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언젠가 내비게이션에 평택시 칠괴동으로 뜨던 곳은 이제 동삭로라고 나온다. 거기 자동차공장 인근에는 신축 아파트 단지가 어느새 빼곡하다. 한때 새롭게 꾸며 말끔했던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사무실은 여기저기 낡아 볼품을 잃었다. 많은 게 달라졌다. 또 여전한 게 거기 있었다. ‘차차’라고 이름 붙인 공간에 개가 한 마리 산다. 샛별이다. 내년 1월이면 네 살, 혈기 왕성한 골든레트리버 암컷이다. 도둑을 보고도 꼬리 친다는 아인데, 낯선 사람을 보고는 멍멍 두어 번 짖을 줄을 안다. 거기 들어온 지부 사람에게 짖었다가 구박을 먹었다. 금세 다가와서 치댄다. 강환주 지부 조직실장과 한집 사는데, 출근도 같이한다. 외부 일정 많은 지부장 대신 혼자 사무실을 지킬 일이 많았던 강씨가 외로움에 데리고 나선 지가 1년쯤 됐다. 그러는 동안 샛별이는 투표참관견, 조직부실장 같은 직책을 두루 맡았다. 한동안 사람 뜸하던 그곳 사무실에 발걸음 잇따르니 샛별이가 긴장했다. 아빠를 자꾸 찾았다. 한숨부터 내쉬고 들어선 사람들이 둘러앉아 같이 사는 개와 고양이 얘기를 나눈다. 털은 어찌나 날리는지, 얼마나 품에 안기는지, 또 뭘 물어뜯고, 긁어 대는 사고를 치는지에 대해 말한다. 그 존재가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에 이르러서는 의견이 같았다. 다들 외로움을 고백했다. 누구에게도 말 못 할 것들을 개와 고양이에게 말했다. 다 들어준다고 했다. 강씨는 지난 24일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빨간 딱지 소주 세 병을 비우고도 취하지도, 잠들 수도 없어 꼭두새벽에 샛별이와 함께 산책했다. 평소 멘탈이 강하다고 생각했는데, 무너지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낡은 장비를 꺼내어 10년 만의 캠핑을 갔던 한 조합원도 잠들지 못했다. 그동안 고생했다는 격려와 들어가서는 조용히 있다가 나오라는 충고를 달게 받던 참이었다. 마침 술도 달았다. 전화기 들어 메시지를 보고는 장난인가 싶어 눈을 비볐다. 하느님은 안 믿어도 내년 1월 복직 그 글자는 믿고 있었는데, 하늘이 무너지는 소식이었다. 텐트 안이 밤새 지독하게 추웠다고 했다. 소식 들은 아내 표정이 일그러졌다. 가정이 무너지는 소식이라고 그는 보탰다. 강씨는 고3 아이에게 차마 그 말을 못 했다. 대학 안 가겠다고 할 것 같아 걱정이다. 전화 돌려 보니 다들 상태가 안 좋단다. 말이 점차 격했고, 표정이 굳어 갔다. 샛별이가 어느새 엉겨 붙어 강씨에게 코를 들이대고 몸을 부볐다. 또 한편 문밖에서 공장 안 사람과 얘기 나누는 김득중 지부장을 살피고 있다. “내 마지막 살과 오장육부를 태워서라도 가만두지 않을 거다”라고 지부장은 페이스북에 적었다. 회사는 부서배치를 일주일여 앞둔 무급휴직자 47명에게 지난 24일 무기한 휴직 연장을 통보했다. 개가 짖었다. 황망한 표정 사람들이 지부 사무실을 지키던 샛별이를 쓰다듬었다. 자꾸만 벌렁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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