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예슬 기자

“의사나 검사가 되고 싶었던 사람만 꿈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재봉사도 꿈을 가지고 있다. 고급노동·저급노동이라는 사회의 시선이 바뀌어 갔으면 좋겠다.”(모자 판매원, 평화시장 사입자)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전태일기념관(관장 이수호) 3층. 한편에 마련된 ‘증언들’ 코너에 관람객들이 기획전시회 ‘시다의 꿈’을 보고 남겨 놓은 쪽지가 빼곡했다. 서울 평화시장에서 모자를 떼서 팔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 이는 노동의 우열을 가르는 행위가 사라지길 바란다는 마음을 글로 옮겼다. ‘노동자가 될 학생’이라고 자칭한 사람은 “노동자들이 안전하고 쾌적한 공간에서 일한 만큼 보상받을 수 있는, 소중한 사람들과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적었다.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산화한 지 50년. 전태일기념관이 오늘날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 곁에 가까이 있는 ‘시다’들을 떠올릴 수 있는 노동복지 기획전시회 ‘시다의 꿈’을 기획했다. 1980년대 중반 평화시장에서 시다로 일을 시작해 지금도 미싱사로 일하고 있는 김경선·박경미·장경화·홍경애씨의 삶은 소설과 사진작품으로 재탄생했다.

전시회장을 방문하면 전경숙 사진작가와 네 명의 봉제노동자가 공동 작업한 ‘미싱사의 꿈’ 사진작품을 관람할 수 있다. 2층 울림터에서는 시정의 배움터 3기생이 쓴 노동연극 <넘어가네> 낭독극을, <넘어가네> 극본과 네 명의 소설가가 쓴 단편소설은 3층 꿈터에서 열람할 수 있다.
 

▲ 강예슬 기자

고품질에 저렴한 가격, 그 속에 담긴 진실

전시회가 개장한 오전 10시. 첫 관람객으로 들어온 손병준(26)씨의 시선은 기념관 3층 꿈터에 전시된 반재하 미술가의 작품 ‘셔츠와 셔츠’에 머물렀다. 그곳엔 한 패션 브랜드에서 할인판매하던 1만9천900원짜리 하얀 셔츠가 걸려 있었다. 외관상 차이를 찾기 어려운 셔츠 한 점도 함께 걸렸다.

반재하 작가는 시장에서 유사한 원단을 구매하고, 패턴전문가에 의뢰해 디자인을 본뜨고, 베트남 현지에 있는 봉제공장 노동자에게 제작을 맡겼다. 그 과정에서 들어간 비용이 적힌 영수증·용역계약서가 전시돼 있었다. 반 작가가 대량생산한 기성품과 유사한 제품을 만드는 데 사용한 제작비는 30여만원이었다.

손병준씨는 “1만9천900원짜리 셔츠를 만들기 위해 벌어진 인권착취 문제를 생각해 보게 됐다”며 “시다가 일했던 과거 우리나라처럼 외국에서도 똑같은 인권착취가 일어날 텐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전태일 열사가 남긴 기록에 따르면 1970년대와 80년대 ‘시다’로 불리던 어린 봉제노동자들은 제대로 된 휴식을 보장받지 못한 채 잔업과 특근을 했다. 하루 14~15시간 노동을 견뎌야 했다.

3층 또 다른 전시코너인 ‘네 개의 방’에서 마주친 박미경(56)씨는 “오늘날에도 많은 노동자가 죽는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며 “위험한 노동에 몰려 처참하게 죽는 젊은 친구들을 보면 안타깝다”고 말했다. ‘네 개의 방’은 소설가 조해진·정세랑·이주란·최정화씨가 네 명의 봉제노동자 인터뷰를 통해 완성한 단편소설을 모티브로 연출한 공간이다.
 

▲ 강예슬 기자 

“50년은 더 기억해야 할 이름 전태일”

전태일기념관은 같은날 오후 1층 로비에서 ‘시다의 꿈’ 여는 행사를 한 뒤 2층 울림터에서 ‘작가와의 대화’를 진행했다. 김대현 평론가 사회로 열린 ‘작가와의 대화’에 수십여명이 함께했다. 전시회와 소설의 모티브가 된 네 명의 봉제노동자도 참석했다.

봉제노동자 장경화씨는 “어린 시절 공순이라고 불려 창피하던 때도 있었고, 일에 대한 자부심을 생각지 않고 살았는데 전시회 덕에 자부심이 생긴다”며 “이 일을 하지 않으려는 청년들이 많은데 조금이나마 나은 여건을 만드는 게 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작가들은 전태일 열사에 대한 개인적인 기억과 경험을 전했다. 김경선씨를 인터뷰해 소설 <인터뷰>를 쓴 조해진 작가는 “(전태일 열사에 대해) 직접적으로 쓰지는 않았지만 청계천에서 분신한 죽음의 방식에 대해서 떨칠 수 없는 책임감을 느끼는 인물들에 대해 쓴 경험이 있다”며 “(돌아가신 지) 50년이 됐다는데 앞으로 50년은 더 기억해야 할 이름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홍경애씨를 인터뷰해 <쑤안의 블라우스>라는 단편소설을 써낸 최정화 작가는 “외국인 노동자에게 블라우스를 완성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는 마음은 전태일 열사가 동료들과 풀빵을 나눴던 따뜻한 온기, 거기서 시작되고 이어져 있다”고 설명했다. <쑤안의 블라우스>는 작은 봉제공장을 운영하는 사장인 ‘나’가 과거에 ‘시다’로 일하던 시절을 떠올리면서 손이 서툰 외국인 노동자 쑤안에게 1시간의 연습시간과 시급을 챙겨 주는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이수호 관장은 “전태일 50주기를 맞아 첫 번째 기획전시회로 ‘시다의 꿈’을 기획했다”며 “함께해 주고 참여하며 같이 살기를 조금씩 실천하는 여러분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달 20일 시작한 노동복지 기획전시회 ‘시다의 꿈’은 3월29일까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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