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지난 9일 오전 11시30분에 산전수전 다 겪은 기아자동차 통상임금 소송 3차 사건에 관한 재판이 있었는데, 오전 10시30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이 있다고 참석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사측이 청구확장 기간에 대한 문서제출을 거부하고 있는 터라 반드시 ‘출석’해서 재판부에 명령해 달라고 재촉해야 할 상황이라 어렵겠다고 했더니 기자회견 시간까지 변경하고, 발언 순서를 맨 앞으로 재배치했다며 참석해야 한다고 하니 별수가 없었다. 상경해서 농성하고 있는 금속노조 현대제철(순천) 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이 벌써 나와 있었다. 최근 현대제철에서 사측이 외주화했던 도급업무에 대해 직영화를 추진하면서 비정규직지회와 충돌이 벌어지고 있었다. 여러 차례 지회장과 법적 대응에 관해 협의했던 터였다. 집회 형식으로 진행된 기자회견에 고 김용균씨 어머니인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도 자리를 함께했다. 이날 내가 했던 말도, 참석자들이 외쳤던 구호도 하나였다. “도급금지 무력화 꼼수를 중단하고 정규직 전환을 이행하라.”

2. 현대제철은 최근 아연도금 작업자 채용공고를 냈다. 아연 투입과 불순물 제거를 구분해 ‘직접작업’과 ‘간접작업’에 해당한다며 기존 2인1조로 근무하던 체제에서 1명만을 직접고용해 ‘아연 투입’을 담당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채용공고에 △직영 관할 계약직(촉탁직) △55세 이상 고령자 우대 △결격사유 없을 시 만 60세까지 계약 예정 등을 제시했다가 논란이 되자 이를 수정해 다시 냈다. 김용균 사망사고로 위험의 외주화 금지를 위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일명 김용균법)이 있었다. 바로 이 김용균법이 1월16일부터 시행됐다. 구체적으로 도금 작업, 수은·납·카드뮴의 제련·주입·가공·가열 작업, 허가 대상 물질을 제조·사용하는 작업 등 고위험군 작업의 사내하도급을 원칙적으로 금지했다. 이 법 시행을 앞두고 현대제철에서 아연도금 업무가 이 법이 외주화를 금지한 위험업무여서 이런 사달이 난 것이다. 외주화를 금지했으니 계약직을 채용해서 직영 노동자로 투입하겠다고 하니, 그 업무를 수행하고 있던 사내하청업체 노동자들은 졸지에 제 일자리를 빼앗기게 생긴 것이다. 그동안 현대제철 순천공장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고등법원까지 도금업무 등을 포함해서 사내하청업체 근로는 파견근로라는 판결을 받았음에도 원청인 현대제철이 이를 인정하지 않고서 계속 다투고 있는 터라 사내하청업체 노동자들은 정규직 전환을 외치며 투쟁을 했다. 그런데 김용균법 시행을 내세워 원청 현대제철이 이런 일을 벌이고 있으니 일자리를 위해서라도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처하게 됐다. 이건 뭐 김용균법의 잘못인 양 탓해야 할 처지가 돼 버린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날 기자회견에 관한 언론보도는 김용균법의 맹점이 문제라고 쓰기도 했다.

3. 위험의 외주화를 금지한 김용균법의 맹점이라니. 위험업무를 사내하청업체와 도급계약을 체결해서 고 김용균과 같은 비정규직, 즉 사내하청업체 노동자들이 수행하도록 해야 하는 것일까. 이것은 아니라고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원청이 위험업무를 외주화하지 않고 직접 수행해야 한다고 입법했던 것이다. 고 김용균 같은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그 업무에서 내쫓기 위해 마련된 법이 아니다. 진정으로 고 김용균이 바랐을 입법 취지는 위험업무는 비정규직으로서가 아니라 정규직으로서 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니 현대제철이 아연도금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사내하청업체 노동자를 현대제철 정규직으로 전환해서 일할 수 있도록 하면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다. 10년 이상 해당 업무를 했기 때문에 정규직을 포함해 다른 어떤 노동자보다 잘 수행할 수 있다. 그 위험업무를 수행하는 데 이들보다 나은 적임자를 찾기도 어렵다. 이것이 위험의 외주화를 금지한 김용균법의 취지를 제대로 살리는 길이다.

4.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현대제철(순천공장)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이미 법원에서 파견근로로 인정돼 현대제철의 정규직으로 고용되도록 판결받았다. 피고 현대제철이 대법원에 상고했기 때문에 아직 확정되지 않은 것인데, 그 판결이 확정되면 정규직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내하청 노동자를 사용해서는 안 되도록 한 법을 내세워 사용자 현대제철은 이들을 쫓아내려 한다.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을 위반해서 사내하청 노동자를 사용했기 때문에 법원으로부터 파견법이 규정한 대로 정규직으로 고용하라는 판결을 받은 자가 이렇게 법을 지키겠다고 기를 쓰는 게 나는 납득이 안 된다. 김용균법의 취지는 노동자의 안전과 고용을 위해서인데 현대제철이 그 법을 지키려고 하는 방법은 경험 없는 노동자를 투입하고 사내하청 노동자의 고용을 위협하는 것으로 추진하고 있다. 진정으로 법을 준수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법대로 하라고 말해 주고 싶다. 김용균법 어디에도 일하던 사내하청 노동자를 내쫓고 계약직을 채용해 투입하라고 규정하지 않았다. 그러니 그런 방법에 법을 내세워서는 안 되는 것이다. 현대제철에서 김용균법 취지에 부합하도록 법을 지키는 방법을 찾는 건 어렵지 않다. 도금업무를 하는 사내하청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그만이다. 이미 고등법원까지 현대제철 사내하청 근로는 파견근로라고 인정해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한다고 판결했으니 그 판결대로 하면 그만이다. 김용균법도 파견법도 지키는, 그야말로 제대로 법을 지킬 수 있는 길이다. 혹시 ‘그러면 대법원에 상고해 둬서 아직은 미련이 남아 있는데 도금업무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게 되면 괜히 파견소송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냐’고 걱정해서 그런 거라면, 걱정하지 마라고 말해 주고 싶다. 소송으로 청구한 걸 피고가 자발적으로 받아들여 줬다면 원고가 소송을 계속할 이유도 없고 계속할 수도 없는 것이며, 그게 다른 원고들의 청구를 법원이 인정하는 근거는 되지 못한다. 끝내 도금업무까지 대법원에서 파견을 다툴 미련을 버리지 못하겠다면 다투면서 하는 방법도 얼마든지 있다. 정규직으로 전환하되 임금 차액 등 청구부분에서 법원 판단을 받으면 된다. 결국 이렇게 살펴보면 길이 없어서가 아니라 뜻이 없어서라는 걸 확인하게 된다. 김용균법을 핑계로 사내하청 노동자의 일자리를 협박하겠다는 뜻을 확인하게 된다.

5. 법을 내세워 법을 농락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비정규직이 위험업무에 내몰리는 걸 막겠다는 김용균법을 핑계로, 파견법을 위반해 사내하청이라는 비정규직을 사용한 사용자가 파견법상 의무를 지지 않고 법을 농락하고 있다. 법을 위반하고 농락하는 사용자에 대해서는 법은 국가권력에 엄단하라고 명령하고 있다. 파견법 위반이라고 이미 고등법원까지도 판단했으니 이제라도 고용노동부가, 검찰이 의지를 갖고 수사하고 기소할 일이다. 최근 조국 사건 등에서 보여준 검찰의 적극적 수사 자세만 견지하고서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를 동원한다면 법을 농락하는 사용자를 엄단할 수 있다. 뭐 대단한 부탁도 아니다. 법이 하라고 명령한 일이다. 하지 않는 게 직무유기가 될 일이다. 그러니 부탁도 아니다. 해야 할 일을 하라는 것이다.

6. 현대제철 관계자는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 시행으로 직접고용하는 일자리가 늘어난 것인데 기회를 전체에게 열어 둬야 한다”는 취지로 승계고용은 어렵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승계고용이란 사내하청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걸 말하는데, 결국 모두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도금업무 사내하청 노동자 정규직 전환을 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나는 포털 뉴스에서 이 공평한 사용자의 의지를 읽었다. 단순히 김용균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정규직 일자리 기회를 모두에게 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김용균법이 없어서 정규직이 아니라 사내하청 노동자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는 건가. 얼마든지 정규직을 사용할 수 있었는데도 굳이 사내하청을 사용했다. 아니 현대제철에서 사내하청은 파견법 위반이라 사용해서는 안 되는데도 기어이 사용했다. 도금업무 등 사내하청 노동자가 수행하는 업무는 그들이 정규직으로 일해야 하는 것이라고 이미 법원이 선고했다. 더군다나 그 기회라는 건 그야말로 정규직도 아닌, 계약직 등이라니 대단히 공평하지 못하다. 현대제철 관계자가 말하는 기회는 계약직 등으로 정규직이 아닌 노동자를 사용할 사용자의 기회를 말한다. 도금업무에서 사내하청 노동자에겐 정규직이 될 수 없도록 하는 기회의 강탈이다. 김용균법 시행을 핑계로 정규직을 사용하지 않기 위한 사용자 현대제철의 꼼수를 노동자의 기회로 포장해 말하고 있다.

법은 명확한데 꼼수는 계속되고 있다. 법은 사내하청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한다. 그럼에도 법을 거부하려는 사용자들은 오늘도 이 나라 사업장에서 공공연히 법이 노동자에게 부여한 기회를 빼앗고 있다. 무법천지 세상이 아니라면 이제 꼼수를 제압하고 법을 선언할 일이다. 사내하청 노동자 김용균은 정규직 전환의 기회 없이 작업장에서 스러졌다. 하지만 그의 바람은 실현돼야 한다. “도급금지 무력화 꼼수를 중단하고 정규직 전환을 이행하라.”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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