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아이가 한 번씩 뻔한 거짓말을 한다. 곧장 타이르기는 피하고 싶었으니 옛날이야기를 들려줄 시간이다. 그러니까 옛날에 말이야 양치기 소녀가 있었는데…. 두어 번은 잘 듣더니 금세 지겨운 모양이다. 벌거벗은 임금님과 피노키오 이야기로 돌려막았다. 거짓말은 나쁘다는 걸 알려 주는 맞춤형 이야기들이다. 얼마간 효과가 있었다. 일하며 찍은 사진을 모니터에 띄워 놓고 정리하는데, 피노키오를 알아본 아이가 쪼르르 달려와 이게 뭐냐고 물었다. 글 읽는 아이 앞에서 거짓말로 둘러댈 수도 없어 우물쭈물 설명하는데 쉽지가 않았다. 기다란 코에 적힌 노동기본권 보장이며 비정규직 제로시대 같은 것들을 말해 주느라 새로운 피노키오 이야기를 지어내야만 했다. 일하다 죽은 사람들 이야기에 이르니 이어 가기가 버거웠다. 까마득한 옛날이야기가 아니었으니 더욱 그랬다. 여러 처지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지켜지지 않아 거짓말이 돼 버린 약속을 줄줄이 읊었다. 촛불 행진을 선언했다. 생선 굽느라 켜 둔 촛불을 보고도 광화문광장 구호를 떠올리는 아이가 저기 사진 속에 적힌 촛불 행진에 관해서도 물었다. 그때와는 좀 다른 이야기지만 같은 것이기도 하다며 혼잣말을 하고 말았다. 옛날 옛적에 사람들이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는데…. 훗날 광장의 촛불 이야기는 어떤 교훈을 품게 될까 생각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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