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남욱 공인노무사(노노모 회원)

라디오를 그리 즐겨 듣는 편은 아니지만 자동차 시동을 걸었을 때 저절로 켜진 라디오에서 우연히 좋아하는 노래가 흘러나오거나 관심 있는 주제의 대화가 이어지면 나도 모르게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날도 저녁 약속이 있어 길을 나서려고 자동차 시동을 걸었는데, 어김없이 라디오가 켜졌다. 그리고 해 질 녘 라디오에서는 연말 회식자리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직장내 성희롱과 괴롭힘 등에 대한 대화가 한창이었다. 직업 특성상 자연스럽게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사실 대화 내용도 내용이지만 혹시나 대화 말미에 디제이가 ‘지금까지 ○○○ 노무사님과 직장내 성희롱 금지법,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에 대해서 알아봤습니다’라고 말할 때, 반가운 이름이 들리진 않을까 해서였다. 아쉽게도 기대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라디오에 출연했던 이름 모를 누군가의 말은 2019년 들었던 말들 중 가장 크게 공감한 한마디였다. 당시 말을 정확히 옮길 수는 없지만 대체로 이런 내용과 말투였다.

“가끔 ‘저는 칭찬한다고 했던 말인데, 이런 것도 직장내 성희롱인가요?’ ‘저는 친하다고 생각해서 한 행동인데, 이런 것도 직장내 괴롭힘인가요?’라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있는데, 긴가민가하면 하지 마세요. 사실 아시잖아요. 스스로도 그럴 소지가 있다고 생각하니까 질문하신 게 아닌가 싶어요.”

사실 우리는 안다. 직장내에서뿐만 아니라 직장 밖에서도 무엇이 성희롱이고 괴롭힘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설령 모르겠다고 하면 거꾸로 생각해 보면 될 일이다. 법률 요건에 빗대어 따지자면 틀린 말이 될 수도 있겠지만 자신 혹은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연인·친구가 같은 일을 당했다고 생각해 봤을 때 기분이 언짢다면, 그것은 성희롱이고 괴롭힘이고 소위 ‘갑질’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직장내에서는 자신이 비교적 경력이 많은 상사이기 때문에, 직장 밖에서는 대가를 지불하고 서비스를 제공받는 소비자 입장이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관대해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몇 해 전, 한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코너 소재로도 활용된 적 있듯 세상에 절대 갑은 없다. 또 스스로 행한 갑질은 돌고 돌아 결국 자신에게 돌아온다. 예컨대 회사에서 상사에게 모진 갑질을 당한 회사원은 스트레스를 해소하려고 찾은 주점에서 주점 직원에게 친절하기 쉽지 않고, 그런 손님들 때문에 힘들었던 주점 직원은 퇴근길 들른 편의점에서 편의점 직원에게 친절하기 어렵다. 결국 갑질이 갑질을 만들고, 그 갑질이 스스로에게도 되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선하지 못한 성격에서 나온 악한 생각의 고리라 여길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며칠 전 2020년의 첫 해가 떠올랐다. 노동존중 사회를 만들겠다고 외치던 대한민국 19대 대통령의 임기는 이제 절반이 채 남지 않았다. 2017년부터 지금껏 들어 온 ‘노동존중 사회’지만 내 짧은 지식으로는 노동존중 사회가 무엇인지 아직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어렵고, 노동존중 사회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다만 타인의 노동을 가치 있게 여기고 서로의 노동을 존중하는 모습, 그래서 누구도 갑질하지 않는 모습이 노동존중 사회의 중요한 일부임은 분명히 안다. 그리고 2010년대가 막을 내리던 시점에 우연히 라디오를 듣고 다시금 깨닫게 된 한 가지는 ‘우리는 이미 무엇이 갑질인지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 2020년부터는 모른 척하지 말고, 스스로에게만 관대하지 말자. 긴가민가하면 그냥 하지 말고, 그래도 모르겠으면 거꾸로 생각해 보자. 내가 행한 갑질은 언젠가 나에게 갑질로 돌아올 것이지만 내가 베푼 친절은 언젠가 나에게 존중으로 다가올 것이다. 경자년은 그렇게 내가 믿는 대로 돌아가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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