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날씨가 여전히 매섭다. 유난히 따뜻했던 겨울이었건만 한 번도 입지 않은 외투를 꺼내 입었다. 누가 우수에 강물이 녹는다 했는가. 이른 아침 추운 날씨에도 서울행정법원 앞에 많은 기자들이 모여 큰 관심을 보였다. 수십 명에 이르는 양대 노총 조합원들도 보인다. 양대 노총이 공동으로 법률투쟁에 들어간 것은 2018년 6월19일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넓힌 개정 최저임금법 헌법소원청구 이래 아마도 처음인 것 같다.

잘 알고 있듯이, 지난달 31일 고용노동부는 근로기준법 시행규칙 9조1항을 개정했다. 특별연장근로 인가 사유를 대폭 확대했다. 특별연장근로는 더 이상 ‘특별’한 예외적인 경우로 한정되지 않는다. 시행규칙에서는 시설·설비의 수리(3호), 업무량의 증가(4호) 등 경영환경에서 통상적으로 겪게 되는 사유도 추가했다. 5호에서는 소재·부품 산업의 연구개발 종사자들을 ‘국가경쟁력 강화’ 및 ‘국민경제 발전’이라는 반세기 이전 개발시대의 구호 속으로 내몰았다.

이 과정에서 직접적인 이해당사자인 노동자들에게는 물어보지도 않았다. 시행규칙 개정 발표를 본 노동현장에서는 분노가 일었다. 노동시간단축이라는 공약을 정면으로 뒤집었기 때문이다. 지난주 한국노총에서는 중앙법률원과 지역상담소를 중심으로 신고센터를 열었다. 1차로 소송에 참가한 원고들은 1주간 접수한 노동자들 중 일부다. 한국노총을 비롯해 OCI노조 등 단위노조와 조합원을 포함해 84개(명)다. 이후에도 한국노총은 신고센터에 접수된 사례를 분석해 추가 소송을 진행할 예정이다.

노동부가 확대한 특별연장근로 인가 사유의 위헌·위법성은 너무나 명백하다. 우리나라 헌법(32조3항)에서는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반드시 법률로 정하도록 명하고 있다. 이른바 노동조건 법정주의다. 노동시간이 노동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노동조건임은 긴말이 필요 없다. 노동시간단축의 역사가 바로 노동운동의 역사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장시간 연장노동으로 내몰리느냐 마느냐는 결정을 어찌 노동부의 시행규칙으로 정할 수 있단 말인가. 그렇기 때문에 법에서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으로 정할 수 있다’고 위임하는 것도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 노동시간은 그야말로 노동자들의 권리·의무를 정하는 핵심적인 내용이므로 입법기관만이 정해야 한다.

예외는 예외일 때만 의미가 있다. 예외가 사실상 원칙처럼 사용될 때는 이미 예외가 아니다. 근로기준법(53조4항)에서는 특별연장노동을 ‘특별한 사정’에 한해 제한적으로만 허용하고 있다. 그런데 개정 내용은 어떤가. ‘업무량 급증(4호)’이라는 경영상 사유까지 집어넣었다. 마치 정리해고 요건과 다를 게 뭔가. ‘경영상 사유’는 사용자의 주관적 판단에 맡겨질 사용자의 영역이고, 그래서 고무줄 잣대라는 사실은 현장 모든 노동자들이 지난 20여년간 충분히 확인하지 않았나.

노동자가 노동하는 과정은 인간의 존엄성을 확인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근로기준법에서도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노동은 위법이고 곧 위헌이다.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은 장시간 노동의 해악에 대해 간명하게 정리했다. “야근·잔업 등 장시간 노동은 국제암연구소가 지정한 2급 발암물질입니다.” 발암물질이 인간의 존엄성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데는 긴말이 필요 없지 않은가. 그렇기 때문에 “한국노총은 그 어떤 질병보다 치명적인 장시간 노동과 과로사를 촉발할 특별연장노동 인가 사유 확대를 막아내기 위해 투쟁할 것입니다.” 김동명 위원장이 밝힌 각오다.

잘못이 확인되면 인정하고 되돌려 놓아야 한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까. 법은 바꾸기 어렵지만 시행규칙은 그렇지 않다. 시행규칙을 바꿔라. 이번 소송을 풀어 가는 과정은 향후 노동부가 펼칠 노동정책의 태도와 방향을 짐작할 가늠자가 될 것이다. 현장 노동자들은 ‘노동존중 사회’라는 공약이 여전히 유효한지 물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소송은 피해야 할 그야말로 마지막 수단이라고 한다. 노동부는 양대 노총을 마지막 수단인 소송까지 내몬 그간의 경과를 돌아봐야 한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