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재율 변호사(법무법인 코러스)

대상판결 : 춘천지법 강릉지원 2020. 1. 15. 선고 2018가단30326 판결


1. 사실관계

원고는 삼표시멘트 하청업체인 ㈜동일에 2012년 3월1일 입사해 삼표시멘트(당시 동양시멘트)의 46광구 석회석공정(원석에 구멍을 뚫어 화약을 넣고, 화약을 터뜨려 원석을 쪼갠 후 발파된 암석을 굴삭기·덤프 등 장비를 이용해 분쇄기에 투광해 일정한 크기로 분쇄하는 공정) 중 중기 파트에서 주로 근무하면서, 살수차를 운전해 살수작업을 하거나 대형트럭을 운전해 적재 및 운반 작업을 수행했다. 동일 소속 근로자들은 2014년 5월 민주노총 강원영동지역노동조합에 가입해 지부를 결성한 후, 같은해 6월 위장도급 및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위반을 이유로 고용노동부 태백지청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러한 근로자들의 진정 사건에 대해 태백지청은 2015년 2월13일 동일과 삼표시멘트와의 관계가 위장도급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삼표시멘트가 동일 소속 근로자들과 직접 근로계약을 체결하도록 통보한 바 있다. 이러한 노동부의 판단은 불법파견을 넘어서 묵시적 근로계약관계를 인정한 최초 사례였다. 그런데 노동부 판단이 나온 당일 삼표시멘트는 자신의 하청업체였던 동일에 도급계약 해지통보서를 보냈고, 같은달 17일 동일은 자신의 소속 근로자 100여명에게 해고를 통지했다. 원고도 마찬가지로 이때 부당해고됐다. 원고는 이후 2년11개월 후인 2018년 1월18일 삼표시멘트를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 및 임금 차액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그 후 원고는 청구취지를 변경해, 최종적으로 근로자파견관계 성립을 전제로 피고를 상대로 ① 파견법상 직접고용의무 규정에 따라 고용의 의사표시를 갈음하는 판결을 구하고 ② 파견법 21조 차별처우 금지 위반의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하는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2. 대상판결의 요지

재판부는 하청업체의 인사권, 임금결정, 작업현장에서의 지휘·감독, 하청업체 근로자들에 대한 작업배치권, 근무시간, 근태, 휴가 등에 대한 관리의 측면에서 근로자들의 근로관계 실질을 볼 때 원고와 삼표시멘트 사이에는 파견근로관계가 성립한다고 봤다. 따라서 재판부는 파견근로관계 인정에 따른 효과로서 원고의 경우 2012년 8월1일 개정 파견법이 시행된 때로부터 삼표시멘트가 고용의 의사표시를 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판단했다. 또한 삼표시멘트는 파견법 21조1항 위반의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으로 2013년 10월부터 2015년 2월까지 사이에 원고가 수령한 임금과 피고의 취업규칙에 의해 원고와 동종유사 근로자가 수령했을 임금 차액 상당을 손해배상액으로 지급하라고 판단했다.

3. 판결에 대한 비평

해당 판결에서는 기존의 파견법 위반 사건과 달리 파견법 적용과 관련해 새로운 쟁점들이 판단됐다. ① 파견근로자가 파견법 21조 위반을 이유로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으로 임금 차액 상당액을 사용사업주에게 청구할 수 있는지 ② 이 경우 민법 766조에 따라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불법행위가 있은 날부터 10년’ 이라는 소멸시효가 그대로 적용되는지 ③ 파견법 21조가 문제되는 경우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을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지 여부에 대해 원고와 피고 사이에 공방이 펼쳐졌고, 해당 판결에서 이러한 쟁점들에 대해 판단이 이뤄졌다.

첫 번째 쟁점을 보면 차별행위를 금지하는 개별 법률 조항인 파견법 21조가 존재하고, 파견법 21조는 금지행위의 주체를 파견사업주와 사용사업주로 명시하고 있으며, 차별행위가 불법행위라는 판단은 우리 법원이 이미 오래전부터 인정한 사실이라는 점에서 파견근로자가 파견법 21조 위반을 이유로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을 사용사업주에게 청구할 수 있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대상판결은 서울고등법원 2018. 10. 23. 선고 2017나2005264 판결에 이어 또다시 이러한 점을 확인했다.

두 번째 쟁점에 대해서 피고는 원고가 주장하는 손해배상액은 ‘차별이 없었더라면 원고가 받았을 적정한 임금과 실제로 받은 임금과의 차액 상당의 지급 청구’이고, 이는 근로계약상의 임금 차액의 지급청구권과 실질적이고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가 형성돼 있기 때문에 원고가 주장하는 손해배상 청구권의 소멸시효 기간 역시 임금채권에 준해 3년의 단기소멸시효가 적용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대상판결은 왜 이러한 피고의 주장이 타당하지 않은지에 대해 아무런 설시는 하지 않은 채 피고의 이러한 주장이 타당하지 않다는 사실을 전제로, 소멸시효 판단에서의 다음 단계인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이 도과했는지 여부만 판단했다.

그러나 대상판결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근로자지위확인 및 임금차액 청구는 근로자파견관계 성립에 따른 차별금지 위반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와는 상이할 뿐만 아니라”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임금차액 청구와 차별금지 위반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는 다르다는 사실을 밝혔다는 점이다. 이는 동일한 쟁점을 다퉜던 서울고법 2018. 10. 23. 선고 2017나2005264 판결에서 “원고의 손해배상채권이 근로자의 임금청구권에 해당하지도 아니하므로”라고 판시한 것과 궤를 같이한다. 즉 서울고법 판결에 이어 대상판결에서도 임금 차별행위에 대해 손해배상으로 임금 차액 상당을 청구하는 경우, 파견근로자의 이러한 청구는 임금청구권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피고는 대구지법 김천지원 2018. 6. 22. 선고 2016가합16156 판결과 서울중앙지법 2019. 11. 28. 선고 2017가합533261 판결을 원용해 원고가 주장하는 손해배상 청구는 근로계약상 임금 차액 지급청구권과 실질적이고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가 형성돼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실제 위 김천지원과 서울중앙지법 판결은 “불법파견 사실 자체 내지는 피고가 고용의무를 위반한 사실 자체가 불법행위를 구성한다”는 것을 이유로 했고, 대상판결은 “피고가 파견법 21조 규정을 위반해 차별을 했다는 사실이 불법행위를 구성한다”는 것으로 주장 내용에 있어서 분명히 차이가 있다.

세 번째 쟁점에 대해서 대상판결은 민법 766조의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이란 피해자나 그 법정대리인이 손해 및 가해자를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으로 인식한 날을 의미하며, 그 인식은 손해발생의 추정이나 의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손해의 발생사실뿐만 아니라 가해행위가 불법행위를 구성한다는 사실 등을 구체적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종래의 판례를 설시하며 대상판결의 사안에서 원고가 이미 이 사건 불법행위를 안 날로부터 3년이 도과했다는 피고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불법파견 사건에서 단순히 근로자가 스스로 임금액에 있어서 차별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 수는 있겠으나 이러한 상황이 파견법 21조에서 금지하는 차별행위이고, 불법행위가 돼 자신이 사용사업주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현실의 근로자가 인식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사실 파견법 21조 위반 문제에 대해 법원에서 다퉈진 사례도 거의 없는 현실에서 근로자가 이러한 사실을 이미 인식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대상판결의 논리를 적용하면 파견근로자는 고용의무 발생시부터가 아니라 최초 파견근로를 제공한 시점부터 차별을 받은 것이므로, 그 시점부터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고 소멸시효 규정에 따라 최대 10년치 임금차액 상당을 청구할 수 있게 됐다. 대상판결의 사안에서는 원고가 2012년 3월1일부터 하청업체 입사와 동시에 파견근로를 제공했으나, 피고 회사가 회생절차를 거친 특별한 사정이 있었기 때문에 2012년 3월1일부터가 아니라 소 제기 4년3개월 이전 시점인 2013년 10월부터 2015년 2월까지 매월 임금 차액 상당액을 실제 손해배상액으로 인정했다.

대상판결은 서울고법 2018. 10. 23. 선고 2017나2005264 판결과 더불어 사용사업주의 파견법 21조를 위반한 임금 차별행위에 대해 파견근로자가 손해배상으로 임금 차액 상당을 청구하는 경우 그 근거는 불법행위 책임임을 확인했고, 임금 차별행위에 대해 손해배상으로 임금 차액 상당을 청구하는 경우 그러한 청구는 임금청구권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대상판결은 구체적인 사건에서, 실제 3년을 넘는 그 이전의 기간에 대해 임금 차액 상당을 손해배상액으로 인정한 첫 사례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큰 판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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