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정기훈 기자는 매일노동뉴스 사진기자다. 밖에서 사진 못 찍는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다. 사진기자는 취재기자와 동행할 때가 많다. 노동절 행사나 전국노동자대회 같은 대규모 집회는 물론이고 기자회견·1인 시위·인터뷰까지…. 그때 많이 듣는 칭찬이 있다. 사진 잘 찍는다고. 취재기자는 옆에서 한마디 거든다. 진짜 잘 찍는다고.

그러면서도 가슴 한편은 씁쓸하다. 매일노동뉴스의 지면 상태가 사진을 받쳐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려운 진보매체의 현실적 한계라며 퉁 치고 넘어가지만, 사진기자가 절대 내색한 적은 없지만, 다들 안다. 그런 마음을.

정기훈 기자는 ‘글 잘 쓰는’ 사진기자로 유명하다. 정기훈 기자의 매일노동뉴스 고정칼럼인 <사진이야기>는 독자에게 인기가 높다. 농담 반 진담 반 사람들은 말한다. 사진기자가 취재기자보다 글을 잘 쓴다고. 사진과 글에서 울림이 느껴진다고.

피사체와의 거리에서 담아낸 ‘울림’

정기훈 기자가 펴낸 <소심한 사진의 쓸모>(사진·북콤마·1만7천원)는 고정칼럼에 기반을 둔 새로운 작품이다. 칼럼에 담지 못한 풍부한 사진들과 사진기자의 고뇌를 가감 없이 담아냈다. 부제는 “카메라 뒤에 숨어 살핀 거리와 사람”이다. 정기훈 기자는 서문에서 “나는 어떤 크고 화려한 장면을 찍는 일에는 익숙하지 않았다”며 “그저 한 발짝 물러나서 관찰하거나 종종 용기 내 주목받지 못한 사소한 일을 묻고 적고 찍었을 따름”이라고 말한다.

<소심한 사진의 쓸모>는 피사체와의 거리에 따라 4부로 구성됐다. 1미터와 2~3미터, 5~7미터, 그리고 10미터. 거리마다 느낌이 다르지만 사진을 관통하는 것은 ‘현장’과 ‘사람’이다. 현장은 처절하다. 더워도 추워도, 거리에서 바닥에서 굴뚝에서, 노동자들은 외친다. 아프다고. 정기훈 기자의 사진은 ‘울음’을 삼킨다. 세월호 참사와 용산 참사, 산업재해 사망자 유족을 비출 때 ‘울음’이 독자에게 전해진다.

그의 사진에선 ‘희망’이 새어 나온다. 장기농성을 하던 기륭전자·콜텍 노동자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져 있다. 한진중공업 크레인 농성 중이던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에게 희망버스 참가자가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려 보낸 하트는 관계의 따뜻함을 전해 준다.

정기훈 기자는 거칠고 굽은 손, 굵은 주름 얼굴을 자주 등장시킨다. 어느 기름밥 노동자의 뒷짐 진 손, 세월호 추모리본을 매다는 문규현 신부의 손,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자의 땀을 훔치는 얼굴, 오랜 노동의 세월을 간직한 어머니 얼굴. 절로 숭고함이 느껴진다.

‘소심한 또는 세심한’ 카메라의 쓸모

무엇보다 기자이자 작가인 저자의 솔직한 ‘마음’이 다가온다. 정기훈 기자는 자신을 “소심하다를 세심하다로 읽는 A형”이라고 소개한다. 처음 보는 사람 앞에 카메라를 들이대기엔 주저함이 있다고 했다. 그럴 때 그가 다가가는 방식이 있다. 지켜보기, 어슬렁거리기, 웃음 짓기, 시시한 농담 건네기, 사소한 것들을 묻기 등이다.

거리를 좁히기 위한 ‘공감’은 사진의 밑거름이 된다. 때로는 이런 거리가 ‘소심한 또는 세심한’ 그의 마음을 흔든다. 노란 점퍼를 입은 세월호 참사 엄마 아빠와 눈을 마주치기 어려워 카메라 뒤에 숨어 눈물을 흘리고, 집에 돌아와서는 어린 딸아이를 꼭 안아 주는 아빠의 마음이 사진과 글 곳곳에 녹아 있다.

“거리에서 만난 사람과의 아름다운 거리가 얼마쯤일지를 늘 고민한다. 난 오늘도 카메라 뒤에 웅크린 채 피사체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기를, 그러면서도 한 발짝 물러나 주변을 조망할 수 있기를 그저 바란다.”

정기훈 기자는 오늘도 현장과 사람을 마주하면서 ‘아름다운 거리’를 카메라에 담아낼 것이다. 그것이 저자의 바람처럼 ‘세심하고 쓸모 있는’ 사진이 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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