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근탁 공인노무사(노노모 회원)

유년기였던 1990년대에 2000년 밀레니엄도 기대됐지만 2020년이 더욱 기대됐던 것은 <2020년 우주의 원더키디>나 <백 투 더 퓨처> 같은 상상으로 만들어진 우주도시나 타임머신 때문이었다. 머나먼 미래일 것만 같았던 2020년도 시간이 흘러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현재 우주도시나 타임머신이 만들어지지는 않았지만 과거에 비해 상당히 높은 기술력을 가지게 됐다고 생각한다.

요즘 주변을 둘러보면 재개발이 많이 이뤄지고 있다. 재개발이라고 하면 낡은 건물을 부수고 아파트나 상업적 건축물 등을 새롭게 짓는 것을 말하는데, 기존의 낡은 건물을 부수고 토지를 고르는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건물을 부수고 토지를 고르는 작업 속도가 상상 이상으로 빠르게 느껴진다. 하루 사이에 있던 건물이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다른 지역에서는 상가와 오피스텔이 한창 지어지고 있다. 가림벽이 있어 잘 보이지는 않지만, 오래지 않은 시간 동안 기초공사를 한 뒤 며칠이면 뚝딱뚝딱 건물 한 개 층이 올라가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진다.

빠르게 건물이 올라가는 속도 속에 위험을 무릅쓰고 일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바로 건설노동자들이다. 건설현장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곳이지만 어떤 업종보다도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자가 많이 발생하는 곳이기도 하다. 연간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자는 2014년 이후 1천명대로 낮아졌고 2018년에는 971명, 지난해에는 855명이 사망하는 등 낮아지는 추세이지만 여전히 많다. 이 중 건설업 산재 사망자는 2018년 485명, 지난해 428명으로 연간 산재로 인한 사망자의 절반 정도가 건설현장에서 발생하고 있다. 건설현장 외벽에 걸린 ‘위험을 보는 것이 안전의 시작입니다’라는 말이 무색해질 정도다.

사망자수가 여전히 많긴 하지만 점차 줄고 있는 추세를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고, 2018년 ‘국민생명 지키기 3대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022년까지 산재 사망자수를 절반으로 줄이는 데 목표를 둔 효과로 볼 수도 있다. 목표 달성을 위한 실천으로 올해 고용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이 감독대상을 확대하고, 사고사망 예방 중심 점검·순찰(패트롤)을 시행하는 등의 노력으로 산재 사망자가 역대 최저치인 800명대로 나온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노력을 했음에도 획기적으로 줄어들지 않은 이유에 대해선 보다 근본적인 원인 파악과 함께 대책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

산재 사망자가 건설업종에서 많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다단계 하도급으로 인한 ‘위험의 외주화’가 횡행하고 중대재해가 발생한 사업장 원청에 부과되는 처벌이 산재 예방 효과를 충분히 내고 있지 못하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이 같은 현실 속에 점검·순찰을 하더라도 그때뿐이고, 건설현장에서는 언제든지 산재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지게 된다. ‘김용균법’으로 불리는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이 곧 시행되지만 건설업의 ‘위험의 외주화’에 여전히 대응하지 못하는 것과 함께 도급인 책임에 대해서도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낮은 수준의 처벌만 규정하는 등의 문제점이 있다.

2020년 해가 떠올랐다. 사람들은 해가 바뀔 때 새로운 계획을 세우곤 한다. 어떤 이들은 보다 많은 돈을 버는 것을, 어떤 이들은 보다 행복해지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보다 안전하게 일하는 것이 목표가 될 수 있다. 현장에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안전하게 잘 돌아가는 것이 목표인 사회가 되면 안 된다. 안전은 가장 기본적인 것이며 최고의 수준으로 지켜져야 한다.

이달 3일 신축공사현장에서 크레인 해체작업을 하던 노동자들이 떨어져 2명이 사망하고 1명이 부상당한 사고가 발생했다. 건설업 산재 사망자수를 획기적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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