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민애 변호사(법무법인 율립)

<슈가맨>이라는 TV 프로그램을 참 좋아한다. 그만큼 흘렀는지도 몰랐던 시간을 거슬러 돌아가, 잊고 지내던 시간을 떠올리게 하는 1시간의 감흥이 묘하다. 오래전 좋아했던 가수가 품새와 목소리에 세월을 머금고 등장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몇 년’이라는 셈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시간의 깊이와 무게감이 느껴진다. 그 시간 동안 저이에게, 나에게, 우리에게 참 많은 일이 있었겠구나.

10년이다. 회사와 노동자, 정부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완전한 복직을 약속하는 ‘사회적 합의’를 이뤄 내기까지 걸린 8만7천600시간. 갑작스러운 대규모 해고에, 한여름 물도 전기도 끊긴 공장에서 77일간 옥쇄파업은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이들의 절규였다. 테러진압작전을 방불케 한 경찰의 폭력진압에 몸과 마음 곳곳에 난 상처는 아물 수가 없었다. 10년 동안 서른 명이 세상을 떠났다. 곡기를 끊고 굴뚝에 오르며 동료를, 가족을 잃은 고통과 슬픔을 켜켜이 쌓으며 복직을 기다려 왔던 시간. 해고가 정당하다는 ‘경영상 판단’을 ‘존중’한 대법원 판결은 생채기를 꾹꾹 누르며 피워 왔던 희망의 불씨를 꺼뜨렸다. 파업을 진압하면서 발생한 손해를 배상하라며 정부가 노동자들에게 제기한 소송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2018년 9월 쌍용자동차와 쌍용자동차노동조합·금속노조 쌍용차지부·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쌍용차 해고노동자 전원복직’ 합의는, 이 모든 시간을 각자의 자리에서 겪어 내야 했던 이들의 고통과 그 무게를 조금이나마 덜어 내기 위한 ‘사회적 합의’였다. 더 이상의 죽음은 안 된다는 처절한 목소리가 담긴 결과였다. 2018년 12월 말 1차로 71명이 복직하고, 2019년 7월 46명이 복직절차를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조차 46명은 2019년 12월 말까지 부서를 배치받고 일을 시작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6개월간 무급휴직 상태를 감수했다. 그런데 쌍용자동차는 사회적 합의를 깨고, 쌍용자동차 노동조합과의 합의를 이유로 이들에게 무기한 휴직명령을 했다. 부서배치를 일주일 앞두고 있던 이들에게, 최소한의 협의도 거치지 않은 채 일방적인 통보로 말이다.

쌍용자동차는 사회적 합의를 이행할 당사자일 뿐 일방적으로 깰 수 없고, 쌍용자동차노동조합과의 합의만으로 복직 노동자들의 완전 복직 시기를 결정할 수도 없다. 46명의 급여 30%를 절감해 경영위기를 타개할 수 있다는 것이라면, 이는 무기한 휴직을 정당화할 수 있는 경영상 필요성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예측할 수 있는 기준이나 절차 없이 쌍용차지부 소속인 복직자들만을 무기한 휴직명령 대상으로 해 부당노동행위에도 해당할 수 있다. 쌍용자동차·정부·쌍용자동차노동조합 모두 잘 알고 있을 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다시 기만과 고통의 시간을 쌓아 가고 있다.

현장에 있어야 할 노동자들이 3일 다시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한다. ‘약속’만 잘 지켰다면, 많은 이들에게 평범한 일상으로 기억될 오늘이었다. 얼마나 더 많은 고통의 시간이 있어야 하는 것인가. 그 시간들을 책임질 수 있다는 말인가. 사회적 합의를 파기한 자들에게 되묻지 않을 수 없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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