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새해가 시작되고 약 1주일이 지났다. 짧은 기간이지만 각종 언론에서 쓴 기사로 2020년을 예상해 본다. “산재사고 사망자 855명, 1999년 이후 최초로 800명대”라는 굉장히 반가운 소식이 나왔다. 산업재해 0명이라는 당연한 목표에는 아직 상당한 거리가 있지만 근래 보기 어려운 큰 진전이다. 정부 노력을 평가할 만하다. 같은날 10년7개월 만에 사업장으로 돌아가는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출근길이 신문 1면에 실렸다. 반쪽짜리 출근이라 기대에는 크게 미치지 못하지만 그래도 뭉클해하는 이가 적지 않았을 것이다.

반면에 정초부터 타워크레인 노동자들의 사망재해사고가 이어졌다. 인간의 존엄마저 빼앗긴 채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을 고발하는 뉴스도 보인다. 지난해를 뒤로 고릿적 이야기로 흘러가길 바랐지만 여전히 극복하지 못한 우리의 모습이다. 어디 이뿐인가. 세상이 어느 때인데 아직도 ‘관치금융’인가. 기업은행 노동자들은 청와대의 낙하산 인사에 맞서 투쟁하고 있다. 낙하산의 폐해와 문제점은 더 논할 필요조차 없다. 정부는 약속을 어겼다. “촛불정부에서 낙하산 인사는 없다”는 취지로 금융노조와 서면으로 합의했다.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다. 검찰개혁까지 밀어붙이면서 어찌 금융부문은 한 세대 이전으로 내버려 두는지 알 길이 없다.

새해에는 지난날을 뒤로하고 ‘희망가’가 끊이지 않길 소망했다. 하지만 닥쳐올 2020년의 현실은 만만치 않아 보인다. 희망을 절망으로 만들어 가는 데 정부가 앞장서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7일 대통령 신년사에서 이런 느낌을 받은 게 나뿐일까. 문재인 대통령은 “명실상부한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이 아닌 사람 중심의 창의와 혁신, 선진적 노사관계가 경쟁력의 원천이 돼야 한다”며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로 한 걸음 더 다가가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런 내용이 신년사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참으로 작다. 문 대통령의 2020년 국정구상에서 노동이 후순위 중 후순위로 밀려났다는 평가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올해가 어떤 해인가. 전태일 열사가 산화한 지 50주기를 맞는 매우 상징적인 해다. 우리에게도 노동자와 노동운동이 있음을 열사의 희생으로 세상에 알린 지 무려 반세기다. 적어도 대통령 신년사에서 50주기를 기념하겠다는 한 줄의 약속이라도 담았더라면 어땠을까. 노동자들에게 안도의 희망을 주지 않았을까. 그러나 기대는 그저 기대로 끝났다. 혹시 대통령 주위에 노동과 전태일 열사에 대한 관심을 두는 이가 없다는 명확한 증거는 아닐까. 연말연시에 발표된 많은 정부 정책과 예산에서 노동이 사라지고 있다. 대신 그 자리를 온통 개발공약이 자리 잡아 가고 있다. 노동자 삶에 대한 관심이 멀어지고 있다.

정부에서 내놓은 이런저런 주장을 정리해 보면, 나만 이해하지 못하는 것인지는 모르나, 정책들이 모순투성이다. 노동시간단축 정책을 보자. 노동시간 위반에 대한 단속을 유예하고 연장근로 인가사유에 경영상 어려움을 추가했다. 노동시간단축 약속의 진실이 도대체 뭔지 모르겠다. 얼마 되지 않는 최저임금 인상조차 주저하면서 “소득격차가 완화됐다”고 자랑하는 모습은 또 뭔가. 소득격차 완화가 얼마나 지속가능할지도 의문이다. 무엇보다 3년 안에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조차 비준하지 않고서 노동존중을 말하는 데에는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다들 혼란스럽다. 정부가 내세운 노동존중 사회의 방향이 갈 길을 잃었다고들 한다. 아예 사라졌다는 주장도 있다. 어떤 정책이든 저항이 있고 다소 늦을 수 있다. 하지만 도달해야 할 목표가 분명하다면 시간은 문제 될 것이 없다. 속도보다 방향이라고 하지 않는가. 방향만 분명하다면 분명 많은 노동자에게 “끝까지 함께하자”고 동의를 구할 수 있다. 아마도 대부분 기꺼이 동의할 것이다. 돌아보면 정부 초기에 ‘방향만은 옳지 않는가’라며 정부 편을 드는 노동자들의 수가 많았지만, 지난 한 해를 거치며 떠나는 수가 눈에 띄게 많아지고 있다. 방향타와 목적지를 잃었기 때문이리라. 난파선을 믿고 남아 있으라고 요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현재 위치한 좌표를 확인하고, 원래 약속한 목적지로 방향타를 분명히 해야 한다. 방향만 분명하면 조금 늦더라도 성공이라 말할 수 있다. 그리고 1년 계획은 새해 초에 세워야 한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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