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하민 청소년유니온 위원장

우리의 노동은 소중하다. 우리는 노동을 통해 먹고 자고 입는다. 가끔은 퇴근길에 치킨을 먹기도 하고 가끔은 오래도록 갖고 싶었던 비싼 물건을 사기도 한다. 단지 살기 위해서만 노동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노동을 통해 나를 발견하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성장해 나간다. 우리 사회는 노동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지 않지만 우리는 노동 없이 살아갈 수 없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노동에 대한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것을 넘어 인간의 존엄성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많다. 이들은 우리가 야식을 구매하는 편의점에도 있고, 외식하는 음식점에도 있으며,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을 때도 만날 수 있다. 바로 감정노동자다.

지난달 26일 청소년유니온은 청소년 감정노동자 실태조사 결과 발표회를 통해 청소년 감정노동자가 일터에서 어떤 경험을 하고 있는지 발표했다. 청소년유니온이 감정노동 실태를 조사하며 참여자들에게 들었던 경험은 너무도 충격적이어서 분노의 감정을 주체하기 힘들 정도였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던 어떤 청소년 감정노동자는 ‘배달된 햄버거가 너무 차가웠다’는 이유로 욕설과 함께 고객이 던진 햄버거를 맞아야 했다. 음식점에서 일하던 어떤 청소년 감정노동자는 서빙 중 술에 취한 고객들에게 “얼굴이 예쁘다”며 “자주 우리 방에 오라”는 성희롱을 듣고도 참아야 했다. 키오스크를 이용하는 카페에서 일하던 어떤 청소년 감정노동자는 매장에 쓰레기통이 없다고 안내했다가 심한 욕설을 들어야 했다. 이들은 모두 일상적으로 반말·폭언·성희롱을 들으며 일하고 있었다.

이들의 경험을 듣고 누군가는 ‘스스로를 지켰어야지’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만난 청소년 감정노동자들은 돈을 벌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게다가 사용자는 이들을 보호해 주지 않았다. 오히려 청소년 노동자를 무시하거나 협박하기도 했다. 어떤 청소년 감정노동자는 사용자에게 “목소리가 낮다”며 “해고하겠다”는 말을 들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청소년 감정노동자가 할 수 있는 일은 고객에게 “죄송합니다”를 반복하는 일뿐이었다. 우리가 초점집단 인터뷰를 통해 만난 청소년 감정노동자 중 어느 누구도 신고하거나 대응하지 못했다.

우리 사회는 감정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제도를 갖추고 있다.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감정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산업안전보건법에 고객응대근로자 보호조항을 2018년 10월 만들었다. 이 조항에 따르면 사업주는 고객에게는 폭언이나 폭행을 금지하는 문구를 안내해야 하고, 노동자에게는 고객응대 업무 매뉴얼을 마련해 교육해야 한다. 또 노동 과정에서 건강장해가 발생할 경우 업무를 일시적으로 중단하거나, 휴게시간을 연장하거나 치료와 상담을 지원해야 한다. 노동자에게는 감정노동으로 인한 피해 발생시 필요한 조치를 고용주에게 요청할 권한이 있다. 이러한 제도적 변화는 그동안 시민사회가 우리 사회의 정의를 세우기 위해 노력한 덕분일 것이다. 그러나 제도적 안전망과 현장노동자의 현실 사이에는 간극이 있었고 결국 청소년 감정노동자를 보호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법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적어도 일하다가 햄버거를 맞는 일은 없었어야 했다.

결국 단순히 법에 기댈 수만은 없다. 변화는 일상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한국 사회의 정의는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패스트푸드점·편의점·음식점에서 감정노동의 고됨을 참지 못하고 ‘혼자 화장실에 숨어 울고 있던’ 노동자에서부터 무너지고 있다. 지금 우리가 사회정의를 바로잡고자 한다면, 그리고 그럴 의지가 있다면 개개인의 삶 속에서 무너지고 있는 정의부터 바로잡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청소년유니온은 수많은 청소년 노동자의 일상에서 작은 정의들을 세우는 운동을 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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