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석호 노동운동가

1노총이 바뀌었다. 2018년 기준 통계였다. 줄곧 1노총 지위를 유지하던 한국노총은 침울했다. 처음으로 한국노총을 제친 민주노총은 화색이 돌았다. 민주노총은 내 인생도 녹아 있는 조직이다. 민주노총이 1노총 지위를 획득했다. 그러면 나는 당연히 기뻐야 할 텐데, 덤덤했다. 아니, 사실은 쓰라렸다. 1노총 지위를 어디가 차지하고 말고의 문제는 내 관심사가 아니었다.

고용노동부 자료를 받아서 가장 먼저 살펴본 항목은 ‘사업장 규모별 조직현황’이었다. 30명 이상 99명 이하 사업장 노동자 389만1천명의 노조 가입률은 2.2%였다. 조합원은 8만7천명. 29명 이하 1천175만3천명의 노조 가입률은 0.1%였다. 조합원은 1만2천명. 99명 이하를 합쳐 계산해 봤다. 그 구간의 노동자는 1천564만4천명이었다. 전체 노동자의 77.6%를 점했다. 한데 노조 가입률은 0.64%였다. 더 답답했던 것은 2017년 기준의 1.05%보다 줄었다는 점이다. 조합원 숫자도 16만3천명에서 10만3천명으로 줄어 있었다.

올해 연말에는 2019년 기준 자료가 발표된다. 그러면 아마 민주노총 96만명 대 한국노총 93만명의 격차는 더 벌어져 있을 것이다. 추세가 그랬다. 한국노총보다는 민주노총으로 몰리는 흐름이었다. 당분간 한국노총의 1노총 지위 회복은 쉽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더더욱 한국노총은 1노총 지위를 회복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지 않을까 싶다. 민주노총은 민주노총 나름대로 조직화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양 노총은 저마다 조합원 200만 시대를 열겠다고 선포한 상태이기도 하다.

관련해서 양 노총에 다시 또 제안한다. 향후 1노총 경쟁의 핵심은 99명 이하 사업장 노동자가 될 거다. 그리고 퇴직노동자가 될 거다. 그곳은 조직화의 노다지다. 어디가 먼저 그 광맥을 선점하는가에 따라 1노총 지위를 고착할 수 있거나 재탈환할 수 있을 거다. 한데 여기서도 민주노총이 한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는 40만 봉제노동자를 조직하기 위해 노동공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3월에는 본격적으로 공제상품을 출시하고 조합원을 조직할 것이다. 봉제 노동자는 거의 10명 미만 영세사업장에 종사한다. 영세노동과 이동노동이라는 특성, 산업 내에서의 경쟁노동이라는 특성, 사업주와의 친밀노동이라는 특성상 전통적 방식으로는 조직할 수 없는 단위다. 노조할 권리 이전에 노조 혜택이 우선 고민되는 단위다. 99명 이하 사업장 노조 가입률이 1%에 불과한 이유다. 그래서 화섬식품노조는 노동공제를 선택했다. 한발 빠르게 움직이려는 행보는 또 있다. 연임에 도전한 김호규 금속노조 위원장은 선거 공약으로 퇴직자 재조직화를 내걸었다. 이미 금속노조는 퇴직자가 3천원의 조합비를 내면 조합원 신분을 유지할 수 있는 규정이 있다. 그러나 퇴직자가 조합원으로 가입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걸 활성화하겠다는 것이다. 김호규는 금속노조 최초로 재선 위원장이 됐다.

한국 노동운동에 매우 친숙한 독일금속노조는 전체 조합원 240만명 중 퇴직노동자가 무려 50만명으로 20%에 이른다. 어마어마한 숫자다. 그러나 이탈리아에 비하면 약과다. CGIL이라고 하는 이탈리아노동총연맹 조합원은 546만명인데, 그중 퇴직노동자 조합원이 286만명으로 52%다. 절반이 넘는 숫자다. 참으로 놀랍다. 그런데 실은 한국 노동운동은 이 사실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얘기를 듣고서도 대부분 그런가 보다 했다. 어떻게 그런 상황이 가능한지 깊이 연구하려 하지 않았다. 한국 현실에 응용하려고 하지 않았다. 독일금속노조와 이탈리아노동총연맹에 그토록 많은 숫자의 퇴직자가 가입한 핵심 이유는 노조의 혜택이다. 즉 공제 서비스다. 그러니까 조합비를 내고 조합원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독일금속노조는 ‘업무 외 시간 사고보험, 법률 상담, 비상시 지원, 사망시 지원 등’의 노동공제를 제공한다. 영국단결노조는 ‘유언장서비스, 장례비 보조, 법률지원, 보험, 안과 할인, 쇼핑 할인, 개인금융상담 등’을 운영한다. 아일랜드공공노조는 ‘법률지원 전화, 배관과 난방 등의 긴급 가정도움 응급전화, 상해·질병·생명보험 등’의 혜택을 제공한다.

한국 노동운동에 노동공제를 접목하는 작업을 1년여 진행하고 있다. 그래야 밑바닥 주변부 노동자들을 주체로 세울 수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그들이 스스로 서서 노조 조합원이 되고 제 몫을 찾을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 작업을 확산하기 위해 2월4일 오후 2시 전태일기념관에서 노동공제 집담회를 진행한다. 전태일재단과 화섬식품노조와 서울노동권익센터가 함께 마련한 자리다. 아마 민주노총 관련 단위들이 주로 참석해서 지혜를 모을 듯하다.

한국노총에 제안한다. 1월21일 새로운 위원장이 선출되면 노동공제에 관심을 기울여 달라. 1년 전, 이 칼럼에서 제안한 적이 있다. 다시 또 제안한다. 한국노총이 부르면 언제든 달려가서 노동공제를 함께 고민하겠다. 1년여에 걸친 고민과 구상을 다 내줄 테니 꼭 심사숙고해 달라. 양 노총의 1노총 경쟁의 핵심이 99명 이하 밑바닥 노동자와 퇴직노동자에게 집중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노동운동가 (jshan896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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