘구글맵’은 골목 끝까지 훤하게 길안내를 해 줬다. 미리 다운로드를 받아 두면 인터넷이 되지 않는 곳에서도 안내의 친절함은 끊기지 않았다. 그것도 낭랑한 우리말 목소리와 함께. 늘 안내된 소요시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게 도착할 수 있었고, 웬만해서는 실수할 일이 없었다. 너무 빨리 달리다 지나치는 일 외에는 말이다.

여행이 너무 깔끔해졌다. 할머니 돼지국밥에서 프랜차이즈 설렁탕집으로 단골집이 바뀐 기분이랄까? 그러다 보니 난데없이 쏟아지던 은하수와 몇 마리인지 보이지도 않았던 양 떼 오케스트라의 밤샘 공연은 다시 만날 수가 없었다. 안전한 주차장이라고 생각하고 하룻밤 보냈던 곳이 일어나 보니 절벽 끝 노지였더라는 따위의 모험담도 함께 사라져 버렸다. 인생사가 그렇듯이 공짜는 없는 법. 어느 정도의 주고받음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트레이드에서 일방적으로 손해를 보는 프로야구 구단은 없듯이, 기술의 은혜를 입으려면 올드해져 버린 아날로그적 취향은 어느 정도 내놓아야 하는 법이었다.

하지만 여행자라면 이런 와중에도 자신만의 냄새를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 얼마간의 흰머리 돋움을 감수하면서 잔머리를 조금 더 쓴다면 새롭게 가능해지는 일들도 있기 때문이다. 구글 지도에 다른 여행자들이 올린 사진을 끈기 있게 뒤지다 보면 은하수 별밤 돋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어느 동네, 외진 해변에 바다사자 20마리 정도가 산다. 꼭 가 봐라’ 같은 리뷰와 함께 뒤집어져 자고 있는 바다사자 가족사진이 올라와 있다. 구글 지도에 좌표를 찍고, 캠핑카 한 대 겨우 일방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을 따라 한 시간을 찾아 올라가 현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야생의 바다사자라니! 마치 아프리카 세렝게티 사파리에서 사자 무리를 만난 것과 다를 바 없는 경험을 한 셈이다. 이처럼 의도된 낯선 경험은 도시에서도 가능하다. 특히 인도 바라나시의 거미줄 같은 골목이나 베네치아의 미로보다 복잡한 골목을 만나도 쫄지 않고 몸을 내던질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앞뒤 잴 것 없다. 구글 지도에 최종 목적지만 찍어 놓고 걸어서 움직인다. 발길 닿는 대로, 마음에 드는 골목을 찾아 들어가더라도 전혀 불안하지 않다. 주머니 속에서 구글신이 열심히 벗어난 경로를 지적해 주며 진동으로 알려 주면서 기특하게도 늘 새 경로를 찾아 두고 있으니 말이다. 간혹 아주 엉뚱한 곳으로 가 버렸다 해도 ‘우버’나 ‘그랩’ 같은 승차공유 앱이나, 콜택시 앱만 띄우면 문제를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 미터기를 켜니 마니 하는 일로 신경을 곤두세울 일도 없이 말이다. 중요한 건 이런 기술들을 이용할 때의 자기 균형이다. 구글 지도나 여행 앱 등에 넘쳐나는 식당 정보와 손님들의 리뷰에 이끌려 기어코 맛집을 찾겠다고 나설 수도 있지만, 그러다 보면 결국 자신의 경험은 리뷰의 틀에 갇히고, 내 여행은 사라져 버리고 만다. 숙소도 마찬가지고, 여행에서의 볼거리를 취사선택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미슐랭은 미슐랭이고, 내 눈에 맛있어 보이는 식당에 들어가 실패할 수 있는 용기 정도는 한 줌 가지고 여행에 나서는 게 ‘자기 여행’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균형추 역할을 해 줄 것이다. 이탈리아든, 스페인이든, 인도든, 그게 지구 어느 구석탱이든 간에 욕쟁이 할머니 맛집과 만날 수 있는 비밀의 문은 그런 한 줌의 용기에 의해 열릴 테니까. 스마트폰을 낯선 세계를 여는 열쇠로 변신시키는 능력은 결국 내 안에 있다는 뻔한 얘기?!

여행작가 (ecocj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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