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쌀 배달에 동원된 은행경비원. 은행경비연대
경비업법에 따라 경비업무만 해야 하는 은행경비원이 은행직원 지시로 고유업무 외 업무에 시달리는 것으로 드러났다. 용역업체 소속으로 짧게는 3개월, 길어도 1년씩 반복되는 근로계약 갱신 탓에 부당한 업무지시를 거부하기 힘든 상황이다. 일부 용역업체는 “원청의 은행경비원 교체요청이 있을 경우 해고(할 수 있다)”라는 내용의 서약서를 은행경비원들에게 강요하고 있다. 은행과 용역업체, 은행경비원으로 이어지는 다단계 하청구조에서 은행경비원의 노동인권이 박탈되고 있는 것이다.

정의당 비정규 노동상담 창구 비상구와 은행경비연대는 19일 “은행경비원 노동인권침해가 심각하다”며 “고용노동부가 은행경비원 노동환경에 대한 실태조사와 근로감독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에 따르면 은행경비원은 경비업법이 금지하고 근로계약서에 명시하지 않은 경비업무 외 업무에 시달리고 있다. 현금(동전) 세기·대출업무 소개·현금지급기 수리·전표 작성·금융상품 홍보·택배 포장과 운반 등이 은행직원 지시로 이뤄진다. 김장철 김장사역과 야유회 동원은 물론 쌀 배달도 은행경비원 몫이다.

각 은행별로 여러 용역업체가 들어와 있는 데다 지점마다 은행경비원이 1명밖에 없기 때문에 부당한 업무지시에 항의하기도 쉽지 않다. 노조설립을 준비 중인 은행경비연대의 이태훈 위원장은 “해고의 두려움으로 어쩔 수 없이 부당한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2017년 IBK기업은행은 경영지원그룹장 명의로 전국 지점에 경비원에 대한 경비업무 외 업무지시를 금지했다. 당시 기업은행은 “경비업법에 의해 용역경비원에게 경비업무 범위를 벗어난 행위를 하게 해서는 안 된다”며 “서류작성·차량운전·고객차량 주차 관리·현금지급기 관리·단독 파출수납 등을 시켜서는 안 된다”고 주문했다. 은행경비원에 대한 경비업무 외 업무지시가 만연하다는 증거다.

이태훈 위원장은 “2017년 기업은행 경영지원그룹장의 공문 발송 이후에도 시중은행에서 경비업무 외 업무에 대한 직접지시가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은행경비원들이 같은 은행 안에서도 여러 용역업체로 나뉘어 있다”며 “지점마다 1명, 많아야 2명 일하는 상황에서 부당한 지시나 열악한 노동조건에 대해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의당 비상구는 “은행경비원들은 각종 근로기준법 위반과 직장내 괴롭힘, 갑질에 시달리고 있다”며 “불법파견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만큼 노동부가 서둘러 근로감독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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