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탁 노회찬재단 사무총장

지난 4일 전태일기념관에서 노동공제 집담회가 열렸다. 초청받은 분들은 거의 빠짐없이 참석했고, 또 한 다리 건너 전해 들은 이들 중에서 관심을 갖고 참석한 분들도 있었다. 지난 한 해 동안 노동공제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어났다. 이제 노동시장 변화에 따른 노동운동의 전략 설정에 대해 고민하는 활동가들에게 노동공제는 검토하지 않으면 안 될 의제가 됐다.

아직 노동공제에 대한 인식이 대중적으로 확산했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 공제조합 또는 공제회를 노동운동과 전혀 관련짓지 못하거나, 추상적으로만 이해했던 것에 비한다면 상당한 진전이다. 그러나 이제 한 단계 더 나아가 노동공제를 관심 차원에 머물게 하지 않고 이를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길 계기가 필요하다.

이날 집담회에서는 의제에 대한 문제의식을 좀 더 구체화하고, 다양한 실천사례에 대한 경험을 공유하고, 또 실현가능한 노동공제를 만들어 내기 위해 정기적으로 만나 논의하자는 결정이 있었다. 모임의 이름도 노동공제포럼으로 하자고 제안됐다. 4월11일은 1920년 조선노동공제회가 만들어진 지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 전날인 4월10일 포럼을 열고 각자가 고민하는 영역에 대한 다양한 문제의식을 내놓기로 했다.

노동공제는 노동조합을 대체하는 조직이 아니다. 우리나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에도 노동공제조직은 노동조합이 될 수 없다. 공제사업은 노동조합이 수행할 수 있는 사업 영역이다. 그러나 시초의 노동조합이 공제 기능부터 시작했음을 감안한다면 노동조합 사업의 핵심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단체교섭을 통한 단체협약 체결 기능이 노동조합의 존재 이유라고 한다면, 공제는 조합원 간 생활상의 유대를 실현하는 역할을 한다.

비록 노동공제가 노동조합을 대체하는 조직이 아니라 할지라도 노동공제를 통해 노동조합을 조직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조직화 방식이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는 점에서라도 더욱 그러하다. 통계상 2017년 노조 조직률이 10.7%로 그 전 해보다 0.4% 늘어나긴 했지만, 30명 미만 사업장의 노조 조직률은 0.1%로 그 전보다 줄었다. 큰 규모 사업장의 조직률은 유럽에 비해서도 뒤지지 않지만, 작은 사업장의 조직률은 그야말로 처참한 상태다.

노동공제는 하나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 노동계 전체가 합심한다면 아주 빠른 속도로 정착할 수 있다. 한국의 노동운동은 빠른 전파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계가 기존 관성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긍정할 수 있다면, 노동금고와 노동공제라는 두 개의 노동금융제도는 어렵지 않게 이뤄질 것이다. 하지만 일이 그렇게 쉽게 이뤄지지는 않는다. 대기업 조합원들에게는 크게 아쉬움이 있는 제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조합이 없는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들에게는 아주 절실히 필요한 제도가 될 수 있다. 담보가 없거나 신용이 높지 않은 노동자들에게 노동금고는 금융제도의 문턱을 낮추는 역할을 할 것이고, 비싼 보험료를 감당할 수 없어 예견되는 위험에 그저 몸만 사릴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에게 노동공제는 생활상의 위험을 구제해 줄 수 있는 아주 유용한 수단이 될 것이다.

문제는 마중물이다. 어떤 일이든 쉽게 이루려면 마중물이 필요하다. 그러지 않으면 이슬이 한 바가지의 물이 되기를 기다리는 만큼이나 많은 인내와 시련이 필요하다. 당분간은 그러한 인내와 시련이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러한 어려움이 없이는 탄탄한 기반이 형성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생각도 해 본다. 그 과정에서 강한 활동가들이 탄생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한다.

그러나 나는 노동계가 좀 더 적극적으로 고민해 주기를 원한다. 서울시에서는 이미 서울시민공제조합을 띄우고 있다. 경기도에서도 지난번 집담회에 참관한 이후 경기도의 노동사업에 공제사업을 결합할 수 있을지 탐색하고 있다.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도울 의지를 갖고 있다. 하지만 노동공제운동이 노동자 스스로의 힘으로 이뤄지는 자주적 성격을 가지기 위해서는 그 실행 주체도 노동운동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동운동이 공제운동에도 마중물이 됐으면 한다. 조선노동공제회의 성격에 대한 가치판단과 상관없이 100주년인 2020년이 노동공제운동사에 새롭게 기념될 수 있는 해가 됐으면 한다.

노회찬재단 사무총장 (htkim82@gmail.com)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