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지난해 12월13일 고용노동부는 주 52시간 이상 일할 수 있는 ‘특별연장근로 인가 사유’를 대폭 확대하는 근로기준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은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재난안전법)에 따른 재난 또는 이에 준하는 사고의 발생에 대한 수습에만 허용하던 특별연장근로 인가사유를 ‘업무량의 대폭 증가, 시설·설비의 갑작스런 장애·고장’ 등 경영상 사유로까지 확대하는 개악된 내용을 담고 있어 양대 노총뿐만 아니라 여러 시민·사회단체의 반대가 거셌다. 하지만 정부가 시행규칙 개정안을 이번주 일방적으로 시행할 것으로 보여 반발과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

장시간 노동이 일상화돼 건강권·휴식권 문제가 진작에 임계점을 넘어선 한국에서 특별연장근로 확대는 어리석은 대책이다. 한국의 1인당 평균 노동시간은 2018년 기준 1천967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이고, 매년 산재로 인정받는 과로사망 노동자가 300명이 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상황에서 2018년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해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노동시간 상한제와 관공서 공휴일의 민간기업 적용, 특례업종 축소 등 노동시간단축 대책이 나오면서 노동자들은 ‘저녁이 있는 삶’ ‘일과 생활이 양립하는 인간다운 삶’을 기대했지만, 정부가 특별연장근로를 대폭 확대하는 시행규칙 개정안을 밀어붙이면서 도루묵이 돼 버릴 위기에 처했다. ‘1주일을 5일’이라고 주장했던 노동부의 비상식적인 행정해석으로 주 68시간이라는 초장시간 노동이 허용됐던 잘못을 바로잡고자 근로기준법을 개정한 지 채 2년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노동부가 또다시 자의적인 해석으로 무제한적인 장시간 노동을 허용해 버린 것이다. 이러고도 문재인 정부가 노동존중 사회를 뇌까릴 수 있는지 되묻고 싶다.

무엇보다 개정안은 근로기준법상 노동시간 규정을 사실상 형해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근로기준법이 이미 주 52시간 상한제에 대한 예외로 탄력근로 등을 규정하고 있는 조건에서 별도로 모법이 규정한 범위를 넘어선 정부 대책은 그 자체로 위법적이고 위헌적이다. 2018년 2월 근로기준법 개정시 26개의 특례업종을 5개로 축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업종 제한 없이 ‘경영상 사유’를 특별연장근로 인가 요건으로 보겠다는 것은 특례업종을 축소한 개정법 취지에도 반하는 것이다. 특히 특별연장근로 인가사유에 포함된 ‘업무량의 대폭적 증가’는 사용자 편의에 따라 자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커 법정노동시간을 무력화하는 데 악용될 위험이 높다.

또한 노동부의 시행규칙 개정안에는 근로시간 연장 기간을 제한하고, 노동자의 건강권을 보호하는 조치가 규정돼 있지만, 실효성이 없어 유명무실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근로시간 연장 기간을 ‘특별한 사정에 대처 등을 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기간’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최소한의 기간’이 어느 정도인지 명확하지 않아, 사용자가 무제한으로 연장 기간을 신청할 수도 있고 노동자는 연장근로가 언제까지 허용될지 예측할 수 없다. 지방고용노동관서의 장이 사용자에게 노동자의 건강권을 보호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하도록 지도할 수 있지만, 재량사항에 불과해 실효성을 갖기도 어렵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노동부가 입법예고하고 시행을 코앞에 둔 근로기준법 시행규칙 개정안은 장시간 노동과 산재, 건강권 위협에 시달려 온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떨어트리는 명백한 개악안이다. 노동시간을 단축하자는 시대 흐름에도 역행하고, 장시간 노동을 근절하겠다는 정부정책 방향과도 상충된다. 수많은 부작용과 우려가 있고 이에 대한 납득할 만한 대책도 강구하지 못한 상황에서 재계 입장만을 반영한 개악 시행규칙을 이대로 무리하게 강행한다면 노정갈등의 진원지가 돼 버릴 것이다. 특별연장근로 확대는 위법이다. 노동부는 즉각 근로기준법 시행규칙을 철회하고 시행 계획을 중단한 후 원점에서 재논의해야 마땅하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namsin196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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