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석군 변호사(법무법인 민국)

지난해 초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에 대한 폄훼 발언을 한 야당 국회의원에게 면담을 요구하며 지역구 사무실을 항의방문한 학생들이 있었다. 이들은 퇴거불응죄로 기소됐다. 최근 변론이 종결돼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기소된 학생들과 그들의 소속 단체는 다양한 방법의 위법행위도 불사하는 항의시위를 실행하고 있고, 이들 집회·시위의 위법성에 대해 곱지 않은 시각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위법성에 중점을 두고 그들을 공격하기에 앞서 살펴봐야 할 대목이 몇 가지 있다.

먼저 국회의원에 관한 것이다. 국회와 국회의원이 흔한 놀림과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국민의 대변자로서 국회의원의 위상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높고, 그 위상은 보호받아야 한다. 최근 국무총리 임명자를 두고 벌어진 청문회에서 알려졌듯 국회의장은 국정의 2인자인 국무총리보다 공식적인 의전 서열이 더 높다. 대의제 민주주의는 국민 의사를 대의하는 국회의원들의 전문성·도덕성을 신뢰하고 그 결정을 받아들이는 것이 전제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각각의 국회의원은 대의기관으로서 회기 중 불체포 특권, 의정활동에 대한 면책특권 등 여러 특권을 가진다.

그러나 국회의원의 높은 위상이 국회의원의 국가 역사와 헌법과 국민 인권을 뿌리째 뒤흔드는 행위에 대해서까지 묵과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한동안 이어진 모 당의 역사와 헌법에 대한 인식과 발언은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독립해 건국된, 폭압적인 독재정치를 물리치고 이뤄 낸 우리 민족과 민주주의에 대한 자기 부정이었다.

그런데 망언이 들끓어도 현행법과 시스템 속에서 이를 중단시킬 방법은 마땅치 않다. 자정적인 기능을 해야 할 국회 윤리특별위원회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20대 국회 들어 국회의원 징계안 23건이 윤리위에 제출됐으나 한 건도 처리되지 못한 상황이다. 최근 5·18 망언을 한 국회의원 3명에 대한 징계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국민소환제도가 없는 현실에서 총선을 통한 정치적 책임을 묻는 것 외에 국회의원 망언에 항의할 방법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사건 또한 반민특위라는 아픈 역사를 국민의 대표자가 함부로 폄훼한 것임에도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았다. 독립운동가들의 여러 차례 항의에도 ‘반문특위’를 잘못 말한 것이라는 얼토당토않은 변명을 공식 답변으로 내놓았다. 결국 국회에서 문전박대를 당한 학생 몇몇은 지역구 사무실을 찾아가 국회의원 면담을 요구했고, 사무실 직원들의 퇴거요청에 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지역구민을 위한 만남의 장소로 기능해야 할 지역구 사무실에서도 국회의원을 만날 수 없다. 형법은 그 장소의 기능과 목적에 상관없이 그 방문이 ‘실내’라면 관리자 퇴거 요구에 따르지 않을 경우 퇴거불응죄 성립을 인정한다. 국민이 국회의원에게 만남을 요청한다는 사실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국민 목소리를 들어야 할 의무가 있는 국회의원이 그 목소리를 듣기 위해 설치된 공간에 들어온 국민에 대해 퇴거요청을 하는 것이 정당하고, 나가지 않은 국민은 형사처벌된다. 국민 의사를 대의하는 국회의원을 국민이 만날 방법은 없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회의원 면담을 위한 법안을 2017년 발의했으나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사건 첫인상에 불편함이 없지 않았다. 기존 판례에 비춰 너무 명백한 위법사실에 대해 어떻게 변론이 가능할지조차 짐작이 가지 않았고, 요즘 시대에 저렇게 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1980년대에서 90년대 초 소위 운동권처럼 당연히 잡혀 갈 수밖에 없는 시대는 아니지 않은가 하는 의문이 있었다. 그러나 민변의 다른 변호사분들, 그리고 학생들과 변론을 준비하며 생각이 바뀌었다. 부당함에 항의할 방법이, 목소리를 낼 방법이 없었다. 30년 전과 달라진 것이 없었다. 어린 학생들이 목소리를 내고자 할 때, 항의하고자 할 때,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희생하지 않고서 할 수 있는 방법이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없었다.

변론을 마쳤으나 결과를 알 수 없는 변호사의 마음은 불안하다. 다만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목소리를 내는 길을 걷는 젊은이들에게 조금의 보탬이 된 것 같아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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