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탁 노회찬재단 사무총장

며칠 전 한겨레신문에 실린 이상수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장 인터뷰 기사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 기술변화에 따른 고용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계획”이라는 말이 있어 주목해 봤다. 나 역시 노동조합이 기술변화에 따른 결과를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변화의 불가피성을 인정하고 적극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이상수 지부장은 “회사가 고용보장을 하면 노조도 인력 재배치와 이를 위한 기술교육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했다. 신뢰를 축적하지 못한 우리나라 노사관계의 현실을 생각하면 이러한 제안은 대단히 적극적인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나는 우리 노동운동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노조가 기술변화를 적극 수용하고 이를 통해 안정적인 일자리 보장과 인간 중심 작업장 환경을 만들어 나갈 수는 없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물론 하나의 사업장 단위에서는 만들어 내기 쉽지 않은 제안이다. 여전히 기술은 노동운동을 구성하는 내부적 요인이 아니라 외부에서 주어지는, 통제해야 할 요소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술변화는 항상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다만 급격한 기술변화는 기업 차원을 넘어 나라 전체 고용구조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러기에 노동운동은 기술변화를 상시적 요인으로 전제하고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느닷없이 닥쳐오는 것으로 인식하면 늘 수동적 대응을 벗어날 수 없다.

노동조합이 기술변화를 가장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나라는 노르딕 국가들이다. 작업장 혁신에서도 노동자 주도 혁신(EDI·Employee Driven Innovation)을 주창하고 있다. 노르웨이노총과 덴마크노총은 작업조직 분야 연구자들과 함께 EDI 네트워크를 설립해 이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2008년에는 EDI가 노르웨이 정부의 정책이 되기도 했다. 노르웨이노총은 또 기업연맹과 함께 EDI 핸드북을 만들며 적극적으로 작업장 혁신 정책을 주도하고 있다. 노르딕 국가 노조들의 이러한 적극적인 시도는 유럽 차원에서도 논의가 이뤄지도록 만들고 있다.

노총에서 주장하는 노동자 주도 혁신이 사용자에게도 주목받는 이유는 작업장 혁신은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가장 잘 알고 있다는 전제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작업장 혁신이라 하면 대개 사람의 노동을 기계로 대체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노동자 주도 혁신은 노동 배제적인 방식으로 혁신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가 작업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변화시켜 내는 방식이다. 우리의 경우 현장 노동자들의 의견은 일부 기업을 제외하고는 중요하게 인식되지 않는다. 그리고 노동조합도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대안을 내는 작업을 소홀히 했다.

그러나 고용이 안정되려면 혁신의 전 과정에 노동자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기제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사용자가 도입한 기술을 익히는 수동적인 반응 정도로는 부족하다. 그리고 기술변화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은 노동자의 학습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학습이 이뤄지지 않고서는 기술의 수용이 온전하게 이뤄질 수 없다. 아무리 좋은 기술을 도입했다 하더라도 그것을 운용할 작업자의 역량이 따르지 않으면 기술 효율이 생길 수 없다. 그런 점에서 학습은 노사 모두의 공통된 이해를 가지고 있다.

한편 학습은 국가적 과제이기도 하다. 창조적 학습능력을 강조하는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동아시아의 성공을 고도의 학습능력 때문이라고 봤다. 전통경제학에서는 학습이 무시돼 왔지만 학습은 역사적으로 한 나라 발전의 핵심적인 요인이었다. 학습은 엄청난 기술이나 자원 요소가 없다 하더라도 생산성을 빠르게 증가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기업들은 지나치게 기술 중심으로 사고하고 있다. 새로운 인력을 키우겠다는 생각보다는 기계로 대체하거나 숙련자들을 데려오면 된다는 생각이다. 기업의 인식 변화가 필수적이지만, 국가가 나서서 질 높은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투자하지 않으면 변화가 이뤄지기 어렵다.

그러나 역시 나는 노동운동이 이 과정을 주도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누가 주도하느냐에 따라 사업의 성격이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작업장에서의 혁신과 학습역량 강화는 노동운동의 핵심적인 과업이 돼야 한다. 그 과정을 주도하지 않고서 인간 중심의 작업장이 실현되기를 바라는 것은 불가능한 꿈이다.

노회찬재단 사무총장 (htkim8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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