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2018년 12월 김용균 노동자가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사망했다. 그런데 김용균 노동자가 일하던 서부발전에서 8년간 12명의 죽음이 있었다는 사실에 우리는 몹시 놀랐다. 서부발전은 정부가 운영하는 공공기관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죽어 간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하청노동자들이었다.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 이후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도 구성돼 하청구조가 죽음의 원인이라고 밝히고, 직접고용을 권고했기 때문에 많은 것이 달라지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현장은 여전히 어둡고 위험하며, 노동자들은 여전히 하청으로 일하고 있다. 도대체 죽음으로도 바뀌지 않는다면 이 공공기관은 왜 존재하는 것일까?

2019년 11월29일 마사회 경마기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세 장짜리 유서에는 마사회에 대한 분노가 가득했다. 마사회 부산경남경마공원은 개장한 지 15년 동안 무려 7명이 목숨을 끊을 정도로 비합리적인 관행이 만연했다. 마사회는 자신들이 경마시행처에 불과하며, 경마기수와 말관리사와는 직접적인 고용관계가 없기에 책임도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상금을 결정하고 징계 권한을 갖고 있는 막강한 마사회가 자신의 책임을 면하기 위해서 고용형태를 외주화한 것일 뿐 실질 책임은 마사회에 있다. 2017년 두 명의 말관리사가 죽음으로 그것을 폭로했는데도 공공기관인 마사회는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2019년 6월19일 충남 당진우체국에서 또 한 명의 집배원이 과로로 숨졌다. 2019년 한 해 아홉 번째 죽음이었다. 정부가 운영하는 기관인 우정사업본부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과로로 죽는다. 변화하는 배달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종별 가중치도 제대로 계산되지 않은 업무량 계산으로 인력은 제자리였다. 토요배달과 무료노동이 증가했다. 경쟁과 갈등을 유발하는 평가제도,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는 현장의 분위기가 과로사망을 더욱 부추겼다. 정부는 인력을 충원하겠다고 했지만 충분한 인력을 제대로 보장하지 않았다. 이대로는 또 다른 죽음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한 해에 2천400명이 산재와 직업병으로 사망하는 것은 매우 큰일이다. 그런데 공공기관에서도 사고로 죽고, 스스로 목숨을 끊고, 과로로 죽는다는 것은 정말 심각한 문제다. 죽음은 구조적인 문제가 쌓여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이 될 때 드러난다. 그런데 이 공공기관들의 죽음은 한 번이 아니라 계속 반복되고 있다. 누군가가 죽은 자리에서 또 죽는다. 죽음이 알려질 때마다 이 공공기관의 인력부족, 위험의 외주화, 갑질과 비리, 조직문화의 폐쇄성이 문제로 지적됐다. 그런데 그 이후에도 공공기관들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큰 문제다.

공공기관은 정부가 운영하는 기업이다. 공공기관은 이윤이 아니라 공공적 가치를 중요하게 여겨야 하고, 공공기관장은 모범적 사용자로 역할해야 한다. 공공기관이 어떻게 운영되는지가 이 사회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여 주는 바로미터다. 정부가 아무리 ‘노동존중’을 외쳐도 공공기관이 노동자들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민간기업들이 노동자들을 존중할 리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그 공공기관에서 극단적인 죽음이 계속된다는 것은 이 정부가 노동자들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며, 노동존중이나 ‘공공성’은 단지 말뿐임을 보여 준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공공기관이 제대로 역할을 하리라 기대했다. 공공기관은 정부의 관리·감독 아래 놓여 있고 기관장도 정부가 임명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을 자회사로 넘기려고 1천500명을 해고하고, 아직도 소송을 계속하라며 몽니를 부리는 이강래 한국도로공사 전 사장은 이 정부의 낙하산이다. 유서에서 마사회의 비리를 폭로하고 있는데도 구조적인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나서지 않고 책임을 회피하는 마사회의 김낙순 회장도 문재인 정부의 낙하산이다.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정치이력에 한 줄 넣어 주는 용도로 공공기관의 책임자 자리가 이용되면 공공기관은 제대로 변할 수 없다.

그동안 공공기관 개혁은 늘 노동자만을 대상으로 했다. 효율성과 경제성을 내세워 인력을 줄이고, 비정규직을 늘리고 자회사를 만들었다. 그래서 약한 위치의 노동자들이 희생되고, 죽음에 내몰리기도 했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공공기관이 생명과 안전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도록 공공기관의 평가체계와 예산배정 원칙을 바꿔야 한다. 가장 약한 위치에 있는 노동자들의 권리가 보장되도록 하고, 공공기관이 전체 노동자의 사용자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 공공기관 운영에 대해 노동자와 시민의 감시와 개입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공공기관이 모범사용자로서 제대로 역할을 하도록, 더 이상 노동자들이 죽지 않도록 정부가 나서야 한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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