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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노협 30년, 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더 이상 계급과 착취가 없으며 모든 사람들이 완전한 평등 속에서 인간적 삶을 누리면서 사는 세상…. 그 세상을 만들겠다고 맹세했었지. 그런데 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걸까. 할 수만 있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네.” 영화 <태백산맥>에서 염상진의 마지막 대사였다.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 창립 30주년을 기념하는 여러 성명을 보면서 나는 이 대사가 생각났다.

2000년대에 노동운동을 시작한 나는 전노협을 경험해 보진 못했다. 그럼에도 경찰 봉쇄를 뚫고 창립대의원대회를 성사했던 장면, ‘노동해방’과 ‘평등사회 건설’ 깃발이 휘날리는 가두투쟁의 기록들, 해고와 구속을 무릅쓰고 민주노조를 건설했던 활동가들의 영웅담, 그리고 지금 봐도 낡은 것으로 보이지 않는 “대중적인 노동조합운동을 전개함으로써 우리의 조직과 의식을 발전시키는 기초 위에서, 노동자의 처지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경제 사회구조의 개혁과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고, “업종별·산업별 공동투쟁과 통일투쟁을 발전시키는 속에서, 기업별노조 체제를 타파하고 자주적인 산별노조의 전국 중앙조직을 건설하기 위해 총 매진할 것이다”라는 내용의 창립선언문으로, 당시의 계급적 열정과 변혁적 과학성을 가늠해 볼 수는 있다.

하지만 당대의 전노협 영광을 추억하며 내가 실제 마주하는 현실은 부끄럽다. 며칠 전 주요 일간지에도 보도된 공공운수노조 조사에 따르면 청년 조합원 73%가 “사회적 가치보다 조합원 권익을 우선해야 한다”고 답했다. 심층면접에서는 “비정규직 정규직화처럼 내 의견에 반하는 결정을 한 노조”를 비판했다. 공공기관에서 정규직화를 둘러싸고 노노 갈등이 큰 상황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조사 결과가 과장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전노협 창립선언문은 내용이 낡아서가 아니라 이렇게 노동자에게 거부돼 낡은 것이 됐다. 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전노협은 시기만 놓고 보면, 참으로 운이 없었다. 1989년 말부터 한국경제가 3저 호황을 끝내고 침체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1990년을 지나면서 대기업 이윤이 감소했고, 부도난 중소기업이 증가했다. 이전까지 공장가동에 사활을 걸었던 자본은 이때부터 유휴시설에 대해 위장폐업도 불사했다.

특히 문제가 됐던 것은 그나마 부침을 겪던 전노협과 대기업노조의 결합을 경제침체가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전노협은 중소기업 노조들이 주축이었다. 일부 대기업노조가 들어와 있었지만 현대그룹과 대우그룹으로 대표되던 재벌 대기업노조 대다수는 전노협에 가입하지 못했다. 노태우 정권과 재벌들이 대기업노조가 전노협에 가입하는 것을 기를 쓰고 막았던 탓이다. 1987년의 패배를 전노협에 대한 탄압으로 보상받겠다는 심보였다. 정권은 전노협과 대기업노조의 결합에 헌신하던 박창수 한진중공업노조 위원장을 살해하기도 했다.

정권의 폭력적 탄압과 함께 경제침체가 심화하자 대기업노조의 전노협 가입에 대한 부담은 이전보다 더 커졌다. 1990년 6월 현대차노조 위원장은 기업 내부 문제에 주력하겠다며 전노협 가입을 추진하던 울노협 의장직을 사임했다. 1991년 박창수 열사 진상규명 투쟁에서도 대기업노조들은 사측의 압력 속에 열사투쟁이 끝나기 전에 임단협을 마무리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렇게 한국경제의 심장이었던 수출재벌 노조들과 결합하지 못한 전노협은 1992년으로 넘어가면서 정권의 탄압과 중소기업 폐업으로 조합원이 급감해 힘이 크게 약화했다.

나는 1990~91년 전노협과 대기업노조가 결합하지 못한 것이 한국 사회 가장 큰 불행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둘의 결합이 실패한 효과가 단순히 더 큰 조직을 만들지 못했다는 것에 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동의 힘> 저자인 비버리 J.실버는 노조 발전경로를 ‘연합적 힘’과 ‘구조적 힘’의 결합방법으로 설명한다. 전자는 지역연대와 사회적 대의로 교섭력을 얻는 것이고, 후자는 파업으로 생산을 멈춰 교섭력을 얻는 것이다. 전노협이 전자, 대기업노조가 후자를 상징했다고 볼 수 있다. 노조의 발전방향은 두 힘을 어떻게 결합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연합적 힘이 우위에 있으면 노조의 정치사회적 운동이, 구조적 힘이 우위에 있으면 노조의 실리주의적 운동이 좀 더 발전한다. 한국 노동운동은 1990~91년 전노협과 대기업노조의 결합이 실패한 이후 후자의 방향으로 발전해 나갔다.

그런데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에서 군부를 대신해 재벌의 금권이 권력을 좌지우지했다. 3당 합당으로 집권세력에 편입한 김영삼 세력과 차기 대권에 혈안이 된 김대중 세력은 금권정치의 포로였다. 재벌의 대선자금·총선자금이 당시 정치를 상징한다. 재벌은 금권정치를 이용해 해외차입으로 과잉투자와 문어발식 확장을 이전보다 가속화했다. 노조를 피하기 위해 전노협이 사라진 중소기업에서 대규모로 아웃소싱을 진행했다. 그리고 이것이 1997년 국가부도와 극단적 노동시장 양극화로 이어졌다.

그때를 생각해 보면 금권정치를 견제할 수 있었던 유일무이한 세력은 노동운동뿐이었다. 노동운동은 1987년의 타협에서 배제됐다. 전노협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물리력을 가지고 재벌에 문제를 제기했던 세력이었다. 즉 노동운동만이 1987년 체제를 금권정치가 아니라 진정한 민주화로 한 걸음 밀고 나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노동운동의 시간”이 왔던 그 시절에 노동운동은 오히려 정치사회적 힘을 잃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1997년 국가부도부터 현재의 헬조선까지, 이때의 실패가 크게 영향을 미쳤다.

나는 할 수만 있다면 우리 모두가 1990년으로 되돌아가 전노협과 대기업노조의 결합을 다시 시도해 보자고 제안하고 싶다. 물론 시간을 거꾸로 돌릴 수는 없다. 몽상일 뿐이다. 현재 민주노총 역시 그때 놓쳤던 그 시간에서 영겁회귀의 곤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우리는 가능한 개혁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 동지들! 우리의 조직과 의식을 발전시키는 기초 위에서, 노동자의 처지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경제 사회구조의 개혁을 위해 투쟁하고, 기업별노조 체제를 타파하고 자주적인 산별노조의 전국 중앙조직을 건설하기 위해 총 매진합시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jwhan77@gmail.com)

한지원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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