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승호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2020년은 전태일 동지가 산화한 지 만 50년 되는 해다. 그동안 세상은 참 많이 변했다.

1971년 박정희 대통령은 3선에 성공했다. 그해 12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72년 10월에는 유신체제를 선포했다. 유신체제는 79년 10월26일 박정희가 궁정동 안가에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에 맞아 피살됨으로써 끝이 났다. 잠시 민주화의 봄이 왔다. 그러나 박정희가 만든 유신체제는 전두환 일당의 5·18 광주민중 학살을 통해 재정비·강화됐다. 5공 체제는 광주의 피어린 항쟁에 힘을 받은 노동자·민중의 민주화운동으로 전복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내외 지배세력은 이 위기를 수동혁명으로 막아 냈다. 그것이 6·10 항쟁이다. 미 제국주의의 민주화 이행 프로젝트에 의해 조절된 이 수동혁명으로 노태우의 6공 군사파쇼 정권이 등장했다. 6공 정권은 노동자·민중의 계속되는 해체 압력을 받아 김영삼의 민간민주정부로 대체됐다. 이것이 문민정부다.

문민정부는 자유민주정부가 아니라 민간인이 주도하는 파쇼통치, 부드러운 파쇼통치에 불과했다. 이 부드러운 파쇼, 민간파쇼 체제는 계속 노동자·민중의 저항을 받았다.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김대중 정권으로 교체됐다. 그 이후 좀 더 부드러운 민간파쇼 정권인 노무현 정권을 거쳐 다시 수구파쇼 정권인 이명박·박근혜 정권으로 이어졌다. 2016~2017년 촛불혁명을 통해 박근혜 정권이 퇴진하고 문재인 정권이 들어섰다.

이 50년 동안 정치는 ‘격동의 세월’이었다. 그러나 박정희가 만든 유신체제의 틀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나지 못했다. 유신체제에서 대통령직선제만 수용한 1987년 체제가 촛불혁명에도 30년 넘게 계속되고 있다. 자유한국당과 태극기부대의 준동이 그것을 입증한다. 자유주의 당파가 구체제를 변혁하려 하지 않은 결과다.

정치적 격동기 동안 경제와 사회 또한 엄청나게 변했다. 유신체제 수립 직후인 72년 11월 ‘월간경제동향보고’에서 박정희는 80년에 수출 100억달러를 달성하고 81년에는 1인당 국민소득을 1천달러 수준으로 증가시킬 수 있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그런데 경제는 100억달러 수출, 1천달러 소득을 목표로 하던 수준에서 지난해 6천만달러 수출, 3만1천달러 소득으로 높아졌다. 후진국으로 불리던 수준에서 선진국으로 불리는 수준으로, 식민지·반봉건 운운하던 경제에서 아제국주의 경제로 천지개벽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탄생한 신생국 가운데 이렇게 선진국 반열에 오른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한강의 기적’이라는 말이 빈말이 아니다.

경제는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사회 진보는 정반대다. ‘헬조선’이라는 단어가 제도권 언론이나 정당이 빈번히 사용할 정도로 사회 상태는 극도로 열악하다. 자살률은 15년째 세계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 저출산율 또한 마찬가지다. 올해 3분기 합계출산율은 0.88이었다. 2017년 고령사회로 진입했고 2020년부터 전체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되면 생산가능인구도 줄어든다. 1인가구가 30%에 이르고, 우울증이 일반화되고, 듣도 보도 못하던 공황장애가 늘어나고 있다.

요컨대 경제규모는 눈부시게 커졌지만 분배 불평등은 극도로 심화했다. 정치는 여전히 친미파쇼적이다. 사회는 더 이상 재생산이 불가능하게 됐다. 전태일의 외침을 외면한 결과다.

“인간을 필요로 하는 모든 인간들이여. 그대들은 무엇부터 생각하는가. 인간의 가치, 희망과 윤리를? 아니면 그대 금전대의 부피를?”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seung742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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