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직무 중심 임금체계 개편에 주력하면서 공공부문 노동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당장 직무급제 도입을 밀어붙이지 않더라도 관련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등 물밑 움직임이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15일 공공부문 노조들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한국재정정보원과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가 노사합의로 직무급제를 도입했다. 재정정보원은 일반직군을 기준으로 4단계 직무역할을 구분하고 직무유형을 9단계로 구성했다. 간부직군에는 직무역할급 상한선을 기본급보다 낮추고 역할 난이도를 반영해 임금테이블을 설계했다. 공공운수노조 재정정보원지부와 한국재정정보원은 지난해 2월부터 노사 TF를 만들어 10개월간 컨설팅과 설문조사 노사협상을 거쳐 지난달 3일 합의서에 도장을 찍었다. 노사합의로 공공기관에 직무급제를 도입한 첫 사례로 기록됐다.

코트라는 1~2급 간부 성과연봉제를 유지하되 직무역할급 비중을 3.5%에서 17%로 확대했다. 3~6급 일반직원에게 적용하던 차등호봉제를 승급형 역할급제로 바꿨다. 기획예산·사업담당·실무추진·조직적응 4개로 역할등급을 매겼다. 40단계였던 호봉이 16단계로 줄어들긴 했지만 연공급 성격은 그대로 유지됐다. 행정직(4~6급)은 40호봉에서 32호봉으로 바꿨다. 단일급으로 승급을 꿈꿀 수 없었던 무기계약직에게는 직무가치와 숙련도를 반영한 6등급-6단계의 승급형 직무급을 도입하고 직책수당을 신설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노조는 지난달 30일 조합원 투표를 실시해 79% 찬성(659명 중 398명 참여·315명 찬성)으로 합의안을 가결했다. 코트라는 이달 말 이사회 의결을 거쳐 올해 상반기 중 시행할 예정이다. 1천명 이상 공공기관이 역할급을 도입한 것은 코트라가 처음이다.

노동계는 그러나 재정정보원·코트라 사례가 전체 공공기관으로 확산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재정정보원의 경우 기존 임금체계가 연공급적 요소를 찾아보기 힘든 성과연봉제였기 때문이다. 임금체계 개편으로 20~30%를 차지하던 변동급이 5%로 축소되면서 외려 고정급 비중이 높아졌다. 코트라는 기관 특성상 해외 파견근무자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직무급제 도입으로 임금하락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이 노사합의 배경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기획재정부가 올해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연공성을 완화하고 직무 중심 임금체계로 개편했는지 여부를 따지겠다고 밝혀 직무급 도입 시도가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2020년 공공기관 경영평가 편람에 따르면 정부는 ‘합리적 보수체계 운영 노력과 성과’라는 두루뭉술한 표현을 빼고 △합리적 직무분석 평가·관리 여부 △연공성에 의한 급여비중 감소 여부 △직무 중심 보수체계 전환 노력과 성과로 세분화했다. 한 공공기관 노조 관계자는 “공공기관들이 직무급 도입을 위한 연구용역이나 컨설팅만 해도 경영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시도가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관건은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공공기관위원회다. 공공기관위가 의제로 지속가능한 공공기관 임금제도 마련을 위한 임금(보수)체계 개편을 의제로 삼고 있는 만큼 노동계와 정부의 힘겨루기가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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