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새해 꿈이 깨기도 전에 세상이 온통 어수선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우리 주위를 덮쳐 점점 세를 키워 가는 중이다. 큰 사고 없이 빠른 시일에 퇴치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이런 상황에서 전염병을 틈타 노사와 노동자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이간질을 일삼는 신종 전염병이 있다고 한다. 서로 체온을 나누기조차 꺼려지는 마당에 이런 놈들까지 득세하고 있으니. 몇 갑절 이문을 남기려는 마스크 사재기꾼보다 더 큰 거악이다.

다행히 노동현장이 뒤숭숭한 것만은 아니다. 방역을 위해 밤낮 없이 현장을 누비는 방역노동자, 환자들을 간호하는 병원노동자들의 희생과 노력,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묵묵히 일하는 배달노동자들이 있다. 특히 중국 우한에 체류 중인 교민들을 국내로 안전하게 이송하기 위해 대한항공노조 조합원들이 스스로 비행을 자원했다는 소식도 있었다. 귀국 후에는 수일간 자가격리까지 감수해야 하는 어려움이 예상됐는데도 수많은 조합원들이 동지애를 발휘했다. 우리 주위 모든 노동자에게 박수를 보낸다. 이들이 있어 아직까지 우리는 별다른 문제 없이 안전하지 않은가.

늘 그래 왔듯이, 노동현장이 어려움에 처하면 노동자들이 앞장선다. 그런데 자랑스런 노동자들의 희생을 무색하게 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그것도 정부가 앞장서고 있다. 정부는 과연 노동자들의 존재와 희생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노동존중 사회”라고 내걸었던 정부임을 생각한다면 그들이 말하는 노동존중이 과연 어떤 것인지 되묻고 싶어지는 순간이다.

고용노동부는 말로만 진행되던 근로기준법 53조(연장근로의 제한) 특별연장근로 인가사유 확대를 시행했다. 근기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이른바 ‘경영상 어려움’만 있다면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을 넘어서더라도 근기법 위반이 아니라는 취지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신종 코로나 방역과 예방을 위해 자신의 건강마저 내놓고 일하는 와중에 한 발표다. 그것도 근기법 시행규칙 적용 1호가 마스크 제조공장이란다.

참으로 절묘하다. 그간 특별연장 인가노동의 위법성의 주장했던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정부로서는 잠재우기 딱 좋은 시점을 찾은 게 아닌가. “마스크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정부 조치는 적절한 것 아니냐, 정부가 무슨 조치라도 취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커져 가는 터였다. 아마 노동부는 “이런 상황을 미리 예상하고 저희가 시행규칙을 개정했습니다”라는 취지로 특별연장 인가노동 확대는 정당하고 합리적인 조치라고 광고할 것이다.

전염병 확산은 막아야 한다. 이를 반대할 노동자는 없다. 앞서 예를 들었지만 신종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한 방역을 위해 모든 시민과 노동자들이 앞장서고 있다. 문제는 정부의 방식이 형식이나 내용에서 모두 잘못됐다는 점이다. 굳이 이 시기에 근기법 시행규칙 개정을 발표하는 그 모습은, 참으로 하수 중 하수라고 할 수밖에 없다. 노동자들이 지적했듯이 근기법에서 정한 ‘특별한 사유’에 대한 해석은 정부가 자의적으로 법을 집행해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엄격한 집행을 당부한 것임에도 노동부는 ‘경영상 어려움’까지 끌어들여 ‘주 52시간 상한제’라는 시대 흐름을 거스르고 말았다.

형식상 대한민국헌법은 법률이 행정부에 구체적으로 위임하지 않고서는 정부가 임의로 시행규칙을 정할 수 없다. 헌법은 노동자와 시민의 권리의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제도는 반드시 법률로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특별연장 인가노동 확대가 노동자·시민의 노동시간 확대에 관한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법률제정사항임이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부 발표는 위헌이고 위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양대 노총은 헌법소원을 제기할 예정이다.

무엇보다 절차위반이 가장 큰 문제다. 문재인 정부는 노동존중 사회를 열겠다고 약속했다. 노동제도를 만들어 가는 데 노동자와 합의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노동시간단축이라는 가장 핵심적인 노동가치를 단 한 번도 노동자들에게 물어보지 않고 개정했다. 약속한 당사자인 노동자들이 누차 명시적으로 반대하고 있음에도 간단히 무시해 버렸다.

촛불정부 출범에 즈음해 한국노총은 20여개 항에 이르는 ‘노동존중 정책연대협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협약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 “촛불이 사그라지기 직전”이라는 자조가 늘어 간다. 노동자들의 소원은 간명하다. “정책협약을 이행하라.” 공치사에 그칠 정책연대협약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노동자들의 최후 경고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