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노조는 매년 산별중앙교섭에서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에 대다수 은행이 운영 중인 저임금직군 제도를 폐지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수용되지 않고 있다. 금융노조
부산은행은 지난해 하반기 5명의 7급 직원을 뽑았다. 예년의 10분의 1 수준이다. 고졸만을 대상으로 했다. 과거에는 대졸도 7급으로 입사했다. 7급은 주로 은행 창구 텔러일을 한다. 여성이 대부분이다. 다른 신규 입사자보다 임금이 훨씬 적다. 부산은행은 과거에 한 해 100명가량 7급 직원을 뽑았다.

지방은행을 중심으로 ‘여행원’으로 불렸던 저임금직군에 대한 차별을 허무는 작업이 활발하다. 4차 산업혁명에 따른 금융환경 변화에 대한 선제적 대응이라는 측면에서 주목된다.

“7급 하는 일 인공지능·기계 대체 우려”

19일 노동계에 따르면 금융노조 부산은행지부와 회사는 지난해 연말 노사협의회에서 7급 채용을 최소화하고 승진인사를 통해 장기적으로 하위직군을 없애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부산은행은 통상 신입행원을 5~6급으로 뽑는다. 남성은 군대 복무기간을 반영해 5급으로 입사한다. 여성은 6급이다. 그런데 신입행원 아래에 단계가 또 있다. 개인금융직군으로 불리는 7급이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만든 직급이다. 7급(대졸)은 5급보다 초임 연봉이 2천300만원 적다. 5급 신입행원에게는 곧장 여신업무가 맡겨지는 반면 7급에게는 은행 창구일이 주어진다. 현재 7급 직원은 470여명이다. 노사는 올해를 시작으로 향후 3년 동안 이들을 6급으로 전환할 예정이다.

지부는 “7급 조합원 중 상당수가 휴직 중인데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노사가 3년간 정한 인원수에 따라 승진 가능 범주에 들어 있다”고 밝혔다. 백병훈 지부 부위원장은 “5~7급 입사자 사이에 스펙 차이가 거의 없고 같은 대학에서 성적이 좋은 사람이 더 낮은 직급으로 입사한 경우도 많다”며 “7급 채용을 점차 없애고 현원 대부분을 6급으로 승진시킴으로써 저임금직군에 대한 차별을 해소하는 것에 노사가 공감하고 행동에 나선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지방은행에서도 유사한 흐름이 감지된다. 노조 대구은행지부와 대구은행은 지난해 연말 부산은행 노사와 동일한 내용의 합의를 했다. 직원들의 고용을 안정시키는 것을 목표로 했다는 점이 눈길을 모은다.

김정원 지부 위원장은 “7급 직원들은 상대적으로 은행 창구에서 간편한 업무처리를 하는데 이는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금융시대를 맞아 인공지능·기계로 대체될 수 있다”며 “이들을 대폭 승진시킨 뒤 고부가가치 창출 업무를 맡겨 고용불안을 해소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문제 일으킨 금융기관, 비정상의 정상화 나서”

은행노동자 사이에 차별을 허무는 시도는 다른 금융기관에서도 활발하다. 수협중앙회 노사는 지난달 말 저임금직군을 일괄 정규직(4급)으로 전환하기로 합의했다. 수협은행 영업점에서 일하는 노동자 82명이 대상이다. 이들은 회사에서 별도 직급 없이 ‘텔러직군’으로 불렸다. 수협은행에 대졸 공채는 3급, 나머지는 4급으로 입사한다. 이들에게만 호봉제가 적용됐다.

박상봉 노조 수협중앙회지부 부위원장은 “지금껏 텔러직군은 별도 연봉계약을 체결하는 사실상 비정규직이었는데 이들을 4급으로 전환하면 호봉제가 적용되고 최대 1천만원의 임금 격차가 사라진다”며 “저임금직군 차별 철폐라는 집행부 공약사항을 이행하기 위해 사측과 1년 정도 논의했다”고 말했다.

이종선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부소장은 “은행들이 외환위기 이후 정규직이 하던 일을 비정규직에게 맡기면서 사회 전체에 양극화 현상을 불러왔다”며 “문제를 만든 은행들이 비정상의 정상화에 나서는 것은 뒤늦게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대상자와 관련 예산 규모가 크지 않은 금융기관을 중심으로 ‘2차 정규직’을 정규직화하고 있는데, 차별이 여전한 대형 금융기관에 자극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행원제가 공식적으로 폐지된 것은 28년 전의 일이다. 시중은행들은 아직도 정규직과 여성이 대부분인 저임금직군을 구분해 채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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