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연민 변호사 (공공운수노조 법률원)

사용자는 인사권을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취업규칙상의 아주 추상적이고 광범위한 징계사유 규정들이다. 품위손상이 무엇일까? 회사에 손해를 끼친 경우라 함은 무엇일까? 이 혼란한 시대에 노동자가 지켜야 할 품위가 무엇인지 구체화할 도리가 없다. 아니, 그 이전에 회사는 과연 품위를 잘 지키고 있는지는 왜 아무도 묻지 않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이런 것들은 많은 회사의 취업규칙에 징계사유로 규정돼 있다.

서울 성동구 용답동의 서울교통공사 본사는 통합 전 (구)서울도시철도공사 본사로 활용되던 건물이다. 통합 전 (구)서울도시철도공사노조는 위 본사 현관 앞이나 구내 주차장에서 여러 차례 천막농성 등 조합 활동을 했다. (구)서울지하철공사노조도 사당동 본사에서 마찬가지 활동을 많이 했다. 그럼에도 서울교통공사는 서울교통공사노조 조합원들이 2017년 11월 무기계약직의 차별 없는 정규직 전환을 주장하며 본사 현관 앞에 천막을 설치하려 하자 별안간 청원경찰들을 투입해 강제로 저지했다. 당연히 그 과정에서 조합원들과 청원경찰들 사이에 실랑이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공사는 조합원들에게 공무집행방해 고발과 중징계 처분을 했다.

공무집행방해는 공무원의 적법한 직무집행을 폭행 등의 방식으로 방해하는 경우 성립하는 범죄인데, 청원경찰은 공무원은 아니지만 청원경찰법에 따라 직무범위 내에서 경찰관 직무집행법의 규율을 받는 관계로, 청원경찰의 적법한 직무집행을 방해하는 행위에 대해서도 공무집행방해죄가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이 판례다. 따라서 공무집행방해죄 관련 법리도 그대로 적용되므로, 그 직무집행이 적법하지 않았다면 이를 방해하더라도 공무집행방해죄가 성립하지 않게 된다.

경찰관이나 청원경찰의 즉시강제가 적법한 직무집행이 되려면 최후수단으로, 불가피한 최소한도의 범위 내에서 행사된 것이어야 하고, 형사 처벌대상인 행위가 눈앞에서 막 이뤄지려는 것이 객관적으로 인정될 수 있는 상황이어야 하며, 당장 제지하지 않으면 곧 인명·신체에 위해를 미치거나 재산에 중대한 손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상황이어야 한다. 당시 노조 천막농성이 이러한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은 비단 법원의 판단을 빌리지 않더라도 노사 모두에 명백한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공사는 애꿎은 청원경찰들을 동원해 천막농성을 강제적으로 저지했다.

서울동부지법은 위 청원경찰들의 저지 행위가 적법한 직무집행이 아니라고 판단해 조합원들에게 공무집행방해의 무죄를 선고했고, 2심도 마찬가지였다. 검찰이 상고하지 않아 사건은 확정됐다(1심 서울동부지법 2019. 4. 23. 선고 2018고정1067 판결, 2심 서울동부지법 2019. 10. 31. 선고 2019노643 판결).

그렇다면 그 위법한 직무집행에 조합원들이 저항하다가 불가피하게 발생한 몸싸움 과정에서 몸에 멍이 드는 등 상해를 입은 청원경찰의 피해는 과연 조합원들의 책임일까, 아니면 당초 위법한 직무집행을 지시한 공사 책임일까? 공사는 청원경찰들을 통해 손쉽게 조합 활동을 제압하고, 그 과정에서 조합원들이 저항하면 공무집행방해로 걸고 징계도 한다(징계 관련 행정소송은 현재 진행형이다).

그런데 그 몸싸움 과정을 촬영한 동영상에 공사의 얼굴은 없다. 천막을 둘러싸고 다투는 조합원들과 청원경찰들만 있을 뿐이다. 근로자의 품위유지는 차치하고서라도, 사용자의 품위유지는 누가, 어떻게 물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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