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한국폴리텍대학(이사장 이석행)에 최근 ‘최초’ 또는 ‘유일’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경사가 잇따랐다.

폴리텍대학 안성캠퍼스는 지난 15일 반도체융합 캠퍼스로 새 출발을 했다. 한 개 학과를 제외하고는 모두 반도체 관련 학과로 개편했다. 대학을 새로 만드는 작업이나 마찬가지였다. 안성캠퍼스가 “국내 유일 반도체 특화대학”으로 불리는 이유다.

또 다른 경사는 지난해 12월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와 업무협약을 체결한 것이다. 한국지엠 노동자와 협력사 노동자의 직무능력 향상 교육과 퇴직자 재취업 교육에 협력하기로 했다. 폴리텍대학이 노조와 업무협약을 맺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인 이석행(62·사진) 이사장의 자랑거리다.

이 이사장은 2017년 12월 취임했다. 캠퍼스 기능조정과 캠퍼스별 공동실습장(러닝 팩토리) 구축, 반도체·항공정비(MRO) 협력지구(클러스터) 조성에 힘을 쏟았다. 그는 <매일노동뉴스>와 만나 “민주노총 위원장 시절 현장에서 느낀 것을 실행에 옮긴 것”이라며 “노동운동가 출신으로 직업교육의 길에 뛰어든 만큼 좋은 평가를 받고 싶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지난 16일 오후 서울 마포구 인근 음식점에서 진행했다.

“민주노총 위원장 때 현장대장정 경험 큰 도움 돼”

- 이달 15일 출범한 반도체융합 캠퍼스에 대한 관심이 높다.
“많은 분들이 놀라고 있다. 그냥 캠퍼스 이름을 바꾸거나 반도체학과를 신설한 게 아니다. 반도체만 교육하는 반도체 특화대학이다. 3~4년 걸릴 일이었는데 1년6개월 만에 대학을 통째로 바꿨다. 국내에 반도체만 교육하는 대학은 없었다.”

- 민주노총 위원장 경험이 도움이 됐다고 들었다.
“2007년 민주노총 위원장 때 현장대장정을 하면서 2천500여개 사업장을 돌아다닌 것이 큰 도움이 됐다. 당시에 느낀 것은 각 지역마다 지역을 대표하는 산업이 있다는 것이었다. 2년 전 폴리텍대학에 와 보니 지역 특성과 무관하게 학과가 천편일률적이었다. 대부분 기계과·전자과·전기과가 있었다. 이건 아니다 싶었다. 반도체융합 캠퍼스가 있는 경기도 안성만 하더라도 가까운 용인에 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가 있다. 평택에는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이 있다. 그래서 지역과 연계할 수 있도록 캠퍼스를 바꿨다. 인천 지역을 봐도 20분 거리에 있는 인천캠퍼스와 남인천캠퍼스에 개설된 학과가 거의 같았다. 유사한 학과는 인천캠퍼스로 통합하고, 남인천캠퍼스는 항공정비 특화대학으로 전환했다. 올해 6월 문을 연다.”

이석행 이사장은 취임 뒤 새로운 산업에 걸맞은 기술을 갖춘 인재양성을 위해 직업교육캠퍼스 기능조정과 학과통폐합에 주력했다. 내부 반발이 적지 않았다. 민주노총 위원장 시절 현장대장정 경험을 바탕으로 전국 38개 캠퍼스를 5번씩 방문해 설득하고 점검했다. 2017년 4%였던 신산업학과 비중은 지난해 13%로 확대했다. 이 이사장은 “10년 이상 앞선 직업교육을 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해 주는 사람도 있다”며 “직업교육 지형이 변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정기훈 기자

“노조도 직업교육에서 역할해야”

- 지난달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와 업무협약을 맺었는데.
“폴리텍대학이 노조와 체결한 최초 협약이다. 재직노동자와 협력사 노동자에 대한 직무능력 향상 교육과 퇴직자 재취업을 지원하게 됐다. 이보운 전 위원장이 적극적으로 도와줬다. 노동운동도 일자리를 중심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생각에 공감해 준 것 같아 고마웠다. 노동자 재취업을 지원한 게 처음은 아니다. 2018년 2월 익산캠퍼스에서 한국지엠 군산공장 폐쇄로 퇴직한 노동자를 대상으로 직업교육을 했다. 자격취득률이 94.4%였고 83.3%가 취업에 성공했다. 부평공장 퇴직자들에게는 정보통신 교육을 했다.”

- 업무협약 대상을 확대할 생각인가.
“전국에 있는 산업단지공단과 업무협약을 맺고 싶다. 인력이 부족한 산업단지에 맞춤형 인력을 양성해 제공하고 싶다. 정년퇴직자라고 해서 경비일만 해서야 되겠나. 경력을 활용하거나 새로운 직업교육을 받아야 한다. 현재 금융노조 우리은행지부와 은행노동자 퇴직자 직업교육에 관해 얘기하고 있다. 스마트금융이나 빅데이터 활용, 블록체인처럼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든지 있다. 퇴직자들이 인생 이모작·삼모작을 준비할 수 있도록 노조가 폴리텍대학과 협력했으면 한다. 가능하면 산별노조 차원으로 확대하고 싶다. 폴리텍대학은 전국 어느 곳에 가도 있다. 일자리가 있어야 노동운동도 있다는 인식과 고민을 함께하면 좋겠다.”

- 노동운동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동안 노조나 노동운동에 대해 말을 하지 않았다. 지금도 그게 도리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미 노동운동을 떠난 사람 아닌가. 그래서 당연직인 민주노총 지도위원을 하지 않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물론 민주노총이 사회적인 역할을 해 주길 바라지만 이래라저래라 할 수는 없다. 다만 직업교육과 관련해 노조의 포지션이 있다면 실행하면 좋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다.”

- 문재인 정부 노동정책을 평가해 달라.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 최저임금 인상 같은 노동정책이 노동자 관점에서 설계됐다는 점을 인정한다. 어느 정권이든 욕 안 먹는 정책을 만들어 낼 수는 없을 것이다. 논리적으로 설득하고 대화하면서 노조와 입장 차이를 줄이려는 노력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노조 역시 미래 경제여건과 우리가 처한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산업과 일자리 위기 극복을 위해 어느 때보다 사회적 대화가 절실하다. 노사정이 함께 논의할 주제를 선정하고, 산업이나 사안별로 보다 촘촘하게, 충분한 논의를 거쳐 대안을 마련하는 파트너십을 구축해야 한다.”
 

▲ 정기훈 기자

“직업교육 전문가로서 긍정적인 평가 받고 싶다”

-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이라서 어려웠던 사업이 있다면.
“취임 초기에 나왔던 선입견이나 편견은 많이 없어졌다. 다만 폴리텍대학에서 노동법이나 노동인권과 관련한 교육을 강화하고 싶었다. 지금도 기본 교양과목에 포함돼 있지만 더 심화한 교육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쉽지 않았다. 취업이 어려운 시기에 취업률이 조금만 떨어지면 ‘봐라. 저럴 줄 알았다. 민주노총 출신이 노동교육을 하니까 저렇게 된 거다’라는 말이 나올 게 뻔하다. 고생하는 교수님들에게 누가 될 수도 있다.”

- 남은 임기 1년 동안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
“임기만 채우고 가는 이사장이 되고 싶지는 않다. 고생한 교직원들 처우가 성과에 못 미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올해는 교직원 처우와 근무여건 개선에 중점을 두고 뛰려고 한다. 지금 교육방송(EBS)과 협의 중인데, EBS에서 이론교육을 듣고 전국에 있는 폴리텍캠퍼스에서 실습교육을 받은 뒤 자격을 취득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다. 폴리텍대학을 국민일자리대학으로 만들겠다. 노동운동가 출신으로 직업교육에 뛰어들었다. 보람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직업교육 전문가로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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