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변호사(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상판결 : 대법원 2019. 11. 14. 선고 2018다200709 판결


1. 사실

지방공기업인 피고 주식회사 문경레저타운(이하 ‘피고’라 함)에서 1급 직급 근로자 원고 김○○(이하 ‘원고’라 함)은 피고가 정한 바에 따라 2014년 3월 기본연봉이 70,900,000원인 연봉계약(이하 ‘이 사건 근로계약’이라 함)을 체결했다. 피고는 2014년 6월25일 근로자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의 동의를 받아 취업규칙인 임금피크제 운영세칙(이하 ‘이 사건 취업규칙’이라 함)을 제정·공고했는데, 정년이 2년 미만 남은 근로자에게는 임금피크 기준연봉의 60%, 정년이 1년 미만 남은 근로자에게는 임금피크 기준연봉의 40%를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었고, 피고는 원고에게 이를 적용해 임금을 지급했다. 원고는 피고가 임금피크제 적용에 따른 임금 내역을 통지하자 그 적용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고, 삭감된 임금 지급을 요구했으나 피고가 들어주지 않자 피고를 상대로 삭감된 임금 및 퇴직금 114,086,260원을 청구하는 소를 제기했다. 1심과 2심 법원은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고, 이에 불복해 원고는 상고했다.

2. 주장

1심부터 원고는 근로계약상 임금을 이 사건 취업규칙인 임금피크제를 적용해 삭감할 수 없다고 주되게 주장했다. 피고는 근로기준법이 정한 취업규칙 변경절차에 따라 과반수노조 동의를 거쳤으니 원고에 대한 임금피크제 적용은 적법한 것이라는 주장을 반복했다. 그런데 이러한 원피고 간 주장은, 원고가 취업규칙(변경)과 근로계약(기준)의 관계 내지 그 효력을 문제 삼는 데 대해, 피고는 취업규칙 변경의 적법성 문제로 접근해 다투고 있는 것이라서 이를 단순히 피고가 취업규칙 변경, 즉 임금피크제 도입에 있어서 적법하게 한 것인지만을 살펴 판단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사건 1심과 2심은 모두 이 사건 취업규칙, 즉 임금피크제가 과반수노조 동의라는 근로기준법상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절차를 거쳤다며 이를 원고에 대해 적용한 것은 적법하다고 보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는 판결을 했다. 이처럼 이 사건에서 피고도, 원심도 피고 임금피크제가 취업규칙(변경)으로서 적법성에만 관심을 두고 주장하고 판결했던 것이 아니었다. 원고대리인으로서 내가 했던 주된 주장에 관해서는 자세한 반박이나 판단도 없었다. 분명히 원고를 대리해서 나는 취업규칙인 임금피크제가 적법하게 변경돼 유효한 것이라 해도 원고가 이에 동의하지 않는 한 원고가 체결한 근로계약상 임금을 지급해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던 것임에도, 원심은 이에 대해서는 아무런 판단이 없었다. 그래서 대법원에 제출한 상고이유서는 사용자가 작성·변경의 권한을 행사하는 취업규칙이 당사자인 근로자와 사용자 사이의 자유로운 합의로 정하는 근로계약관계의 내용인 임금 등을 삭감할 수 없다는 주장을 법리적으로 구성해 채워야 했다.

3. 판결

대법원은 “이 사건 취업규칙은 임금피크제의 적용대상자가 된 근로자인 원고에 대해 이 사건 근로계약에서 정한 연봉액을 60% 또는 40% 삭감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고” “연봉액에 관하여 이 사건 근로계약이 이 사건 취업규칙보다 유리한 근로조건을 정하고 있으니” “원고가 이 사건 취업규칙의 기준에 따라 이 사건 근로계약을 변경하는 것에 대하여 동의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연봉액에 관하여 이 사건 취업규칙보다 유리한 근로조건을 정한 이 사건 근로계약이 우선하여 적용된다”고 밝히고, “이 사건 취업규칙에 대하여 과반수 노동조합의 동의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 근로계약은 유효하게 존속하고, 이 사건 취업규칙에 의하여 이 사건 근로계약에서 정한 연봉액을 삭감할 수 없다”고 판시하고서, 원심 판단이 “취업규칙과 근로계약의 관계,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에 관한 법리를 오해했다”며 원심 판결을 파기·환송했다.

이와 같이 판결하면서 적시한 법리를 보면 대법원은 첫째 “취업규칙에서 정한 기준에 미달하는 근로조건을 정한 근로계약은 그 부분에 관하여는 무효로 한다. 이 경우 무효로 된 부분은 취업규칙에 정한 기준에 따른다”는 근로기준법 97조를 반대해석하면 “취업규칙에서 정한 기준보다 유리한 근로조건을 정한 개별 근로계약 부분은 유효하고 취업규칙에서 정한 기준에 우선하여 적용”되는 것이라고 봤다. 이는 취업규칙으로는 그보다 유리한 근로계약상 임금 등 기준을 삭감(변경)하지 못한다고 분명히 밝힌 것이다. 이에 따르면 근로계약상 기준보다 유리한 취업규칙만 근로자에게 유효하게 적용될 수가 있다. 둘째, 대법원은 “근로기준법 94조가 정하는 집단적 동의는 취업규칙의 유효한 변경을 위한 요건에 불과하다”고 보고, 이에 따라 “취업규칙이 집단적 동의를 받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된 경우에도 근로기준법 4조가 정하는 근로조건 자유결정의 원칙은 여전히 지켜져야 한다”고 봤다. 이 둘째의 판시 법리 부분은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에 관한 근로기준법 94조가 그 변경의 절차 내지 요건에 불과한 것이고, 그 취업규칙이 근로자에 대한 근로계약상 기준으로서의 효력 내지 법적 정당성까지 갖는 것은 아니라고 밝힌 것이라고 볼 수 있다.

4. 평가

취업규칙과 근로계약 사이에 유리의 원칙이 적용된다고 보더라도, 근로자가 실제 취업규칙 기준을 상회하는 근로계약을 주장하고자 하면 여러 가지 법적 쟁점이 튀어나온다. 무엇보다도 우리 노동현장에선 근로계약을 체결하면서 기본적인 몇 가지 사항을 명시하고서 기타 사항은 회사 규정에 따른다는 식으로 정하는 게 일반적이고, 이후 임금 등 근로조건은 회사 규정, 즉 취업규칙이 정한 바를 적용받게 된다. 이러한 현실에서는 취업규칙을 상회하는 근로계약의 존재를 주장하는 일부터 쉽지 않은 것인데, 위와 같은 유리의 원칙을 내세워 청구하기 위해서는 그 존재를 어떻게 내세울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이유로 이번 판결의 의미 내지 영향을 낮게 평가한다면, 이는 고민의 부족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고 말해 주고 싶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근로기준법 94조가 정하는 집단적 동의는 취업규칙의 유효한 변경을 위한 요건에 불과하다”고 판시했다는 점에 커다란 의의가 있다. 이는 적법하게 변경된 취업규칙이라도 그것이 근로자에 대한 근로조건 기준으로 적용되기 위해서는 “근로기준법 4조가 정하는 근로조건 자유결정의 원칙은 여전히 지켜져야 하므로” 근로계약 등 노사가 합의해서 정한 기준을 위반한 경우에는 적용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취업규칙이 과반수노조 동의 등 적법하게 변경돼 유효한 것이라고 해도, 노사 당사자 합의로 정한 근로계약 등 기준보다 유리한 것이 아니라면 그 기준을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사용자가 회사 임금규정 등 취업규칙을 불리하게 변경하는 경우 과반수노조나 근로자 과반수 동의를 얻어 하게 되면, 해당 사업장 근로자들에게 당연하게 적용해 온 그동안의 우리 노동현실에 대한 경종이 아닐 수 없다. 다시 말하면 임금피크제 등 기존 근로조건을 삭감하는 경우는 그로 인해 불이익을 당하는 근로자의 개별적인 동의 등 그 의사를 묻지 않고 노조나 근로자 과반수 동의로만 추진한다면 법적으로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근로계약관계도 당사자 합의로 그 계약의 내용인 근로기준을 정해야 하는 것이라서, 사용자가 작성 및 변경 권한을 가진 취업규칙을 통해 이러한 근로계약 기준을 삭감할 수는 없는 법이고, 이는 새로운 법리적 발견이 아니라 계약자유 세상의 근본원리를 확인한 것이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