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가연장근로 사유를 대폭 확대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시행규칙이 지난달 31일부터 시행하면서 파급효과가 주목된다. 정부조차 인가연장근로 신청이 얼마나 늘어날지, 구체적인 경우를 예측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인가나 승인 전권을 행사하는 가운데 제도 취지와 달리 일반적인 업무량 폭증 등에도 특별연장근로를 인가하는 상황을 배제할 수 없다.

5개로 늘어난 사유, 노동부가 인가 전권 행사

2일 고용노동부와 전문가들의 말을 종합하면 인가연장근로 사유 확대가 산업현장에 미칠 영향을 가늠하기 쉽지 않다. 정부는 “특별한 사정”에 한해서만 특별연장근로를 인가하겠다는 입장인 반면,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는 “연장근로를 무제한 허용하는 조치”라며 반발하고 있다.

근기법 시행규칙 시행으로 늘어난 인가연장근로 사유는 △재해·재난 및 이에 준하는 사고예방을 위한 긴급한 조치가 필요할 때 △인명보호 또는 안전확보를 위한 긴급한 조치가 필요할 때 △시설·설비 고장 등 돌발상황 발생수습을 위한 긴급한 조치가 필요할 때다. 통상적이지 않은 업무량 폭증으로 단기간 내에 처리하지 않을 경우 사업에 중대한 지장·손해를 미칠 때와 노동부 장관이 국가 경쟁력 강화 등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연구개발도 추가됐다.

노동부는 연구개발 관련 인가연장근로는 3개월 이내로, 나머지는 4주 이내로 인가할 방침이다. 일주일 추가연장근로를 12시간 범위 내에서 인가하고, 12시간을 넘기면 연속 2주를 넘지 않도록 지도한다.

가장 논란이 된 조항은 통상적이지 않은 업무량 폭증을 이유로 한 특별연장근로다. 통상적이지 않은 업무량 폭증, 단기간 내 처리가 필요한 업무, 사업에 중대한 지장 여부를 모두 만족해야 하지만 뚜렷한 기준이 없다. 노동부는 4주 이내 처리가 필요한 업무를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또한 계절사업처럼 주기적으로 업무량이 증가하는 경우는 통상적인 상황으로 보고 인가를 내주지 않을 방침이다.

원청이 주문계획을 변경하면서 갑작스럽게 납기일이 앞당겨지거나 주문량이 늘어날 경우 특별연장근로를 인가할 방침이다. 이에 대해 노동계는 “원청의 갑질과 일방적인 주문은 통상적인 관행인데도 이제 와서 특별연장근로를 인가하겠다고 한다”며 반발했다.

사업에 주는 ‘중대한 지장’도 기준이 모호하다. 권기섭 노동부 근로감독정책단장은 “시설·설비 고장과 업무량 폭증을 이유로 한 특별연장근로는 사업주가 그 필요성을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신중하게 인가를 신청할 것”이라면서도 “지금 일률적으로 그 기준을 판단하기는 어렵고 사례가 어느 정도 축적돼야 개별 사례에 대해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스크 제조업체 첫 인가

지난달 31일 바뀐 제도에 따라 처음으로 특별연장근로를 인가받은 사례도 노동부 예상을 비껴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에 대응하는 질병관리본부와 전국 검역소 요원, 중앙의료원을 포함한 병원 직원들에게 지급하는 마스크를 제조하는 업체다. 노동부는 인명보호 또는 안전확보를 위한 긴급한 조치로 보고 특별연장근로를 인가했다.

그런데 이 업체에 고용된 노동자는 162명이다. 올해부터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를 적용받고 있지만 1년 계도기간이 주어졌다. 근로감독도 받지 않고, 진정이나 고소를 당해도 6개월의 시정기간이 보장된다. 노동부는 이런 사업장들이 특별연장근로 인가신청을 굳이 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노동부는 위생 마스크나 소독약품 생산업체들이 경영상 이유인 주문량 폭증에 따른 인가연장근로를 신청하더라도 승인을 적극 검토할 예정이다.

김기선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인가연장근로 사유 확대가 미칠 영향은 지금으로서는 예상하기 어렵다”면서도 “행정관청이 재량을 잘못 발휘해 재해나 재난 상황 또는 정말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아닌데도 경영상 이유까지 인가하기 시작하면 일반적인 상황까지 인가연장근로가 확대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