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희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

2019년 10월 초, JTBC 저녁뉴스에 <9호선 아찔한 운행 … “관제 자격 없는 노조 간부가 조정”>이라는 제목의 뉴스가 보도됐다. 관제자격이 있는 관제사만 열차 운행 조정을 할 수 있는데, 관제사가 아닌 노조간부가 TRS라는 것을 이용해 운행 지시를 했다는 내용이었다. 파업을 앞두고 준법투쟁을 하면서 열차 간격을 넓힌 것이라는 사측의 논리도 그대로 전달됐다. 서울교통공사는 그 기사의 ‘노조간부’를 철도안전법 위반과 업무방해로 고발하고 직위해제하기에 이르렀다. 문제의 노조간부는 장기간 직위해제 상태에서 현재까지 수사를 받고 있다.

이 사건의 진실은 무엇일까. 언론의 보도처럼 무자격자가 열차 운행을 조정한 위험천만한 사건이었을까.

종래 철도교통 관제사에게 별도의 자격을 요구하지 않았으나 2015년께 국가가 전문자격을 부여해 관리하게끔 제도가 변경·정비됐다. 이에 따라 철도안전법은 철도교통관제사가 되려는 자가 관제자격증명시험에 합격해 관제자격증명을 받도록 규정하게 됐고, 관제자격증명이 없는 자가 관제업무에 종사하는 것에 대한 형사처벌 조항도 마련됐다. 즉 해당 조항은 국가가 마련한 전문자격 없이 관제업무를 직업적으로 수행하는 것을 금지하기 위한 조항이라 할 수 있다.

9호선 2·3단계(언주역∼중앙보훈병원역) 노동자들은 2019년 임금교섭 결렬 후 노동위원회 조정, 쟁의행위 찬반투표 절차 등을 모두 거쳐 9월 말 쟁의행위에 돌입했고, 파업에 앞서 기관사 조합원들은 승객 안전을 고려해 출입문을 개폐하는 방식으로 준법투쟁을 진행했다. 서울교통공사는 합법적인 쟁의행위를 시작하려는 조합원들에게 사규 위반이 있으면 엄정 조치할 것이라며 엄포를 놓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측의 부당노동행위를 우려하고 있던 문제의 ‘노조간부’가 한 일은 무리하지 말라는 말을 전달하기 위해 TRS를 몇 차례 사용한 것이다. (그마저도 통화가 안 됐다.) 기사에는 ‘열차무선전화장치’, 고발장에는 ‘관제전화’라고 명명된 TRS라는 것이 열차 운행을 좌지우지하는 엄청난 장비인 것 같지만, TRS는 우리가 흔히 아는 휴대용 무전기일 뿐이다. 9호선 2·3단계 사업장 내에서도 기관사뿐 아니라 고객안전원·유지보수원 등 직원들이 상호 업무연락을 위해 들고 다니면서 사용하는 도구다. 철도안전법은 ‘관제업무’에 대해 철도차량의 운행을 집중 제어·통제·감시하는 업무로 정의하고 있는데, 그 TRS를 몇 차례 사용한 것이 이러한 관제업무에 ‘종사’한 것이라고 도저히 볼 수가 없다.

서울교통공사가 관리하는 9호선 2·3단계의 경우 관제업무를 9호선 1단계 운영사에 위탁하고 있다. 그 대신 ‘관제지원’ ‘상황관제’라는 이름으로 관제자격 없는 일반 직원에게 철도차량의 운행제한 또는 열차운행의 일시중지까지 가능하도록 하는 중간 제어·통제·감시 업무를 맡기고 있다. 아찔한 운행은 기사에 등장한 노조간부가 아니라 서울교통공사가 스스로 하고 있는 중이다.

이 사건의 진실은 자격 없는 자의 위험천만한 운행 지시가 아니라, 서울교통공사의 부당노동행위다. 기사에 등장하는 노조간부는 바로 ‘본보기’다. 쟁의행위에 참여한 기관사의 TRS 사용을 문제 삼아 언론에 거짓정보를 흘리고 수사에 시달리게 하고 직위해제를 함으로써 노동조합 활동을 열심히 한 자가 어떤 상황에 처하는지 사업장 내 다른 노동자에게 보여 주려는 것이다. 안전운전을 위해 인력 충원을 요구하는 노조의 쟁의행위를 탄압하는 서울교통공사, 그리고 사실관계 확인도 없이 사측의 입장만을 대변하며 노조혐오에 편승한 언론이야말로 바로 아찔한 운행의 주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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