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회사 영업사원이 접대성 회식을 한 뒤 계단에서 굴러 숨졌다면 업무상재해로 봐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4일 공동법률사무소 일과사람에 따르면 서울고법 1-1행정부(재판장 고의영)는 2016년 숨진 제약회사 영업직 노동자의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취소 소송에서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고인은 2016년 2월 병원 간호사·회사 동료와 함께 1~3차에 걸쳐 회식을 한 후 대리기사를 기다리던 중 노래방 입구 계단에서 굴러 크게 다쳤다. 입원치료를 받다가 그해 4월 사망했다.

공단은 유족의 산재신청에 대해 “고인이 친목도모 또는 사적으로 과다하게 음주한 상태에서 발생한 재해는 업무상재해로 볼 수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1심인 서울행정법원도 같은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공단과 1심은 △고인이 회식 전에 상급자 지시를 받지 않고 보고하지 않은 점 △동석한 회사 동료가 해당 병원 담당이 아닌 점 △회식비용을 법인카드로 처리하지 않고 출처가 불분명한 상품권과 개인카드로 결제한 점 △고인이 과음한 것을 이유로 들었다.

반면 서울고법은 “고인의 사망과 업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고인의 업무 특성상 간호사 접대가 필요하고 회식자리 대화주제도 업무와 관련한 것이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회식은 선 조치 후 보고가 허용되는 일이었고 상품권을 사전에 구매해 사용하는 경우도 많았다”며 “개인비용 결제금액은 소액이고 개인에게 지급되는 업무추진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회식이 사적이고 임의적인 모임으로 변질됐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유족을 대리한 손익찬 변호사는 “본질은 회식의 목적과 내용이라는 것을 확인한 판결”이라며 “접대성 회식의 경우 내부결속을 위해 내부인원만 참석하는 사업주 주관 회식처럼 엄격하게 보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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